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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월 Jul 11. 2024

맞아요, 저 덕후입니다.

덕질하기 좋은 날

 내 음악 취향은 생각보다 다양한 편이다. 80년대 포크 음악부터 90년대 댄스음악, 발라드, 아이돌, 올드팝을 비롯한 팝송, 제이팝(사실 여기가 본진이긴 하다)과 심지어는 중국 음악도 가끔씩 듣는 편이다. 물론 나처럼 다양하게 듣는 사람도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있기 마련인데 나의 경우는 밴드 음악을 가장 즐겨듣는다.


 최애 밴드를 뽑자면 서양 밴드 중에서는 오아시스를 가장 좋아하고 그 외에도 너바나, 라디오헤드, 그린데이 등을 좋아한다. 한국 밴드 중에서는 언니네 이발관을, 가장 많이 듣는 장르인 제이팝에서 최애는 아마자라시라는 밴드를 자주 듣고는 한다.


 보통 밴드 음악, 특히 락밴드 안 듣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 시끄러워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숨겨둔(?) 덕후 기질이 발휘 되어서 온갖 설명과 함께 사운드가 부드러운 락 밴드들을 추천해주는데 취향에 안 맞는지 아니면 과한 설명이 부담스러운지 다들 어정쩡하게 도망치고는 한다(사실 후자인 것은 모두가 알고있는 비밀이다).


 그런 일이 있고나면 “역시 설명을 줄여야겠네”라고 다짐은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소위 말해 “덕후”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나온다면 눈에 불을 켜고 긴 사설과 함께 유사한 음악을 추천해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가 이렇게 나오면 처음 말을 꺼낸 사람들은 대부분 도망가지만 만약 그 사람이 나와 비슷한 부류의 덕후라면 그 시점부터 2시간이 사라진다. 그렇다보니 이미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이미지는 “덕후” 혹은 “오타쿠”로 낙인 찍혀있는데 특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일반 사람들에게 흔히 “오타쿠” 취급을 받는 제이팝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오죽하면 대화도 별로 나눠본 적 없던 친구가 대뜸 나에게 재밌는 일본 로맨스 영화 추천을 부탁한 적도 있을 정도다(물론 이때도 긴 사설과 함께 추천해주긴 했다(여담으로 그때 추천해준 영화는 <냉정과 열정 사이>였다).


 사실 이건 꼭 음악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나와 같은 덕후 기질이 있는 독자분들이라면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 흔히 말해 “파는 장르”의 이야기가 나오면 조용히 있다가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음악만큼 좋아하는 장르인 소설 작품, 특히 일본 소설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고삐가 풀려버린다. 그러나 소설은 고사하고 책 자체를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요즘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는게 슬픈 현실이다.


 사실 소설 뿐만이 아니라 어떤 장르에 대해 “덕후”라고 불릴 정도로 관심과 애정이 있는 사람은 그게 어떤 장르든지 찾기 힘들긴 하다. 그런 탓에 온라인으로 빠져드는 덕후들이 많은데 나 역시 그들 중 한명이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책이나 음악에 대해 심도깊은(?) 토론을 즐기기도 하고 아무 거리낌 없이 좋은 음악이나 작품을 추천해주고는 한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끝내고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같은 현실이기에 더욱 아쉬워지고는 하기에 가끔가다 현실에서 자신의 덕질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면 매우 기뻐하고 그 사람에게 유독 잘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잘 없지만 몇년전만 하더라도 덕후들에 대해 음침하더든지 하는 안 좋게 바라보는 인식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름의 자기방어(라고 해도 아무도 안 듣지만)를 통해 내 장르를 지키려고 애썼다.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덕후분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고, 그때마다 기분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장르가 다른 덕후끼리는 의견 차이가 심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자기주장이 강한 덕후들끼리 만나도 서로의 장르를 존중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뱉은 말이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러나 여전히 덕후들의 덕질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상처가 되는 경우 역시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놓지 않는 이유 역시 결국은 덕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여기에 쏟은 애정과 시간에 비하면 그들의 날카로운 말은 아무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라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글을 읽으시는 덕후분들께서는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과 공감을 얻으셨기를 바라며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다하는 독자분들께서도 그분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니 오늘 한번쯤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게 어떨까 싶다. 분명 아주 좋아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덕후분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즐거운 덕질 되시길 바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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