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 밖 청산으로 길을 재촉하다
만가輓歌
김병렬 (1952 - ) 장흥 출생
꽃 치레 고운
족두리였네
연분홍 치맛자락
팔랑팔랑 나부끼며
칠정七井 겹줄 꽃배 타고
소쩍새 울음 따라
누가 저리 재촉해
미망迷妄의 강 건너가나
앞 내 따라
뒷산 넘어
저 나루에서 꽃배 타고
누가 저리 건너가나
동백꽃 붉다 하나
피보다 더 진하더냐
이 연緣 저 연緣
다 마다 하고
흙 내 풀 내 속 지나
낯설고 길 설다는
이승 밖에 어디
또 청산靑山 있어
저리 재촉해
길 떠나는가.
□ 삶은 결국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맙니다. 남 부럽지 않은 영화를 누린 사람도 그 삶의 끝은 죽음일 테니까요. 하물며 평생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겐 이승이 곧 지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겁니다. 삶은 근심과 걱정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할 때가 많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안개 낀 산길을 헤매는 거와 같다고들 합니다. 그것을 미망(迷妄)이라고 하지요. 그 근심과 걱정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날이 곧 죽는 날이기도 합니다.
망우(忘憂)! 그래서였을까요. 죽은 이를 떠메고 가는 상여는 마치 꽃으로 장식한 고운 족두리 같습니다. 칠정 겹줄로 이어진 고운 꽃배 같기도 합니다. 이 미망의 강을 건너가는 날, 이런 저런 인연을 모두 끊어버리고 이승 밖에 있는 저 청산을 향해 떠나가는 날,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서글픈 진양조 가락에 맞춰 온갖 죄악, 다툼, 고통이 없는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날, 망자(亡者)는 연분홍 치맛자락에 꽃 장식 화려한 꽃배를 타고 이승 밖 청산 속으로 길을 재촉합니다.
화자의 눈에 망자가 길을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죽음을 애달파 하는 마음이 사무치기 때문입니다. ‘누가 저리 재촉해 미망의 강 건너가나’, ‘저 나루에서 꽃배 타고 누가 저리 건너가나’, ‘이승 밖에 어디 또 청산이 있어 저리 재촉해 길 떠나는가.’ 화자의 서글픈 감정은 문장 끝에 거듭되는 의문형 어미에 눈물처럼 맺혀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승을 떠나는 사람을 고운 꽃배(상여)에 태우고 망자의 한과 설움을 풀어 노래하는 것이 만가(輓歌)입니다. ‘이승 밖에 어디 또 청산이 있어 저리 재촉해 길 떠나는가’ 죽어서 한줌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 이승 밖에 어디 또 청산이 있을 것인가. 화자는 무상한 인생, 바람같은 삶을 허허롭게 노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