"할머니. 그만 좀 웃겨욧!" "너가 웃기고 있잖아."

(태리의 여행)

by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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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여행의 장점은 이국적인 풍경과 따뜻한 날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부에 와닿는 뛰어난 가성비가 가장 큰 매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처음 가는 사람은 여전히 가성비가 좋다고 느끼겠지만, 다시 가는 사람들은 모든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그리고 물가가 급상승하는 지역의 특징이 한국인이 많이 몰려가는 특정 지역들이라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몰려가면 물가가 치솟는다는 이 말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럽을 여행하면서 택시를 탄 기억은 거의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평소 나는 여행지의 물가를 택시와 대중교통의 물가로 비교 평가하곤 한다.

유럽에서 택시를 타려면 일단 유로화의 가치평가를 환산해 보는 것에서 시작하면서부터 부담을 느끼게 되겠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싸다. 대중교통비도 비싼곳은 많이 비싸지만, 대부분 우리 수준을 조금 넘어서는 정도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얼추 우리의 물가보다는 서유럽이 어느정도 비싸다고 해야겠다. 일반 생필품도 종목에 따라 또 다르고, 인적 서비스에 대한 차이는 제법 상당하다는 부제를 염두에 두고서 판단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나만의 평가에 기준해서 말이다.

하여 로마나 파리나 바르셀로나나 서유럽을 여행할 때는 재정적인 경비 절약에 어느 정도는 솔직히 신경이 쓰이지만, 모처럼 집을 떠나온 여행 중이라는 특성을 반영하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즐거운 여행을 계속해 왔다. 대신 이스탄불이나 트빌리시나 예레반 같은 곳에서는 노력하면 동남아 비용으로도 유럽을 충분히 누릴 수도 있구나 했을 정도로, 한편으론 대한민국의 생활 물가 또한 어디에 비교해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껴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베트남을 예로들어 잠시 생각해 보자.

택시비는 우리나라에 비해 1/4 이나 1/5 정도로 저렴하다. 심지어 일행이 있다면 택시가 우리나라 대중교통보다 싸다. 베트남의 대중교통은 거의 거저나 다름없다. 대충 20~30년 훨씬 이전의 우리나라 대중교통 비용 정도밖에 안된다. 그렇다면, 베트남 현지인들의 소비생활 물가는 얼추 우리나라에 비교해 30%나 40% 이내여야만 한다.

그런데 베트남 유명 여행지를 여행하면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실제 물가는 60%나 70%를 오히려 조금 넘어서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심지어 특정 물품이나 특히 해산물 중에서도 극히 일부는 대한민국과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다. 우리는 그래도 싸다고 사 먹지만, 현지인들은 그 가격에 절대로 쉽게 덤벼들지 못한 정도이다. 현지인들의 실제 한 달 수입을 비교해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수입에 의존해 이윤을 붙여 책정되는 물가지만, 그들은 주변에 있는 재료를 그대로 수집해 저렴한 인건비와 조리비를 첨부했을 뿐인데, 가격 책정은 우리나라 서울에서 판매하는 기준에 비해 결코 그리 싼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동남아의 음식은 가짓수는 많은데 음식의 양이 상당히 적다. 따라오는 반찬이 전혀 없고 심지어 마실 물도 제공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볶음밥에 물도 안주고 단무지와 양파도 안 주고 짬뽕 국물도 주지 않는다면 볶음밥을 9천원이나 1만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베트남의 인기 있는 음식점에 가서 볶음밥을 시키면 물도 안주고 단무지와 양파도 없고, 짬뽕 국물도 없을뿐더러 얹어진 계란프라이도 없는 데다가 그 음식의 양도 우리나라에 비해서 적은데 가격은 6천원이나 7천원이다. 그것을 가성비가 좋다고 과연 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이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보다 비싼 느낌은 별로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에 비해서 확실히 싸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 것이 푸꾸옥을 비롯한 동남아 유명 휴양지의 현재 물가라고 실제 체험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물가나 환율에 대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나 봐’라는 고정관념이 어느새 현지 상인들의 생각에 각인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인들은 항상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부자들이야. 기분만 내키면 아무때고 펑펑 쓰고보는 사람들이야.' 우리가 정말 그런가?

물가를 꼼꼼히 따지는 일본인에 비해 환전때도 대충 넘어가는 한국인이 당연히 인기가 있다. 그러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인보다 쉽게 펑펑 내지르는 중국인들이 오히려 더 인기가 있다. 당연히 한국인이 몰려드는 휴양지의 물가는 이미 동남아 물가를 훨씬 상회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한국의 유행을 뒤쫓거나 능가하고 싶어하는 중국인들이 우르르 몰려들면 가히 물가는 서유럽과 별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까지 변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지금, 2026년 베트남 푸꾸옥에서 절실하게 느껴지는 현지 물가에 대한 필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현지 베트남인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모습이나 생활 수준 정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한국 여행자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저들은 과연 얼마를 벌어서 얼마를 교육과 생활에 쓰고, 과연 얼마를 먹는데 쓰지? 그 돈으로 매일 외식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베트남이 쿠바처럼 드러내놓고 이중물가 제도를 채택 시행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참으로 신기할 수 밖에 없다. 수수께끼다.

푸꾸옥의 화려한 신흥 개발지의 이면을 살펴보면, 흡사 우리나라 시화방조제(始華防潮堤) 개발사업을 보는 듯 하다.

