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은 제게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커피라는 세계의 새로운 문을 열어준 계기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짧은 여행이 제 인생의 커피 여정을 완전히 다른 길로 이끌어 주었지요.
그동안 제가 읽어 온 수많은 책들을 떠올려 보면, 각 나라의 커피를 설명하는 정형화된 표현들이 늘 존재했습니다. 마치 교과서 속 정의처럼, 책 속의 문장들은 일정한 틀 안에서 반복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 내용들을 두고 “틀렸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수십 년간 정리된 연구와 데이터, 스탠더드 한 품종과 재배 방식, 그리고 압도적으로 높은 수확량이라는 객관적 근거 위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평균적으로 본다면 충분히 맞는 말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뭔가 다른 게 있을 텐데..."
예를 들어, 브라질 커피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고소한 견과류 향, 상대적으로 낮은 산미, 그리고 어느 정도 높은 포인트에서 로스팅해도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커피.’ 사실 이런 인식은 참으로 편리했습니다. 커피를 설명할 때 한두 단어만 꺼내면 대체로 통했으니까요. 마치 “브라질=견과류”라는 단순한 공식만으로도 대화가 끝나버리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운명처럼 마주하게 된 C.O.E 2위 브라질 생두는 제 안의 모든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충격,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 커피에서 느껴진 맛을 지금 다시 떠올려 본다면—명확하게 드러나는 베리류의 향, 입안을 가득 채우는 농밀하고도 선명한 단맛, 그리고 여러 가지 티(tea)가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 내는 깊고 복합적인 뒷맛. 그 순간 제 몸을 타고 흐른 것은 한 단어로 압축할 수 있었습니다.
전율.
전율이라는 표현이야말로, 그 순간 제 감각을 설명하기에 가장 정확하고 어울리는 단어였습니다. 첫 모금을 삼키던 순간의 심장이 두근거리던 기억, 마치 내 안에서 어떤 세계가 열리는 듯한 전율이 밀려왔습니다.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저는 결국 원두만 약 30만 원어치를 사 들고 귀국했습니다. 공항 수화물 가방 속, 묵직하게 자리 잡은 커피 봉투들을 바라보며 혼자 피식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누군가는 기념품을 사 들고 돌아오는데, 나는 결국 원두를 한 바가지나 챙겨 가는구나.” 하지만 제게 그것은 그 어떤 기념품보다 값지고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귀국 후 저는 틈틈이 원두를 내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어 마시며 여행의 여운을 이어갔습니다. 잔 속에서 피어오르는 향과 맛은 단순히 커피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을 다시 불러오는 매개체였습니다. 입술에 닿는 온기와 향은 여행 중의 대화, 웃음, 그리고 낯선 거리의 공기까지도 함께 불러왔습니다. 커피는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고, 저에게는 기억을 다시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질문이 피어올랐습니다. “이런 품종의 원두를 국내에서는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그런 커피는 국내에서 거의 구할 수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유를 곱씹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구매자가 적다는 점이 가장 크겠지요. 수요가 없으니 공급도 따르지 않습니다. 설령 누군가 들여온다 해도, 고가의 생두를 다루는 일은 늘 부담스럽습니다. 비싼 원두를 로스팅하다 실패했을 때 감당해야 할 손실은 상상 이상이니까요. 결국 저 같은 소수의 니즈를 충족시켜 줄 만한 곳은 드물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짜증이 솟구쳤습니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아, 이렇게 좋은 커피를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걸까?” 머릿속에서 같은 질문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빈 잔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그 속에서 대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허무하게 가라앉은 커피 찌꺼기만이 잔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주 단순하면서도 새로운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 이걸 직접 볶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
…?
아? 직접 볶으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