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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Dec 19. 2021

지혜롭게 활용하는 읽기의 기술(2) 심독 편


| 속독과 정독 |


속독이 전체의 맥락을 추적하면서 필요한 정보·핵심만 취하기 위한 빠른 독서법이라면, 심독은 자신의 내면세계에 변화를 줄 목적으로 책의 전체 기조에 풍덩 빠져 흠뻑 젖어보는 독서법이다.



| 정독이 심독으로 나아갈 때 |


아주 옛날 옛날에 중국은 진시황이 일으킨 분서갱유로 인해 수많은 유교 경전과 학자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당시 뜻 있는 사람들은 분서갱유를 피해 흙담장 속에 책을 숨겨두고나 집 벽에 책을 넣고 흙으로 발라버리곤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집을 허물거나 땅을 파거나 밭에 자갈을 캐다 보면 여러 종류의 책과 기물들이 발견되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머릿속에 든 것은 어떻게든 숨길 수가 없었으니, 제자를 남겨두지 못하고 죽은 스승들의 사상과 학문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수백 년이 지난 송나라 즈음에는 불교와 현학 및 노장철학이 주류가 되고 유교는 거의 잊혀서 명맥이 간당간당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오랜 시간 중국 역사에 뿌리를 내려온 불교는 오묘하면서도 깊은 논리가 장점이었고, 현학은 대중의 종교적 감성을 자극하는 강점이 있었으며, 노장철학은 고도의 형이상학적 논리와 철학으로 왕실부터 일반 대중까지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실낱같이 이어지던 유교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안타깝게 여긴 이들이 있었는데, 바로 북송의 다섯 성인이라 추앙된 북송오자[주돈이, 정이천, 정명도, 장횡거, 소강절]와 남송의 주희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책을 통해 멸절된 유교를 이해하고, 책 속에서 스승을 찾아낸 이들이다.


특히 주희가 살던 시대에는 고대 한문과 문법이 많이 달라져 당시 사람들은 분서갱유 속에서도 겨우 전해 내려온 고대 유교 경전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조선시대 훈민정음 해례본을 설명 없이는 이해하지 못하던 것과 같다. 그래서 주희는 거의 평생을 바쳐 고대의 유교 경전을 재분류하고 또 재해석하며, 당시의 문법으로 풀어내어 일일이 주석을 달았는데, 그것이 바로 ‘사서삼경[사서: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삼경: 시경, 서경, 역경]’이다. 주희 역시 책을 통해 오래전 성인들을 만나 교감하고 사색하며 ‘성리학’이라는 사상을 창건할 수 있었다.


그런 주자는 어떤 방식으로 독서를 했을까? 당시는 책이 그렇게 많던 시대가 아니어서 마음에 뜻이 새겨질 때까지 정독하고 숙독하는 독서법이 중심이었다. 즉, 책 한 권을 구하면 전체를 다 외우고, 한 문장 한 문장을 몇 날 며칠이고 사색하며 주변 사람들과 윤독(여러 사람이 같은 글이나 책을 돌려 읽으며 생각을 나누는 것)이나 강독(글의 뜻을 세세히 따져보고 밝혀 가며 읽는 것)을 하던 방식이었다. 고작 책 몇 권을 가지고 오랜 시간 씨름하며 읽는 것이라 다독과는 전혀 거리가 먼 방식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현인이 이러한 독서법으로 역가 속 인물을 스승으로 만나 학맥을 이어가고, 새로운 사조를 창건하며 역사를 이끌었다. 오히려 어마어마한 책을 다독하는 현대 사상가들보다 더 깊이 있는 철학이 오히려 소량의 책을 심독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으니,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 송나라 위인들의 독서법 |


이처럼 속독이나 다독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나 자신을 변화시켜 낼 수 있는 심독이다. 물론 그에는 양질을 책을 잘 고르는 것이 선행될 것이다. 결국 독서란 읽는 주체인 ‘내 마음’을 매개체 삼아 타인의 세계와 만나는 일이다.


북송 성리학으로 유명한 장자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고 나서 기존에 내가 가졌던) 의리(義理)에 의심이 간다면 예전의 견해는 씻어 버리고 새로운 뜻이 내 마음에 오게 해야 한다.” (사학규범仕學規範)


주자는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책을 통해 밝아진 이 마음이 유지된다. 책을 읽으면 이 마음이 항상 유지되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 의리를 알려고 해도 끝내 알 수가 없다.” (근사록)


또 독서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한 구절을 읽을 때 이 구절을 내가 장차 어디에 쓸 수 있을지를 반드시 전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주자어류)


주자의 스승격인 정자는 역사책을 보면서도 매우 심독하며 탐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혜안을 넓혀갔는데, 그 팁은 다음과 같았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어지러운 일이 생겨나는 조짐과 현인·군자의 출세와 은퇴, 그리고 일에 임하여 나아감과 물러나는 이치를 잘 보아야 하니 이것이 바로 일과 사물을 통해 이치를 깨닫는 길이다.” (근사록) 그래서 ‘절반쯤 읽다가 책을 덮고선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생각해 본 후에 이어서 뒷부분을 봤다고 한다. 또한 그 결과가 자신의 예상과 다른 점이 있으면 또다시 그 연유를 정밀하게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어람경사강의御覽經史講義)



| 독서에서 찾는 내면세계의 맞춤옷|


누구나 자신의 성장 단계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나야 할 ‘무엇’이 있다. 말, 글, 관점, 견해 등 지금의 얽힌 문제를 풀어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할 열쇠, 그것을 어디선가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인생의 큰 숙제 중 하나다. 그러한 측면에서, 아무리 가벼운 책이라도, 모든 책에는 심독해야 할 이유가 있다.


사람은 좀 더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경험해 봐야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날 수 있다. 직접 경험이 제일 좋겠지만, 시간과 공간적인 측면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책 속에 세워진 타인의 세계관에 풍덩 빠져들어 온전히 젖어들고 깊이 공감해 보는 경험은 대단히 중요하다. 정독은 마음으로 체득하는 심독으로 나아갈 때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문장 하나에서 자신만의 답을 발견하게 해준다. 비록 짧은 한 줄을 읽더라도 자신만의 화두가 될 자극을 얻었다면, 그것은 내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열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나아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품고 산다. 그리고 자신만의 성장 단계를 거쳐 간다. 이제 막 싹이 트는 사람도 있고, 질적 도약을 위해 양적인 축적을 하는 중인 사람도 있으며,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임계점에 선 사람도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필요한 자극과 경험이 다르다. 곧 누군가에게는 칭찬이 도움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칭찬이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단계에서 그 순간에 들어야 할 말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지금의 상태에 맞는 ‘바로 그 말’, ‘바로 그 자극’을 들으면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다.


즉, 현재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한 필요조건이 모두 다르기에, 지금의 임계치를 넣어서고 생각의 방향 전환을 유도해 마음의 한계를 깨 줄 그런 ‘열쇠’ 같은 말이 참 중요하다.


많은 경우 그것은 경험, 사람과의 관계, 대화나 교육 등을 통해 얻기도 하지만, 자신과 다른 세계와 공감하면서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내면의 응어리가 풀어지고 자신이 그어놓은 한계점이 지워질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 측면에서 독서는 정보를 얻거나, 관점을 넓히거나, 생각하는 힘을 얻는 것 이외에도 한계를 넘어설 화두를 주는 매개체가 되어 준다는 점에서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그러한 독서는 심독을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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