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한달살이 숙소 구하기
그토록 염원하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자 잠깐의 고민도 않고 뉴욕을 여행지로 정했다. 간단한 이유였다. 어느덧 나는 서른 중반이고, 체력은 약하고, 현재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처럼의 여행은 현재에서 나를 멀리 떨어뜨려야만 한다. 그러려면 높은 빌딩이 즐비한 도시로 가야 했다. 빠른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곳.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면서도 익명의 존재로 거할 수 있는 곳. 번잡하고 혼돈한데도 화려하며, 눈부시고 반짝거리는데도 음울한 곳. 그래서 필연적으로 낯선 나를 발견하고야 마는 곳.
뉴욕에 한 달을 머물기로 결정은 내렸으나, 치솟은 물가로 뉴욕으로 가기 전에 포기부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 맞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지.'라고 느낄 수 있는 숙소에 머물고 싶었다. 커다란 창 밖으로 도시의 전경이 보였으면 했다. 혹은 드넓은 센트럴파크나 횃불을 들고 선 청록색의 여신이. 늦은 밤에도 깨어 있는 빌딩들과 사람들이 내 잠을 방해한대도 너그러이 그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방 안에만 있어도 내가 뉴욕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숙소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 숙소는 당연히 뉴욕에 많았다. 다만 그 숙소에 머물 수 있는 돈이 내게는 없었다. 내 낭만을 보호하고자 할수록 비용은 한없이 올라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낭만도 많으나, 어떤 낭만들은 돈으로 사야만 한다. 슬프게도.
그래, 뉴욕 전경이 보이는 커다란 창은 포기하자. 빛이 잘 들어오는 집이면 만족하자.
자유의 여신상도 영화로 많이 봤으니 됐어. 지나치게 익숙한 풍경이니까.
하나하나 내려놓자 세 가지 조건만 남았다.
숙소 위치가 맨해튼일 것. 나만의 공간이 있고, 요리를 할 수 있는 곳.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숙소를 찾아 헤맨 끝에 맨해튼 어퍼이스트 지역의 한 스튜디오에서 한 달을 머물게 됐다. 집을 빌려주는 이는 집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센트럴파크, 이스트 강까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했다. 집 안에서는 내가 뉴욕에 있음을 깜빡할지라도 집을 나서면 지금 나는 뉴욕에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적당한 낭만이다.
워싱턴행 비행기에 오를 날이 일주일 남았다. 충분한 설렘과 너끈한 기대감이 들썩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