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데이 프로젝트 부록] 국가대표팀 경기분석: 미국원정 2연전 리뷰(1)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홍명보호는 이번 미국 원정 두 경기에서 모두 343(또는 3421) 시스템을 사용했다. 홍명보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직후 치렀던 아시아 월드컵 지역예선 경기들에서는 모두 백4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동아시안컵에서 처음 백3를 실험했다. 동아시안컵 때는 해외파가 빠져서 반쪽짜리 실험에 불과했다면, 이번 미국 원정에서는 부상으로 제외된 일부 선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의 베스트 멤버로 첫 진짜배기 백3 실험을 할 수 있었다.(*쓰리백, 또는 3백은 엄밀히 말하면 콩글리시이다. 영어로는 3 at the back 또는 back 3를 주로 쓴다. 본 글에서는 백3, 백4로 표기하겠다.)
사실 백4와 백3를 두고 어느 하나가 더 수비적이거나 더 공격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백3는 매우 수비적으로 운용한다면 사실상 백5로 내려앉는 포메이션이 될 수도 있고, 백4를 매우 공격적으로 운용한다면, 마치 김민재가 뛰던 시절의 나폴리처럼 후방에 2~3명만 남기고 모두 공격적으로 올라가는 포메이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둘 중 어느 것이 더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최근 유럽의 강팀들을 보면 적어도 선발 라인업 표기 상으로는 백3를 쓰는 팀과 백4를 쓰는 팀이 고루 섞여있다.
최신의 유럽 축구 트렌드 중 하나를 굳이 꼽자면, 표기된 포메이션 상에는 백4로 나와있어도 실제 경기 상황에서는 백3 형태의 빌드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애초에 백3를 들고 나와서 후방에 3명의 센터백을 두고 빌드업을 하는 팀들도 있는가 하면, 표기된 포메이션은 백4이지만, 양 풀백 중 한명 또는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명이 사실상 백3의 센터백 중 하나처럼 최후방 수비라인에 합류하여 백3 형태를 만들어 빌드업을 하는 것이 거의 표준처럼 되어 있다. 홍명보호의 경우도 비슷했다. 백4를 쓴 경기에서도 소위 '라볼피아나'로 불리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센터백 라인에 합류해 백3 형태를 만드는 빌드업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고, 양 풀백 중 한명, 예컨대 레프트백(LB) 이태석이 백3의 레프트 센터백(LCB)처럼 위치해 사실상의 백3로 빌드업을 하기도 했다.
김민재, 손흥민 등 국가대표팀 핵심 멤버들을 활용한 백3 시스템이 어떨지 궁금했다. 기대되는 면도 있었고, 우려되는 면도 있었다. 미국전과 멕시코전을 보고 느낀 점은, 아직 당연히 완성도가 높진 않지만 그래도 기대할만한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미국전, 멕시코전에서 볼 수 있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백3 시스템의 좋았던 점과 보완해야 할 점, 그리고 개인적으로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포인트 몇가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본 글에서는 그 첫번째로 343 시스템 하에서의 손흥민과 김민재에 대해 다룬다.
미국전에서 오랜만에 손흥민, 김민재이 모두 함께 선발 출전했다. 343(또는 3421) 시스템에서 손흥민은 최전방 스트라이커, 김민재는 중앙 센터백(스위퍼)이었다. 손흥민이 최전방에, 김민재가 최후방에 위치한 미국전 전반전 경기력은 매우 좋았다. 그리고 경기력이 좋았던 데에는 여러 전술적 이유가 있었다.