정부가 국가시책을 정면에 내세우며 주도하고 강력하게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부친 신도시 건설 사업의 완성 초기처럼, 신도시의 인프라는 그럴싸하게 잘 갖추어졌음에도, 실제 거주하거나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고 텅 빈 상점들만이 늘어서 있는 뭔가 허전하고 휑한 느낌의 암울한 빈껍데기 도심 전체의 느낌이 고스란히 이곳 푸꾸옥에서 짙게 느껴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어쩌다 공짜로 생긴(?) 영토라 할 수 있는데다가, 사람도 별로 살지않았을 뿐더러 육지에서 떨어져 마냥 한적한 남쪽 끝자락 섬에, 고속 성장이라는 베트남 경제의 국운을 걸다시피하고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고 예측 가능하다고 판단한 수요대비 인프라 구축에 국가의 미래까지 걸었다 해도 무방했을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10년 20년 뒤에는 발리나 푸켓이나 세부 같은 세계적인 휴양도시를 만들어 관광 인프라를 통한 베트남 경제의 지속적 고속성장을 이끌겠다는 정치 권력 최고 핵심부의 야심 찬 계획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 거대한 설계와 진행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다양하게 벌어질 수있는 상황 상황의 가정하에서의 실험과 대비책까지 준비가 되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정부는 개발 사업의 속도를 강조하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였고, 문제가 생겨날 때마다 응급 처치식 땜질 처방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기준이 없이 온갖 파행이 자행되었고 이는 곧 부정부패로 이어졌다.

더하여 무차별로 끌어들인 해외자본은 애초 해외투자에 대한 관계 기준 법률마저 없었던 이유로, 베트남 법률에 따른 제재나 개선 요구마저 일절 먹혀들지 않았다. 인류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투기 자본의 생리에는 첫째도 둘째도 오로지 이윤 추구라는 마수의 손길이 감추어져 있다. 그 자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무한 이익을 위해 뛰어 든 것이지, 결코 베트남의 미래를 염려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베트남인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무상원조 차원에서 들어온 것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자본은 언젠나 그 속내가 한결 같다. 수만은 해외 무상 원조들도 그 배경에는 깊숙히 감춘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접근한 것이다. 지금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를 그대로 믿고 받아들인 개발도상국 국가들이 파산 내지는 내란에 휩싸이고 있는 내막이 가장 좋은 실례라고 할만하다. 대한민국의 IMF 사태 극복도 한국인들의 끈기와 저력이 국난을 극복한 것이지, IMF의 구제금융 자본이 사태를 극복하게 만든것이 결코 아니다. 투기 금융의 목적은 대한민국의 경제 회복과 안정이 아니라, 국난을 통한 IMF의 무한 이익 추구였던 것이다. 해외 투자자본의 근본 생리는 아프리카 야생의 하이에나 떼와 닮았다. 약한 틈을 보이면 달려들어 난도질을 하며 저들만의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뒤늦게 이런 심각한 부작용을 깨딸은 베트남 공산당은 부랴부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새로운 계약서를 작성하고 구체적 제도와 법규를 만들어가는 와중에 그만 코로나 사태가 터져 버렸다. 사람과 사람이 접촉하면 안 되고 집밖에 함부로 나가면 안 되는, 인류가 새롭게 당면한 사상 초유의 사태 앞에 가장 치명타를 입는 분야가 바로 사람의 방문을 기대하고 있는 관광사업이었다.

푸꾸옥의 거대한 꿈은 그만 하루아침에 폭망이 되고 말았다. 말짱도루묵이 되고 만 것이다. 하늘이 어떤 심판을 내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가혹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어쨌거나 (코로나 사태 3년)이 지나고 푸꾸옥은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움직임이 다시 거대한 용트림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과 열망과 헌신이 알찬 결실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솔직히 아직은 여러 가지로 우려가 많이 남는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나는 언젠가 저들이 완전한 민주주의적 자유시장 경제를 이루어 성공하리라 믿는다. 사회주의 공화국 공산당 일당 독주의 정치체제 속에다 자유 시장경제를 안착시킬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내거나, 자유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지속적 경제 성장을 위해 새로운 정치개혁을 온 국민이 간절하게 원하는 어떤 시점이 다가 올지는 오로지 베트남 국민들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인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미래는 무척이나 희망적이다.

여전히 젊고 가진 것이 많은 나라 베트남....... 화이팅!!!


"할머니. 제발 그만 좀 웃겨욧" "지금 너가 웃기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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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오늘은 수영하지 않을래요. 수영하지 않고 그냥 쉬어볼래요.’

‘저도요. 그냥 쉬다가 저녁에 까메오 샌드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할아버지가 하루에 한 번 사주신다고 했어요.’

‘수영을 안하겠다고? 그래? 할머니는 조식 먹고 좀 쉬었다가 바로 수영장 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일찍 가서 썬베드랑 파라솔부터 맡아놓으려고 했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수영장에서 놀려고 생각했어?’

‘그래도 오늘은 수영 안할래요. 어제 실컷 했으니까 좀 쉬었다가 내일하려고요.’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도 오늘 수영 못하겠네? 너희들만 호텔에 내버려두고 수영장 갈 수가 없으니까.’

‘음.’ 병아리 두 마리의 표정이 자뭇 심각해 진다.

‘할머니. 수영을 안하겠다는 것이지 수영장엘 안가겠다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저희가 수영장엘 따라가서 거기서 놀께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냥 수영하시면 돼요.’

‘맞아요. 수영장에 따라가서 그냥 밖에서 놀면 돼요. 그러니까 할머닌 걱정하지 마세요.’

과.연.그.게.그.렇.게.너.희.말.처.럼.되.겠.니?

어쨌거나 할아버지는 호텔 조식을 먹자마자 먼저 수영장으로 달려가 가운데 어른 수영장 가장 좋은 자리 썬베드를 차지하고 누워서 <클레오파트라의 눈물>을 펼쳐 들었다. ‘이럴 때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만 있으면 딱인데’말이다.

한참 지나서 할머니가 병아리 두 마리를 몰고 수영장에 나타났는데 아뿔싸.

할머니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왔는데 병아리 두 마리는 이쁜 원피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정말로 오늘은 수영을 안 할 셈인가 보다.

