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시원한 커피 30 여잔

by 히히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남은 건, 오롯이 즐거운 쇼핑 시간이었지요.

그날의 저는 꽤 신중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약 30만 원이라는 금액은 취미로 한 번에 쓰기엔 결코 가벼운 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신중히, 오래 고민하며 선택했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건 ‘샘플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였습니다.
나라별로 수확 시기와 C.O.E 옥션 일정이 제각각이라 아무거나 고를 수는 없었지요.
그 과정에서, 예전에 들었던 한 바리스타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는 제철 과일과도 같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속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커피에도 제철이 있다면, 지금 이 시기의 커피는 어떤 향을 품고 있을까.
그 생각 하나로 설레는 마음이 피어올랐습니다.

사실 오래전의 일이라, 왜 하필 르완다 커피를 선택했는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국내에서는 르완다 커피를 다양하게 접하기 어려웠던 탓이었겠지요.
아마 그 ‘낯섦’과 ‘새로움’이 저를 끌어당겼던 것 같습니다.

샘플을 주문하고 몇 주쯤 지났을까요.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부산세관입니다. 이거 어떤 목적으로 구매하신 건가요?”


"어... 네?"

별거 아닌 전화에 저는 조금 많이 당황했습니다.
커피 샘플을 취미로 구입하는 사람이 흔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서로 이해하기 힘든 대화를 주고받은 끝에, 다행히 별 탈 없이 통관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며칠 뒤, 드디어 제 손에 도착한 상자 안에는 약 30개의 생두 샘플이 고이 담겨 있었습니다.

순위별로 정리된 샘플을 바라보며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결국 저는 끝번호부터 10개 단위로 나누어 로스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숨을 고르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로스터 앞에 섰습니다.

3일 동안 총 30개의 샘플을 볶았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통째로 비워, 각각의 커피를 소량씩 시음했습니다.

어떤 것은 로스팅이 약간 빗나가 미묘한 맛을 냈지만,
대부분의 커피는 놀라울 만큼 부드러운 단맛 위에,
다양한 과일 향이 은은하게 피어올랐습니다.
입안 가득 감도는 그 복합적인 향미는, 그동안 제가 찾아 헤매던 ‘무언가’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한 잔 한 잔이 신기했고,
그 신기함이 쌓일수록 제 안의 세계가 조금씩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제 입맛을 한층 더 끌어올려 주었지만,
무엇보다 오래도록 해소되지 않던 답답한 갈증이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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