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와 열의 여름방학
오는 이를 테면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도 일단 늘어놓고, 무엇을 살지 한참을 고민한다.
열은 오 보다는 금방 고르는 사람에 가까운데 열이 고르는 방식은 크게 보는 것이다. 단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 크림 아이스크림 중에서 가격이 가장 싼 것 !
이런 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 중에 가장 상위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다.
오와 열은 같은 반 학생이고, 한 달에 한 번 자리를 바꾸는데 여러번 짝궁이 되어서 친해졌다. 오가 답답한 열, 열이 답답한 오.
오와 열은 가끔씩 등교도 같이 했는데, 이상하게 서로가 직진하다가 커브로 돌 때 마주쳤다. 얼마 뒤면 오와 열은 여름 방학을 맞을 터였다. 교사는 방학 때도 학교 문을 개방하니
자습할 사람은 신청을 하라고 말했다. 오와 열 둘 다 여름방학 때까지 학교를 나오고 싶지 않으므로 신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대부분의 학생은 자습을 신청했다.
교사가 제안한 것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필연치 않은 이유가 아니라면 무조건 해야 하는 게 ‘자율학습’이었다. 오와 열은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불려 갔다.
오와 열은 교사를 만나기 전에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은 제안한다. “야, 우리 멘토링하는 거 어때? 내가 너보다 성적 더 높잖아. 대충 내가 너 가르치면서 공부하려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말을 못 하니까, 자습할 수 없다고 하자.” 오는 “ 선생님이 거짓말한다고 할 거 같은데..” 열은 “ 야 그럼 멘토링 일지 적자. 멘토링 일지 적고, 방학 끝나고 시험 점수 둘 다 오르면 대충 인정해 주겠지. “ 열의 작전은 먹혀들어갔나 보다. 교사는 은근 엄격하면서, 빈틈이 있는 유형이어서 열의 능수능란한 입담에 그대로 넘어갔다. 대신 열이 말한 대로 매번 일지를 쓰고 멘토링할 때 장소와 시간, 소감 등을 꼼꼼히 적어보내라는 것이 숙제였다.
오와 열은 방학을 맞았다. 둘은 실제로 만나서 멘토링을 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방학에는 집에서 쉬는 게 좋다고 둘은 생각했다. 그래서 오와 열은 번갈아 가며 일지를 거짓말로 적었고, 교사는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체크표시로 확인을 대신하는 정도였다. 열은 처음에 거짓말이 들통날까 걱정되기도 했는데, 이렇게 싱겁게 끝나버리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열은 오에게 연락한다.
- 야 뭐 하냐
- 나 그냥 있지
- 우리 진짜 멘토링하자
- 싫은데..? 이제 방학 열흘 밖에 안 남았어 걍 원래대로 하자
- 만나서 뭐라도 하자. 집에서 하는 것도 없고, 왠지 거짓말하는 게 재미없어졌어.
오와 열은 집 근처에서 만나 진짜로 멘토링을 하기로 한다. 열은 나름대로 교재도 정하고, 어떻게 가르치면 좋을지 구상해 왔다. 오는 그러는 열이 이상하다. 분명 우리는
자습을 안 나오기 위해서, 이런 작전을 쓴 건데 거짓말을 진실로 바꾸어 버리는 열이 아무래도 이상하다. 우리의 작전에 우리가 먹혀들어간 거 같다.
오는 말한다. “ 야 이럴 거면 그냥 자습하지. 뭐 하러 멘토링한다고 거짓말했냐? “ 열은 ” 나도 그걸 생각해 봤거든? 근데 내가 거짓말했던 대로 자습은 숨 막히잖아. 학교에서처럼
침묵하면서 공부할 텐데. 차라리 너랑 떠들면서 공부하는 게 낫지. 그리고 이제까지 일지 거짓말로 작성해서 거짓말이 대신 멘토링도 하고 일지도 썼으니까 재미없어졌어.”
오는 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역시 무언가를 안 해서 진실을 유예시키는 것보다 실제로 하는 게 더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서 둘은 성실하게 만나서 멘토링도 하고 시덥지 않은 농담도 던져가며 일지를 작성했다. 오는 열의 열정적인 강의에 정말 배우는 게 있었고, 열은 자신과는 정반대인 오를 가르치면서 정리되는 게 있었다.
방학이 이틀도 안 남은 날까지 둘은 만나서 멘토링을 했다. 열은 열심히 떠들면서 오를 가르치다가 문득 밖을 봤는데 햇볕이 내리쬐면서 매미 소리가 쉬익쉬익 들렸다.
오는 그런 열을 보다가 열의 시선을 따라갔다. 둘은 함께 창 밖을 바라봤다. 몇 시간 후 그들은 공부를 마친 후에 일지를 작성했다.
오: 진심으로 너무 열심히 살았던 여름방학이다. 진실로.
열: 진실을 유예시키려고 했는데.. 너무 진심을 다해서 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오와 열, 오는 생각을 가로로 늘어놓으며 천천히 걸어간다. 열은 성큼성큼 직진하며 걸어간다. 둘은 교차점에서 만나 함께 학교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