‘기어코 오늘은 수영 안하고 논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방에 슬쩍 갈아입히려고 싸가지고 왔어. 두고 봐야지.’

할머니는 수영장엘 들어갔는데 어쩔씨구?

정말로 병아리 두 마리가 위쪽 아래쪽 풀장 근처를 산책하듯 오르내리면서 노는데, 물놀이엔 정말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때 카톡이 왔다. 아들이다.

‘별일 없으시죠? 태리 세리 지금은 뭐해요?’

‘수영장에 왔어. 할머니는 풀에 들어갔는데, 녀석들이 오늘은 수영 안할 거라면서 수영장 둘레만 왔다 갔다 하고 있어. 왜 저러지?’라면서 풀장 주위를 서성대는 녀석들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금방 맘이 변할거예요. 다 믿지 마세요. 저러다 뭐 해달라고 조건 내걸고 떼 쓸지도 몰라요. 다 들어주지 마시고요.’

‘난 절대 호락호락 무조건 들어주지 않는 할아버지다. 그런 걱정일랑 일절 말아라.’

‘그런데 애들은 마지막엔 할아버지한테 가면 된다던데요? 영악한 녀석들이니까 속지 마세요.’

이녀석 봐라. 아무리 제가 낳은 자식이라지만 할아버지 앞에서 감히 우리 손녀를 디스하는 것 같아서 괜히 심기가 슬쩍 상하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얼씨구?

세리가 풀장으로 들어가는 계단 초입에 발목까지 물에 담구는 것이 아닌가?

절씨구? 태리마저 풀장 입구에 슬쩍 걸어들어 간다.

'얘들아. 너네들 물놀이 안한다면서? 그래놓고 물에 들어가 장난치면 어떻게 하니? 그러다 빠져?'

'수영을 안한다는 것이었지 물놀이를 안한다는 것은 아니었잖아요? 이건 가벼운 물장난이라고요.'

'항상 그래왔지. 송계 억수야영장에서도 발만 담그고 빨래한다고 하다가 빠졌고, 주문진서도 한겨울에 파도만 쫓아다닌다 해놓고 빠졌잖아.'

'그때 그랬다고 오늘도 그럴거라 속단하지 마세요. 오늘은 다르다니까요?'

도대체 누굴 닮았을까?

막히는 법이 없다. 언제나 당당하다. 저러다 커서 변호사 되려고 저러나?

그러다가 공놀이를 한다고 동생을 데리고 계단 근처의 공터로 가는데....... 그때부터 벌써....... 본격적으로 수상하다 수상해.

풀장에 빠진 공을 건진다고 바둥바둥대가가 결국....... 풍덩!!!!!(의도가 된 것인지, 아닌지 구분이 딱 안가는 정도의 선에서)

정적이 흘렀다. 아주 잠시지만.......

할머니랑 눈이 마주쳤는데......... '할머니 이건 어디까지나 사고예요. 사고.' 하는 눈빛과 '나는 너가 그럴것이라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라는 추궁의 눈빛이 중간에서 부딪쳤다. 그런 정적도 잠시.

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태리고 세리고 참 잘 호탕하게 웃는 편이지만, 특히 태리의 웃음보는 한 번 터지면 좀체로 멈춰지지가 않는다.

풀장에서 태리와 할머니가 서로 부둥켜 안고 밀쳐서 빠트리려고 서로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물 속이라면 손녀 태리가 결코 녹녹치가 않다. 그러자 이내 작은 손녀 태리가 원피스 차림으로 풍덩 뛰어들어 물놀이에 합세한다.

헐!!!!! 할아버지는 그저 어이가 없을 수밖에......... '그럼. 그렇지. 그나저나 세리야 수영조끼는 입고 들어가야지?'

잠시 나와서 수영복으로 갈아 입혀서는 다시 본격적으로 물놀이를 시작한다. 정말 열심히 논다.

얼마나 지났을까? 파라솔로 기어나온 태리가 그대로 바닦에 쓰러져 눕는다. '아이고 힘들어. 많이 힘들어'라고 푸념을 흘려 놓는다. 세리가 나와서 그 옆에 의자에 앉아서 어이없는 언니의 행동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슬쩍 비꼬는 표정을 짓는다.

그 어처구니 없는 씨츄에이션을 다시 핸디폰 렌즈에 담는다.

그때 다시 카톡이 울리며 아들에게 문자가 온다.

'애들이 아직도 밖에서만 놀고 있나요? 이상하네?'

그래서 방금 찍은 사진 두 장을 보내 주었다. 그랬더니 아주 짧은 답신이 오고 끊어졌다.

'힘드시겠어요. 엄마 아빠 오늘도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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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뭐가 재미있어서 그렇게 혼자 웃고 계세요?’

‘오늘은 수영 안한다더니 금방 물에 풍덩 빠져버리는 너희들 모습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고있는 것이지?’

‘어디까지나 그건 실수였잖아요? 실수로 빠졌으니까 조금만 물놀이 하기로 한 것이구요.’

‘할아버진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드는데? 이미 그럴 줄 알았으니까 할머니보고 올때 너희들 수영복까지 챙겨오라고 했겠지.’

‘그런게 아니라니까요? 할아버지 정말 그게 아니에요?’

‘아빠라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래서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물어봤어?’

‘아빠가 뭐랬는데요?’

‘절대로 믿지 말래. 금방 다시 물에 뛰어들 것이라고 하던데? 안보는 척 조금만 기다리면 물장난만 치는 척하다가 저절로 물에 빠지게 되어있다고 말이야. 지금까지 쭈욱 그래왔대.’

‘에이. 설마 아빠가 그랬을 리가 없어요.’

‘여기와서 보렴. 할아버지가 너희들이 수영장 주변을 서성거리는 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아빠한테 정말로 그렇게 답변이 왔는걸?’

