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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 이월 Sep 13. 2022

뉴욕에 왔다는 사실과 뉴욕에 있다는 현실 사이에서

어떤 뉴욕을 찍고 싶으세요?

뉴욕의 랜드마크를 하나만 꼽으라면 혹자는 자유의 여신상을, 누군가는 타임스퀘어를, 또 다른 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말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강력한 우승 후보는 바로 여기다. 두 개의 갈색 건물 사이 맨해튼 브릿지가 보이는 이곳. 덤보.


뉴욕에 온 지 9일째 되는 날, 첫 동행자와 덤보로 향했다. 그녀는 <무한도전>의 오랜 팬이라 덤보가 몹시 기대된다며 설레는 얼굴을 했다. 나는 다섯 명의 멤버가 덤보를 배경으로 찍었던 사진을 떠올렸다. 그처럼 멋진 사진을 찍어줘야지. 그녀나 나나 카메라 앞에 많이 서보지를 않아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예쁘게 나오는지 금방 파악하지 못했다. 애써 웃는 입매는 경직됐고, 시선은 흔들거렸다. 그래도 좋은 자리를 점하려는 사람들과의 눈치 경쟁에서 끈질기게 버텨내며 사진을 찍었다. 뉴욕의 분위기와 감성이 물씬 풍기는 사진을 찍기 위하여 그녀와 나의 휴대폰 화면은 오랫동안 카메라 어플이 켜져 있었다.


이날 나는 그동안 했던 여행 때와는 달리 굉장히 많은 사진을 찍었다. 한 지점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을 두고 틀린 그림찾기를 하듯, 크게 다를 바 없는 표정과 자세, 풍경을 하나하나 따지며 어떤 사진을 남기고 어떤 사진을 버릴까 고민했다. 그러다 깨달은 것은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사진에 대한 감상이 만족보다 불만족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어색한 표정이 못마땅하고, 투박한 자세에 미련이 남고, 하다못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도 괜스레 서운해지는 마음.


그 아쉬움은 집착에서 기인된 거였다. 여기를 떠난 후 사진을 보면서 그리워할 뉴욕에 대한 집착. 한국에서 읽었던 여행기들과 아름다운 사진에 얽매여 텍스트와 이미지의 뉴욕을 눈앞의 뉴욕보다 훨씬 가치있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이날의 사진들은 현실의 즐거움을 담아낸 게 아니라, 뉴욕에 갔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증거물에 불과했다. 


뉴욕에 갔었다는, 뉴욕에 왔다는 사실을 아름답게 포장하려는 모습은 잘못되지 않았다.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준은 다르기에 내 눈에 아름다운 모습만 골라 추억하는 것도 여행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하지만 퀴퀴하고 습한 지하철역에서 내 다리 사이로 빠져나오던 쥐를 보고 힘겹게 삼켰던 신음,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봉투에서 비집고 나온 쓰레기와 정체를 모른 척하고 싶은 역한 냄새도 뉴욕의 한 모습임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이 사랑스럽다면, 마땅히 그 사랑스러움에 젖을 시간이 필요하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조차도 아까울 정도로. 


올해, 2013년에서 2019년 사이의 여행을 정리하며 여행책을 냈다. 글을 쓰는 것보다 더 큰 난관은 글과 어울리는 괜찮은 사진을 찾는 거였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끝내 찾지 못했다. 다음 여행에서는 사진을 많이 찍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서 떠난 첫 여행이 바로 뉴욕이다. 그러니 책에 넣을 만한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내 모습을 외면할 수는 없다. 애잔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미지에 대한 제한 없는 동경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는 걸 명심하려 한다. 아무리 공들여 찍어도 내가 찍은 사진이 그 어떤 사진들보다 가장 빼어날 리는 없다는 걸 기억해야지. 뉴욕을 상징하는 멋있는 랜드마크처럼, 나만의 상징으로 남을 무언가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 상징은 카메라를 들지 않는 순간에 먼저 포착된다. 그러니 카메라를 내려놓는 순간은 카메라를 들 때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렌즈 너머에 사람이 있다. 카메라 렌즈보다 내 눈이 나만의 뉴욕을 먼저 발견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 순간을 담을 사진도 아름다울 수 있다. 그 사진은 아마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겠지.




+ 이 글은 한밤중, 깜깜한 새벽, 이른 아침에도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한달살이 숙소에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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