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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와 말벗

by 은하수

세상이 몹시 어지럽습니다. 양편으로 갈라선 정치판은 도무지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은 하염없이 결혼을 미루고 있고 65세 이상 노령층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습니다. 인구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국가 소멸론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1953년 이래 남북 전쟁은 휴전 상태에 머물러 있지만 언제 어디서든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다분합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속으로는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지층 아래로 흐르는 마그마가 어디로 터져 나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참 걱정스러운 세상입니다. 하긴 태초 이래, 태평성대가 있기는 있었을까요. 인간 사는 세상이야 다 거기서 거기일 테니까요. 현자가 있으면 도둑이 있고 양민(良民)이 있으면 모리배가 있기 마련입니다. 평화가 있으면 전쟁이 있고 질서의 그림자 속엔 늘 파괴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정점(頂点)이 있으면 나락이 있고 화가 있으면 또 복이 있게 됩니다.

문학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독자 스스로 묻고 답하게 합니다. 그렇다 보니 문학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는 남보다 더욱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하고 남보다 더 많이 번민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충분히 겪어낸 작가가 현명한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한편의 문학 작품은 어찌 보면 무수한 번민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고뇌와 번민, 그것이 작가의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과정을 기꺼이 겪어내는 작가가 이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팡이가 되어 주고 말벗이 되어 줄 수 있을 겁니다. 독자로 하여금 여기저기 더듬어서 갈 길을 스스로 찾게 하는, 그러면서 어려운 고비를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게 하는 말벗!

새해에는 더 든든한 지팡이, 더 다정스러운 말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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