토끼 눈을 하고 아빠에게 먼저 보낸 사진을 들여다 보던 녀석들 표정엔 ‘그 사진들이 뭐가 어때서요? 그냥 물놀이 안하고 잘 놀고있는 모습인데요?’하는 표정이다.

‘좀 있다가 다시 아빠한테 너희들 지금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카톡이 다시 와서 새로운 사진을 두 장 더 보내 주었어. 제목을 (태리 기절)이라고 해서 보내 주었어. 그것도 볼래?’ 태리가 보겠다고 하기에 바로 위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이게 뭐예요? 할아버지. 이 사진을 아빠에게 보여주었다고요? 정말요?’

‘그래 정말로. 여기 봐. 이 화면이 아빠와의 카톡 화면이잖아?’

‘아빠가 뭐랬는데요?’

‘엄마 아빠 많이 힘드시겠네, 태리 세리의 억지 들어줄려면 오늘도 힘내세요. 파이팅입니다.’

‘거봐요 할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저런 사진을 보면 엄마 아빠가 저희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저희가 계속 할아버지한테 말썽만 부리는 줄 알거 아니예요. 다시 아니라고 말씀해 주세요.’

‘뭘? 엄마 아빠도 이미 너희들이 그런지 다 알고 있던데? 도대체 너희는 누굴 닮아서 그렇게 말썽꾸러기니?’

‘저는 아빠 닮았구요. 아빠가 그러는데 아빠는 할아버지 닮았대요. 그럼 누구를 닮은 것이게요?’

헐!!!

또 헐!!!!

‘그래도 아빠는 어려서부터 자기가 한 번 내뱉은 말은 끝까지 지키고마는 아이였는데? 말썽도 거의 부린 적이 없는 착하고 올바른 아이였어. 물놀이 안 한다고 하고 일부러 빠지지도 않았거든?’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할머니가 뚝 하고 끼어든다.

'할머니. 정말 그러실거예요? 그럼 이제부턴 할머니 닮아서 모두 그런걸로 할거예요. 아셨지요?'

'난 우리 태리가 저렇게 쓰러져 있는 줄도 몰랐어? 지나가던 동네 멍멍이 한 마리가 누워 자는줄 알았어?'

'그게 어디 자는 폼이야? 지쳐 쓰러져 기절한 폼이지. 엠블런스 부르려 했어? 기절한 멍멍이 좀 치워달라고.’

'할머니 할아버지 정말 이러실거에요?’

그만 웃음보가 터지고 그야말로 난리가 나고 말았다.

우리 태리 웃음보가 한 번 터지면 좀체로 멈춰지지 않는데 말이다. 늘 상 이런식이다.

우.린.그.냥.이.러.고.다.닌.다.이.것.이.우.리.가.족.여.행.방.식.이.다.녀.석.들.아.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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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에 마리나 야시장(Chợ đêm Ẩm thực Phu Quoc Marina)이 오픈하기를 기다려 좀 이른 저녁을 단체(?) 외식으로 해결해 보려고 보부도 당당하게 밖으로 나왔다. 호텔에서 단지 경계선 골목의 야시장 터까지 라야 겨우 100M도 안 되는 지척이다.

지극히 간촐해 보이는 아주 작은 시장이지만 그래서 더 정겹다. 둘러보니 해산물부터 피자까지 얼추 베트남 다른시장에 있을 것은 그래도 빠짐없이 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도 소망하는 원픽은 즈엉도 야시장에서 실패한 랍스터나 크랩 같은 해산물 요리다. 화려하진 않지만, 전혀 붐비지 않고 여타의 시장에 비해 깨끗하고 친절하고 맛있고 가성비도 뛰어난 시장이라는 평가를 몇 번 SNS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중에서 한국인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7번 집을 찾아갔다.

메뉴판을 펼치기도 전에 할머니가 ‘오늘은 무조건 제대로 된 베트남식 반쎄오와 분짜 하노이를 먹어보고 싶다고 한다. 어쨌거나 쌀국수. 반쎄오. 분짜야 말로 베트남의 가장 대표적 전통음식이라고 평소 내가 그렇게 믿고 생각해 왔었다. 그렇게 알고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병아리들이 맛있게 먹을 음식 메뉴를 골라야 하겠는데, 녀석들이 지금 저만치 어떤 점포 앞에 멈춰서서 불러도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요지부동으로 서 있다. 허니 어쩌겠는가?

슬며시 다가가서 살펴보니, 지금 녀석들의 시선을 넘어 영혼까지 강하게 빨아들이고 있는 것은 바로 철판 아이스크림이었다.

베트남의 유명 여행지 야시장마다 늘 있어왔던 조금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철판 아이스크림 앞에서 두 녀석이 어쩔줄 모르고 마냥 선망하는 시선으로 한 곳만 응시하고 있다.

어쩔줄을 모르게 된 것은 당연히 할아버지다.

최소한....... ‘저녁부터 먹고 나서 아이스크림을 사줄게.’라고 해야 하는 것이 지당한 것은 알겠는데, 오매불망하는 녀석들의 표정을 보니 작금의 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 또한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아이스크림은 마트에 흔하고, 또 고급 아이스크림은 전문점이 분명히 따로 있는 마당에, 길거리에서 만드는 허접한 아이스크림이라니?

할머니 기다리는데 그렇게 아무리 고민을 해 본들 뭐 뾰족한 수가 생기겠어? 어차피 결론은 하나 뿐이잖아?

철판 아이스크림 하나에 4만동 X 2 = 8만동.(대충 4.300원)

금액으로 보면 그런대로 싸다고 할 수 있겠지만, 환율과 생활물가를 생각하면 상당히 비싸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주어진 숙명대로 병아리들에겐 칭찬을, 할머니에겐 잔소리 한 사발을 얻어먹는다. 이젠 이런 상황들이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 되고 말았다.

더하여 결국 벌어지고 만 비상사태.

