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년 이야기를 구상하며
아버지가 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 건 이상한 조짐이었다. 그것도 술 냄새 하나 풍기지 않은 채 사립문을 밀고 들어온 것이다. 사실, 댑싸리를 엮어 만든 사립문이 입때껏 남아 있는 것만도 용한 일이었다.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들어올 때마다 아버지는 사립문을 걷어차곤 했다. 곧 넘어갈 듯 비척거리다가도 발가락에 눈이 달렸는지 사립문 앞에만 서면 냅다 발길질을 해댔다. 문짝 아래 귀퉁이에 너덜너덜 틈이 벌어져 동네 개들까지 수시로 기웃거렸다.
그러던 아버지가 멀쩡하게 맨정신으로 집에 들어왔다. 무명 두루마기엔 흙 자국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툇마루에 주저앉았다. 보리쌀 자루 넘어가듯 쿵 하는 소리가 났다. 툇마루 아래 모여 있던 동생들이 아버지를 피해 문밖으로 달아났다. 개복숭아나무 그림자가 마당 한가운데 드러누웠고 비루먹은 누렁이가 땅바닥에 턱을 괸 채 엎어져 있었다.
기척을 듣고 어머니가 부엌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소나무 삭정이 타는 냄새가 부엌문을 나와 울을 타고 넘어갔다. 해지기 전에 들어온 남편이지만 반가울 리 없었다. 시선을 거둔 어머니가 도로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가마 속에선 소나무 속껍질에 수수 가루를 섞어 넣은 송기죽이 끓고 있었다. 묽은 보리죽조차 끊어진 지 오래였다. 어머니의 얼룩진 손등 위로 굵은 핏줄이 거머리처럼 움찔거렸다.
툇마루 끝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목소리는 낮고 침울했다.
“둘째 년 어디 있느냐. 이리 나와 봐라.”
깨진 징 소리처럼 아버지 목소리는 늘 울분에 차 있었다. 우리를 부를 때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웬일인지 다른 때와는 사뭇 달랐다. 뭔가에 짓눌린 듯한 풀이 죽은 목소리였다.
두레박을 올려놓고 나서 나는 앞치마에 손을 씻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마루 기둥에 등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나는 시선을 내리깔고 우물 아래로 내려섰다. 아버지의 낡은 짚신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펑퍼짐한 짚신 앞축의 올이 풀려 너덜거렸다.
“물 한 잔 다오.”
두레박 속에서 찬물 한 바가지를 퍼 올렸다. 찬물에 취하기라도 하려는 듯 아버지의 목울대가 거세게 오르내렸다. 광대뼈 아래로 자상(刺傷) 같은 주름살이 줄줄이 패여 있었다. 물을 켜고 난 아버지가 힐끔 나를 내려다봤다.
“니가 몇 살이냐?”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열아홉이요. 나이는 왜…”
아버지가 대답 없이 앞산 중턱을 올려다봤다. 지난해 장마에 무너져 내린 산 중턱 아래로 붉은 석양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라도 잘 살거라……. 굶지 말고……”
어머니는 저고리와 치마 한 벌, 버선 한 켤레를 보따리에 쌌다. 건네받은 보따리가 천근같이 무거웠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안고 울었다. 손길이 나뭇등걸처럼 거칠었다. 눈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내렸다. 나는 보따리를 가슴에 안고 울면서 사립문을 나섰다. 아버지가 말없이 앞서 걸었다. 내가 집을 떠나는 게 아니라 집이 나를 밀쳐내고 있었다. 아니, 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구석이 나를 놓아주고 있었다. 앞서 걷는 아버지 두루마기 옷고름이 바람에 너풀거렸다.
1833년생인 고조할머니는 그렇게 전주이씨 집안의 어린 첩이 되었다. 남편과는 마흔 살 차이, 남편의 큰아들보다도 다섯 살이 어린 나이였다. 친정으로는 논 서 마지기가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