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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원 Jun 28. 2023

육아.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장화를 신게 했다면 어땠을까? 


엄마! 미워! 엄마를 이렇게 때리고 싶은 마음이야! 
계속계속 화만 낼 거야~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월요일 아침부터 부슬부슬 쏟아지는 빗물을 보다가 딸의 작아진 장화를 버렸다는 게 생각났다. 고민하다가 분홍색 가득한 장화를 하나 주문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예쁜 분홍색 장화를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라는 생각에 신이 났다.  


  포장된 장화를 보자마자 돌고래 초음파를 쏘며 설렘을 잔뜩 머금은 딸은 집안에서 장화를 신고 놀겠다며 거실을 휘젓고 다녔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장화 소리가 거슬렸고 듣기가 싫었다. 아이에게 장화가 마음에 들어서 신고 놀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밖에서 신는 신발이니 산책 나갈 때 신자고 했지만 평소랑 다르게 아이는 떼를 부리며 신겠다며 우겼다. 


  딸과 엄마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장화는 밖에서 신어야 한다는 엄마와 기어코 집안에서 신고 놀겠다는 5살 된 딸. 그런데 딸의 생각과 행동에 잘못은 없었다. 거실에는 매트도 있고 복도에는 이불을 넓게 펴주면 소음은 문제가 될게 아니었다. 아이와 한참 입씨름을 하고 휴전상태에서 생각하니 평소 같으면 "네 나가서 신을게요."라며 예쁘게 대답해 줄 딸이 왜 이럴까 생각해 봤다. 바로 나의 귀찮음이었다. 아이가 오기 전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반찬을 만들며 에너지를 과하게 써버린 탓에 평소 같았으면 기꺼이 그러라고 했을 텐데 못하게 했다. 딸이 이불 깔아주기도 귀찮은 나의 기분을 알아챈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계속해서 화가 난다는 딸에게 지친 나머지 "그렇지 화날 수 있어. 그런데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얘기하면 엄마는 귀가 너무 아파서 듣기가 힘들어. 그러니까 00 이가 엄마한테 조용히 얘기할 수 있을 때 얘기해 줘. 그래야 우리가 장화를 신고 나가서 놀지 아니면 다른 놀이를 할지 정할 수 있어." 라며 답하자 아이는 더 화가 났다. "아니야 그래도 자꾸만 화가 난단 말이야. 계속 때리고 싶고 소리 지르기만 할 거야."라며 떼를 썼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는 스스로 진정하고는 나에게 안기면서도 "그래도 마음에 화가 나."라고 말한다. 나는 연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맞아 엄마가 부츠 신게 해 줄 수도 있는데 사실 엄마가 좀 귀찮았나 봐, 새 신발이라 거실이 더러워지지도 않을 거고 이불 깔아서 걷게 했으면 시끄럽지도 않고 좋았을 걸 그렇지? 미안해 엄마가."라고 사과하자 그제야 "응 맞아, 부츠는 그럼 내일 신을 거야."라고 말하며 싱그럽게 웃어 보였다. 


  내 감정을 알아차린다는 게 사실 쉽지는 않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는 말은 그래서 내가 좋아하지만 행하기 쉽지 않은 자세이기도 하다. 기분에 휩싸여 내지 않아도 될 화를 내고 평소보다 예민하게 굴고 그렇게 주변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줄 때도 있다. 이렇게 오늘같이 사과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중에 깨닫는 순간이 더 많다.



 "지금 나의 기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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