분짜는 되는데, 메뉴판에 있는 반쎄오는 안된단다. 품절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유로 판매를 안 한단다. 그런데 7번 집만이 아니다. 마리나 야시장의 모든 음식점에서 반세오를 파는 곳은 없다. 담합(?)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이곳 야시장에서 끝내 반쎄오는 먹어볼 수 없었다.

‘할머니. 저는 지금 저녁을 먹을 생각이 없어요. 배도 고프지 않아요. 이따가 배가 고파지면 짜파게티를 먹을래요. 그러니까 저희끼리 방에 올라가서 놀고 있을께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여기서 먹고 싶은 것으로 드시고 천천히 올라오세요.’라는 태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할머니의 눈초리는 벌써 ‘거봐. 그러게 왜 애들을 저녁도 먹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먼저 사주는 거야?’라고 따지고 힐책하는 눈초리였다.

‘아이 씨. 왜 나는 맨날 하는 일마다 이러는 거지? 난 그냥 좋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을 뿐인데? 어쩌라구?’

할머니는 병아리들을 데리고 호텔로 올라갔다. 일단은 데려다주고 도로 쪽의 창문으로 의자 놓고 올라서는 것만은 안된다고 당부를 꼭 하고 와야겠단다. 가까우니 다시 오던가 소리를 치던가, 해변을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나갈 때는 반듯이 할머니에게 전화라도 한 후에 나간다는 약속까지 해야 안심이 된단다.

반쎄오가 되는 가계를 찾는데 야시장 안에는 적어도 없다. 그래서 일단 끝자리에 있는 가계의 넉넉한 자리에 앉아서 할머니의 이번 여행에서의 원픽 음식인 분짜 하노이 2인분에다 스프링 롤을 주문했다. 결론은 아주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더 유명한 분짜 전문점을 가보기도 하겠지만, 이곳의 분짜 하노이는 정말 이제까지의 베트남 음식 중에서 최고였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직원 모두가 정말로 친절했다. 다 먹어갈 즈음에 내 또래로 보이는 주방장(진짜 주인)이 다가와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정말 최고의 분짜였다고 감사 인사를 대신 전했다. 병아리들의 저녁을 염두에 두고 혹시 몰라 쌀밥을 포장으로 따로 사고 싶다고 했더니, 좀 전에 아이스크림 들고 오는 우리 병아리들을 보았단다. 그러더니 흰밥을 포장해 건네주면서 ‘프리’라고 말한다. 공짜 선물이라는 말에 따로 계산을 하겠다고 하니 절대 안 된단다. 돈을 내려면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 식당에서 베트남 음식을 사먹던가 하고, 베트남 음식이 안 맞아 호텔에서 간단하게 다른걸 먹이려 한다면 내일도 쌀밥은 공짜로 준다고 한다.

어쩌겠는가? 다음날부터 불이 나게 이 가계를 드나들 수밖에. 우리는 여행을 하다 보면 늘 이런 고마운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편이다. 혹 다시 베트남 푸꾸옥에 가게된다면........ 마리나지역에 숙소를 마련해야 하는 분명한 한가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계산을 마치고 나와서 숙소로 향하는데 야시장의 건너 편, 그러니까 야시장 블록이 끝나는 반대편에 위치한 호텔 건물 1층의 식당에 유독 러시아 여행객들이 넘치는데, 불이 켜진 간판에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 바로 반쎄오 사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가 물어보니 여기는 반쎄오가 된단다. 그래서 반쎄오 하나를 포장해서 기다렸다가 가지고 호텔로 돌아갔다. 훌륭했다.

그런데 이제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짜 더 놀라운 써프라이즈는 이제부터 바야흐로.......

숙소 문을 두드리자 마자 들려오는 '예약을 하셨나요?' 하는 차분한 음성에 놀란다. 엥? 아니 이건 또 갑자스럽게 무슨 엉뚱한 씨츄에이션?

‘네. 예약했는데요?’

‘몇 분이신가요?’

‘두 명인데요.’

‘아. 두 분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예쁜 소녀가 창가 자리로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창가 자리 괜찮으신가요?’

‘네. 좋아요.’

문이 열리면서 작은 손녀 세리가 두 손을 벌려 턱을 받치는 애교 가득한 인사를 하더니 손짓으로 따라오라고 한다.

헐!!!

이게 도대체 뭐야? 살다살다 손녀들에게 별 희안한 일을 다 당해보네? 아참! 정신 차려야지. 아들이 여우들에게 속지 말라고 당부했잖아.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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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꾸옥 마리나 써 알버트 비치 호텔 3층 디럭스 룸이 분명할진대, 이거 혹 두바이 7성급 버즈 알 아랍 호텔의 로얄 스위트 룸에서 클럽 라운지 서비스를 받고 있는 느낌이다. 세상에나 내가 사는 동안에 이런 호사를 누려보게 될 줄은 꿈속에서도 그려본 적도 없었다. 우리 병아리들 너무나 차분하고 조리있게 말하고 나름의 체계까지 갖추고 있었다. 애들이 어디서 이런 걸 배웠지? 어디 스위스 명문 호텔 경영학과라도 다녀왔나 싶을 정도였다. 한 마디로 상상 초월이었다.

슬슬 어디선가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또 어떤 슬픈 예감이......... (이 정도 서비스라면 나중에 청구서 액수가 엄청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번 청구서는 아들 회사로 보내라 해야겠다.) 이 슬픈 예감까지도 여행의 끝날 결국 들어맞고 말았다. 우리 병아리들은 정말 못 당한다. 아멘!!!!!

에피타이저가 나오고, 메인 요리가 나오고. 음료나 술은 선택할 수가 있고, 디저트까지 나온다.

헐!!!!! 당황 스럽다.