먼저 최전방 공격수, '원톱' 스트라이커로서의 손흥민의 존재감이 매우 컸다.(앞서 말한 '쓰리백'과 같이, '원톱' 역시 콩글리시이다. 원톱을 영어로는 lone striker 등으로 부르는데, 본 글에서는 '스트라이커'로 칭하겠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손흥민의 포지션은 왼쪽 윙포워드이다. 최전성기에는 국가대표팀에서도, 토트넘에서도 모두 9번 스트라이커가 별도로 있는 상태에서 왼쪽 윙포워드로 뛰었다. 측면을 허무는 드리블 돌파는 물론, 순간적으로 가운데로 치며 특유의 중거리 감아차기, 박스침투 후 양발을 활용한 마무리 등 완성형 윙포워드의 모습을 보여주며 월드클래스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손흥민은 더 이상 윙포워드로서는 최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특히 드리블 돌파의 위력이 이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상대팀의 측면 수비수를 기술과 스피드로 압도하는 모습이 적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손흥민만의 강점은 살아있다. 특히 양발을 활용한 마무리 능력, 순간적인 침투 움직임, 적극적인 전방압박 등은 여전히 국가대표팀에서는 당연히 최고이고 세계적인 수준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이러한 강점들을 놓고 봤을 때, 이제 손흥민에게 최적의 포지션은 윙포워드보다는 스트라이커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전에서 343의 중앙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교체 아웃되기 전까지 매우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팀을 이끄는 적극적인 전방압박, 순간적인 뒷공간 침투, 때때로 내려와서 볼을 받아주는 등 스트라이커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스트라이커 손흥민에게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우리팀의 수비수나 미드필더가 공을 잡았을 때 상대가 수비 전형을 잘 갖추고 있어 공을 전진시키기 어려워보이는 상황에서도 순간적인 침투 움직임을 통해 전진 패스가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습은 특히 첫 골 장면에서 잘 보였는데, 평범한 지공 상황에서 손흥민이 순간적인 뒷공간 침투를 했고 이를 포착한 이재성의 정확한 전진 패스 한방에 골키퍼와 1:1에 가까운 슛 찬스가 만들어졌다. 각이 없는 상황에서의 정확한 왼발슛 마무리는 손흥민의 최고 장점이 그대로 발휘된 것이었다.
손흥민을 스트라이커에 기용하면 손흥민이 체력의 대부분을 공격 상황에 쓸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윙포워드의 경우 전방압박에 가담하면서도, 팀이 내려앉아 수비를 하는 상황에서는 윙백(또는 풀백)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 팀 박스 근처까지 내려가 수비 지원을 해줘야 한다. 즉 수비 커버 범위가 매우 넓다. 반면 스트라이커의 경우 전방압박의 기수 역할을 담당하지만, 팀이 내려앉은 상황에서는 다른 포지션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비 부담이 적은 편이다. 그 만큼 수비 상황에서 체력 소모를 최소화하여 공격 상황, 특히 역습 상황에서 매우 날카로운 모습을 더 일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에서 대부분의 강팀을 상대로 선수비 후역습의 전술을 택할 수 밖에 없는데, 역습 상황에 집중하는 손흥민의 존재는 상대팀에게 매우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홍명보가 오세훈이나 주민규 같은 유형의 9번 스트라이커에게서 기대하는 포스트플레이, 즉 상대 수비를 등져서 힘으로 제압하거나 공중볼 경합에서 경쟁력을 보이는 플레이에 있어서는 손흥민은 전형적인 9번 유형의 선수들보다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트라이커 손흥민은 포스트플레이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영역에서 적어도 국가대표팀의 다른 모든 공격수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적극적인 전방압박, 빠르고 정확한 역습에 있어서는 그 전술적 가치가 다른 공격수들을 압도한다. 예컨대 미국전 두번째 골 상황에서는 상대 미드필드 라인과 수비 라인 사이에서 공을 받은 후 이재성과의 2:1 패스를 통해 이동경에게 0.9골짜리 어시스트를 해주는 다재다능한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줬다.
