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볶아 보자.

by 히히

사실 뭔가 좀... 일이 커지는 것 같아 끝까지 손을 대지 않으려 했던 것이 바로 로스팅이었습니다.

지금도 로스팅을 하고는 있지만, 역시 쉽지 않은 것이 로스팅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이 로스팅이라는 게 뭐랄까... 저로서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는 세계였거든요. 감히 내가 이걸 해도 되는 건가 싶은, 그런 주저함이 컸습니다.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요.) 그래서 늘 궁금했지만 막상 손은 대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걸 또 가스버너에다, 조그만 장난감 같은 로스터기로 볶는다고 생각하면...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앞서서 선뜻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역시 호기심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대로 된 로스팅은 아니어도 샘플 로스팅은 대략적인 뉘앙스만 보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듣고, 스스로 납득하며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중고 로스터기를 하나 들였습니다.

두근두근한 마음을 억누르며 가스버너를 켜고 예열을 한 뒤, 회사에서 안 쓰던 생두를 챙겨 시험 삼아 로스팅을 진행했습니다.

열이 오르면서 생두가 변해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는 ‘티티딕’ 하고 울리는 1차 팝 소리를 들은 뒤 곧바로 커피를 빼냈습니다. 충분히 쿨링기로 식힌 후, 제가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맛보았을 때의 그 즐거움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아, 커피 맛은 그냥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이 단순한 행위 자체에서 오는 재미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과학상자를 조립하면서 뭔가 대단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던 그 기분과 비슷했습니다. 로스팅이라는 게 결국 불 위에 콩을 올려놓고 색이 변하는 걸 지켜보는 일인데, 그 순간만큼은 괜히 ‘지금 나는 커피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으니까요.

물론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몇 번 해보니 금세 알겠더군요. ‘아, 이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구나.’ 생두는 각각 매번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났고, 열은 생각처럼 균일하게 퍼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진 정보라고 해봤자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몇 줄짜리 글과 귀에 의존한 애매한 팝 소리뿐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지식도 없이 ‘괜찮을 거야’ 하며 볶아내니 결과물은 늘... 글쎄, 그냥 커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데도 자꾸만 불을 켜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기준을 다시 세웠습니다. 어차피 샘플 로스팅이라면 상업용 로스터와 비교하지 말자. 그리고 속만 적당히 익혀도 ‘아, 이 정도 뉘앙스구나’ 하고 감을 잡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묘하게 느슨한 기준 말입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기준 하나로 샘플 로스팅은 조금 더 즐겁고, 조금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결과물은 여전히 “그냥 커피”일 때가 많지만, 어쨌든 그 ‘그냥’이라는 단어 안에서만큼은 나름의 세계가 열리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마침내, 충분한 연습을 끝내고 나니 이제는 진짜 볶고 싶었던, COE 커피를 볶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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