세리의 안내로 두바이 초고층 빌딩의 옥상 구석에 강제로 떠밀려 쪼그리고 앉아서 무조건 내오는 대로 맛있게 먹는 시늉이라도 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옛날에 보았던 소꿉장난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그냥 흙으로 밥하고 풀을 잘라 반찬을 만들고 먹는 시늉이나 하는 장난이었는데, 이건 코스요리에다 진짜 포도에 망고에 서너가지 과자에 맥주까지 나오다니....... 거기다가 기념 촬영까지 시켜 주고........

그리고 그뿐이면 이야기도 안꺼내겠다.

서비스가 끝난 세리가 급하게 잠옷으로 갈아입더니 썬그라스까지 쓰고 침대 위에서 점핑점핑에다가 궁딩이 씰룩씰룩에다가 끝내는 가랑이 찢기까지 라이브 축하 공연을 해 주는 것이 아닌가?


짱구야! 애들이 누군지 아니?

겡구야! 애들이 이러는 걸 너는 알고있었니?

우린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 여우공화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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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성대하게 파티까지 끝냈으니 오늘 하루의 일과를 무사히 모두 끝마쳤느냐?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바람일 뿐이고, 그렇게 하루를 순순히 마감할거라 생각한다면 천만의 오해 만만의 콩떡이다.

그때부터는 침대 위에서의 한바탕 마당놀이가 벌어진다. 항복이라도 연거푸 외치면서 할머니가 자포자기하는 태도를 보이면 이 난장판은 금방 끝날 것인데, 오늘따라 그냥 순순히 져 줄 생각이 없는 할머니고 보니 이 대결은 제한시간을 넘겨 무한정 연장전에 돌입하고 만다. 다행히 오늘 옆 객실에 손님이 없었길 망정이지, 이거야말로 뉴스에서나 보던 층간 소음이 아니라 벽간 소음에 잔뜩 숨을 죽이고 밖의 동태를 살펴야 하는 할아버지 입장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할머니의 즐거운 표정을 보니 이 난동이 여기서 쉽게 멈춰질 것 같지가 않다.

이걸 어떻게한다?

딱뿌러지는 묘수 찾기에 돌입한다. 서둘러야만 한다. 그런데, 젊어서 그렇게 좋았던 시력이 차츰 나빠졌던 것처럼, 한때 천재 소리를 들었던 명철했던 두뇌가 요즘은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지 않았던가? 할망구가 그렇게 핀잔을 주던 ‘잔머리 대왕’의 약발도 이젠 먹히지 않게 되고 말았다. 아무리 그렇기로,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가고 잔머리가 망해도 제갈공명의 꾀주머니 세 개 중에 하나쯤은 아직 남아 있지 않겠는가?

‘태리야 세리야. 저녁 파티 초대가 고마워서 할아버지가 특별히 선물 하나를 주고 싶은데, 철판 아이스크림 어때?’

캬!!!!! 아니나 다를까?

절묘한 타이밍에 할아버지가 꺼내든 비장의 무기이자 가히 (신의 한 수) 못지않다고 할까?

번개 같이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병아리들을 보며 아직은 쓸모가 남아있는 할아버지의 잔머리에 스스로 감격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 뒤를 쫓는다. 할머니는 따라오시던가 마시던가 알아서 하시고 말이다.


그런데 아주 잠시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이 모두 할아버지의 명석한 두뇌 때문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왜일까?

도대체 그넘의 철판 아니스크림이 뭐길래 저렇게 병아리들을 홀리느냔 말이다.

철.판.아.이.스.크.림.그.것.이.궁.금.하.다.

넌 뭐냐? 정체가 뭐야?


냉동 철판 위에 우유를 조금 쏟아붓고 두 개의 주걱으로 휘저으며 뒤집다보면 철판의 냉기로 인해 우유가 점차 얼게 된다. 이 얼려가는 우유에 과일이나 과자나 위스키 같은 다른 재료를 넣어 함께 다져가며 섞어서 얇게 펴준다. 첨가되는 재료의 알갱이가 크면 우리가 흔히 맛을 알고 있는 샤벳트와 비슷하기때문에, 보다 더 아주 곱게 다지면서 잘 휘저어 혼합해 아이스크림의 맛이 나도록 하는 것이 핵심 열쇠다. 이렇게 잘 다져져 혼합된 아이스크림을 철판에 얇고 넓게 펴서 주걱으로 다섯 여섯 등분을 해서 주걱으로 감아올려 롤처럼 만들어서 컵에 담아 손님의 손에 건네주는 것이 바로 철판 아이스크림이다.

비록 허름한 노점에서 간단하게 대충 만드는 아이스크림 같아 보이지만, 전체적인 제작 공정과 원리는 시판되는 모든 아이스크림을 생산하는 방법이나 공정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수제 아이스크림을 실제로 만드는 것은 보기보다 힘들고 까다롭다. 많은 연습이 반 듯이 필요하다.

초기에는 차거운 철판을 만들기 위해 며칠씩 냉동실에서 얼려놓은 철판 여럿을 교대로 꺼내서 사용했는데, 지금은 철판 아래 드라이아이스를 놓고 사용하기에 극도의 냉기를 오래 보존하며 사용할 수 있게되었다. 아이스크림의 생명이랄 수 있는 부드러운 식감은 재료들이 다져지고 섞이는 과정에서 틈새로 스며드는 공기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같은 재료로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만드는 사람의 숙련도와 재료를 혼합하고 섞는 솜씨에 의해 크게 맛이 달라진다. 길게 줄을 서는 맛집과 손님이 찾지 않는 맛집의 차이가 바로 그것이라 하겠다.

딸기. 바나나. 망고. 오렌지가 있는가 하면, 쵸코렛이나 코코넛 비스켓이나 크림 샌드나 쵸코파이로도 가능하다. 여러 가지 쥬스를 혼합하기도 하고 럼이나 보드카나 위스키를 섞는 주문하는 성인들도 제법 많이 있다. 물론 보드카 같은 특별한 주문에는 들어가는 재료에 따른 별도의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그렇다면 마트에서 시작해 아이스크림 전문점까지 버젓이 존재하는 현실속에서도, 의외로 동남아의 많은 여행지 야시장이나 길거리에서 이색 먹거리나 주전부리로 철판 아이스크림이 지대한 관심과 절대적 사랑을 받게 된 것일까?