김민재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백4의 일원으로 뛰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나폴리에서도, 뮌헨에서도 쭉 백4의 센터백이었다. 백4에서는 상황에 따라서 왼쪽 센터백을 보기도, 오른쪽 센터백을 보기도 했다. 김민재가 백3의 일원으로 뛰는 거는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미국전과 멕시코전을 보면서 든 생각은, 국가대표팀에서는 어쩌면 백3가 김민재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일 수 있겠다하는 생각이었다.
백4에서는 양 센터백이, 쉽게 말하자면 왼쪽 수비와 오른쪽 수비에 대해 50:50의 책임을 진다. 우리 팀의 왼쪽이 주로 공격을 당할 때에는 두 센터백 중 왼쪽 센터백이 조금 더 왼쪽으로 끌려나가서 풀백이 뚫렸을 때를 대비하기도 하고, 하프스페이스로 침투하는 상대 선수를 따라서 끌려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때 오른쪽 센터백은 조금더 가운데로 들어와서 박스 안 수비를 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오른쪽 센터백이 끌려나가면 그만큼의 빈 공간을 왼쪽 센터백이 커버하게 된다. 백4의 두 센터백이 모두 김민재 급의 선수라면 괜찮겠지만 만약 두 센터백 간의 실력 차이가 난다면 이러한 상황, 즉 한쪽 센터백이 끌려나가며 어쩔 수 없이 중앙 공간을 비우게 되는 상황에서 박스 안 수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국가대표팀에서 김민재가 오른쪽 센터백으로 뛰면 경우에 따라 김민재가 오른쪽 풀백을 커버하기 위해, 또는 오른쪽 하프스페이스로 침투하는 상대 선수를 막기 위해 지역방어를 하던 중앙 지역에서 어쩔 수 없이 오른쩍 측면으로 끌려나가게 된다. 이때 박스 안 중앙 공간, 또는 골대 앞쪽 공간에는 왼쪽 센터백만 남게 된다. 이 선수의 박스 안 수비능력이 김민재에 미치지 못한다면, 크로스를 허용할 경우 상대 공격수에게 좋은 찬스를 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백4 수비라인에서는 김민재의 개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한쪽 측면의 수비에서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반대쪽 측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력만을 미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백3에서는 '스위퍼'로 불리는 중앙 센터백이 양 측면에 대해 동일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스위퍼 양 옆에 '스토퍼', 즉 측면 센터백이 한명씩 있으니, 윙백 커버 또는 하프스페이스 수비를 위해서 스토퍼가 지역방어를 이탈하게 돼도 스위퍼는 중앙 공간을 크게 비우지 않는 선에서 스토퍼에 대한 수비 커버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왼쪽에 대해서도, 오른쪽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백4에서는 김민재가 왼쪽 센터백이냐 오른쪽 센터백이냐에 따라 한쪽에 대해서는 수비 영향력이 커지고 반대쪽에 대해서는 수비 영향력이 작아지는 불균형이 있었다면, 백3에서는 김민재가 스위퍼로서 양 측면의 수비에 대해 동일한 역할을 수행하며 균등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백3의 양쪽 스토퍼가 김민재 만큼의 수비 능력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후방에 위치한 김민재의 커버를 믿고 보다 적극적인 수비와 압박을 펼칠 수 있다. 혹여나 스토퍼가 뚫릴 지라도 김민재라는 아주 든든한 최종 장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은 두 경기에서 모두 잘 드러났다. 김민재가 특정 선수를 맨마킹 한다거나 한쪽 측면으로 과도하게 끌려나가는 상황은 잘 벌어지지 않았고, 그만큼 김민재는 최후방에서 빠른 발과 뛰어난 예측 능력 그리고 강력한 피지컬을 활용해 중앙, 왼쪽, 오른쪽 모두에 높은 수비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단순히 백4에 비해 센터백을 한명 더 늘렸기 때문이 아니라, 수비시 가장 중요한 중앙 지역 그리고 박스 안에서의 수비에서 김민재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백3 시스템이 수비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백3의 완성도가 높아지기 위해서는 양 스토퍼들의 전술적 역할과 개인적 기량도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