가만히 돌이켜 보면 동남아 곳곳의 모든 유명 여행지나 야시장마다 반듯이 있었던 기억이 확연하게 되살아난다. 그게 어디서 부터였지?

철판 아이스크림의 본래 이름은‘아이띰 팟(ไอติมผัด)’이다. 태국어 이름으로 여기에서의 ‘팟(ผัด)’은 ‘볶다’를 뜻한다.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 여행자 거리에 누군가가 작은 가판대(리어카)에 냉동실에서 얼려서 온 철판을 깔고 그 위에 우유와 과자와 과일을 섞어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판매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철판에 야채나 닭고기를 볶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볶은 아이스크림(아이띰 팟)’이라 불리며 널리 퍼져나가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아무리 길거리 음식이라지만 대형 제과점이나 아이스크림 전문 회사와 거의 똑같은 원리와 공정을 특별한 시설이나 장비없이 수제로 만들어내는 것이었으니, 숙련까지의 연습과 훈련이 실로 엄청났으리라 짐작이 되고도 남지만, 아마도 그 창시자는 물리학도였거나 아이스크림 전문 회사의 기술자 출신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엄연히 특정 매카니즘에 의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한 평이면 족한 공간에 냉동철판과 그 아래 드라이 아이스, 거기에 주걱 두 개와 우유와 몇 가지 재료면 끝. 나머지는 생산자의 숙련된 손놀림과 솜씨면 다양하고 제각각의 매력적인 철판 아이스크림이 쑥 하고 튀어 나온다.

우리 병아리들의 환해지는 표정을 보면 이내 그 맛과 희열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이 되고 남는다. 아마도 동남아 여행에서 찾아낸 최고의 맛이 철판 아이스크림이 아니었을까?

무척 아쉽다. 그랬음에도 정작 아직 먹어보지를 못했으니 말이다. 다음엔 꼭 먹어봐야지.

예쁜 병아리들의 재방문에 철판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주는 삼촌의 반가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오늘도 4만동 X 2 = 8만동(약4천3백원) 인데, 우리 예쁜 병아리들이 무척이나 반가운 삼촌이 다음부터는 7만동으로 깎아주겠다고 먼저 제의해 준다. 낼부터는 할인을 받아 약 3천8백 원이다. 휴!!!!! 무조건 일단 귀엽고 예쁘고 볼 일이다. 아이스크림 삼촌의 사람보는 안목과 수준에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ㅋㅋㅋㅋ.

얘들아? 언제 잘거야? 밤 새울거니?’

‘조금만 더 있을게요. 할아버지 먼저 주무세요.’

‘일찍 자야 내일 혼똔섬에 케이블카(Phu Quoc Cable Car) 타고 썬 월드 물놀이장(Cáp treo Hón Thơm)가서 실컷 논단 말이야.’

‘잘 알아요. 작년에 나짱에서 빈펄랜드 케이블카 타고 두 번이나 다녀왔잖아요. 걱정마시고 할아버지 먼저 주무세요.’

‘너희들 수근대는 소리와 아이패드 불빛 때문에 잠이 안오잖아.’

‘에이. 그래놓고 금방 먼저 코 곯으실거면서. 심하게 곯으시면 저희가 할아버지 코를 또 꼬집어 비틀거예요?’

‘할아버진 코 안곯은다니까? 한 번도 못 들어봤어.’

‘잠든 다음에 곯으니까 못들어 본 거지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딱 거기까지만........ (더는 기억에 없음)

눈을 떠 보니 날이 밝아오는 새벽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녀석들 어제 그 자리에서 제각각 신기한 자세로 서로 엉켜서 깊은 꿈나라에 빠져있다. 감기들라.

엉킨 것을 풀어서 따로 떼어 눕히고 따로 담요를 덮어준다. 할아버지 잠자리를 어느새 세리가 차지해 버렸다. 이 새벽에 차례로 굿나잇 뽀뽀를 해준다. ‘실컷 자두렴.’‘할아버지가 어젯밤엔 코 안곯았지? 원래 안곯은다니까?’

‘애들 선잠 깨면 안돼. 자꾸 귀찮게 건드리지 마. 그러면 깬단 말이야?’할아버지 꼼지락거리는 소리에 할머니가 그만 잠에서 깬다.

‘잘 잤어? 견딜만 해?’

‘그러저럭. 피곤은 영 안풀리네? 수술 부위도 뻐근한게 영 거슬리네? 오늘은 많이 걸어야 하는데 걱정이야.’

‘조심해야지. 천천히 쉬면서 움직이자고. 무리하지 말고.’

‘애들이 그렇게 둬? 할아버지가 좀 맡아주면 좋을텐테 뒷짐만 지고 있고, 그러니 애들이 할머니한테만 덤벼들잖아?’

‘애들이 할머니가 더 만만하고 좋다는데 어떻게 해. 나도 애는 쓰고 있다고?’

‘알지. 내가 힘드는데 당신은 힘 안들겠어? 아이고. 커갈수록 점점 힘들어. 이젠 정말 마지막이야. 이번만 하고 담엔 아들보고 너희들끼리 놀라고 말해 줄 거야. 아직 이럴 기운 남았을 때 우리끼리 유럽 가고 싶어.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다.’

‘그말 믿어도 돼?’

‘정말이라니까? <겡구에게 방학을 주자> 시즌 2로 끝. 다시는 안해.’

‘정말이지? 그럼 내년 이맘때는 프라하에 있겠네? 아니면 트빌리시에 있거나?’

‘거기로 우리끼리 가자고. 이젠 이 녀석들도 다 컸으니까 여기까지 정도면 어느만큼은 했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겠어?'

‘내년 겨울방학 쯤에 또 태리가 다이렉트로 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어오면?’

‘태리 전화? 받지 말아야지?’

‘태리 전화를 안 받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내가 믿지. “할머니 너무 추워서 푸꾸옥 생각이 자꾸 나요” 그러면 아예 한 달 살기로 작정하고 또 올거면서. 아니야? 거기다 아들은 “엄마 어떻게 좀 해 봐” 할 테고, 이쁜 겡구가 “어머니. 저 벌써 방학 계획 세워두었어요” 하면 어쩔거여?’

‘아들? 겡구? 우이 씨. 몰러. 일단은 무조건 여기서 끝. 할머니도 많이 힘들다구? 마음은 있어도 이젠 몸이 정말 힘들다구?’

‘그러다가 혹시 아들이 먼저 할머니 힘들테니 앞으로 애들 못보내준다고 나오면?’

‘안되지? 그건 또 절대 안되지? 내 새끼들인데 요 재롱둥이들 없이 무슨 재미로 살어? 그건 절대 안돼.’

‘그럼 어쩔 수 없네? 시즌 3 또 가야지 뭐.’

‘그런가? 그럼 아예 어디 가서 핸드폰 끊어버리고 한 달이상 애들만 데리고 눌러앉아 살 궁리를 해볼까?’

‘안 한다며? 끝났다며?’

‘그건 확실히 그랬지. 그런데 태리 세리가 원한다면 어떻게 해? "제발요. 할머니 부탁드려요" 하면? 당신은 우리 병아리들 이길 수 있어?’

‘당근이지! 난 딱뿌러지게 (안돼) 그럴 거야.’

‘개뿔! 퍽도 그러겠다. 내가 안된다고 해도 맨날 들어주면서......... 몰라. 일단은 여기서 끝이야. 알았지? 더는 입도 뻥끗하지 마? 알았지?’

‘재당근이지. 난 오매불망 유럽이라니까? 정 안되면 애들 데리고 유럽가면 되지 뭐.’

‘아니라니까? 유럽 비행기는 2인승 이라니까?’

‘4인승도 나오겠지 뭐.’

‘누구 죽는 꼴 보고싶니? 하지 말래면 하지 마라?’

‘어이구. 슬슬 깡패 할머니 나오신다.’

‘애들 때문에 여기서는 안되니까....... 할아버지. 옥상에 좀 올라가 있어.’

‘빨래 걷어올까? 병아리 수영복 다 말랐을꺼야. 내년 겨울 유럽여행엔 병아리 수영복까진 필요 없겠지?’

'내가 유럽은 분명 2인승이라고 말했다?'

'애들이 유럽 비행기 4인승도 있는거 알면 그게 끝까지 될려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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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오늘도 변함없이 산책을 간다.

해변 산책로를 따라 오늘은 남쪽 아랫방향으로 향한다. 인터콘티넨탈 프라이빗 비치을 향해 걷는다. 푸꾸옥 중남부의 마리나지역이다.

엄청나게 헐렁하다 못해 웃낄만큼 허접한 느낌이다.

열대 야자수 숲에 금빛백사장에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것은, 지중해 연안의 니스. 모나코. 마르세유 등의 세계적인 휴양지나 부산과 충무에서 보았던 크고 작은 요트로 가득 숲을 이루는 이미 익숙해진 마리나의 풍경이 넘쳐나고 있어야만 했는데, 실로 어처구니없게도 달랑 한 척의 요트가 전부였다. 마리나의 일상적인 풍경이 아니라, 이곳이 분명 마리나 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세트장처럼 의도적으로 한 척을 세워놓은 것 같다. 사진 찍기에는 나름 매력적일 수도 있겠는데..... 에게게게. 이게 마리나야?

컨티넨탈 호텔을 보니 역시나 엄청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압도적으로 다가오고, 주변 풍경과 프라이빗 비치를 둘러보면서 ‘이래서 돈이 좋은거구나’하는 은근한 자격지심 같은 것도 솔직히 든다. 역시 나하고 럭셔리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 ㅋㅋㅋㅋ.

돌아 나오는데 이런 새벽부터 화물차와 장비까지 몰려오더니 온통 검정색 장비와 옷차림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어떤 설치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작년 나짱에서 보았던 ‘새해맞이 밤샘 음악콘서트’무대 설치 버전의 미니 축소판 같다고나 할까.

솟구치는 호기심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슬며시 다가가 설치를 지시하는 사람에게 무슨 행사냐고 물어보는데, 이사람이나 저사람이나 손사래를 치는 것이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단다. 손짓 발짓 콩글리시를 통해 보니 오늘 저녁에 축제가 있다고 한다. 무슨 축제냐고 더 물어보았자 차도가 없을 것 같아 저녁에 직접 와서 확인해 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조가비 기념비까지 오니 멀리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병아리 두 마리가 뛰어오는게 보인다.

이 할아버지의 영원한 껌딱지들이다.(그렇게 믿고싶다)

함께 산책을 좀 더 할까 하는데...... 잠잠했던 새벽 바람이 다시 모진 광풍처럼 몰아닥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론?

이러면 오늘 하루 전체 일정에 차질이 심각하게 생기는데? 설마?

심상찮은 바람에 서둘러 병아리를 몰고 호텔로 돌아간다.

아침을 서둘러 해결하고 간단하게 짐을 챙겨서 택시를 타고 남부 혼똔섬으로 가는 케이블카를 타러 가야한다.

오늘은 혼똔섬 네이처파크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물놀이로 하루를 보내기로 한 날이다.

바람아 잔잔해 져라!

오늘도 잘 부탁해.





--- 다음 이야기에서 <혼똔섬 나들이>로 이어지겠습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피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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