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청춘을 닮아있다
우리는 왜 여름을 사랑하는가
미끌거림과 끈적함은 순전히 여름의 감각이다. 장마는 미끌거림에 끈적함을 더하고 폭염은 끈적함이 곧 미끌거림이다. 그러나 여름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 감각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이 모두 여름의 끈적함과 미끌거림, 찝찝함 같은 여름의 감각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여름은 아마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여름의 분위기일 것이다.
많은 대중매체 작품(드라마, 영화, 소설, 노래 등), 특히 청춘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여름을 배경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속의 여름은 항상 청량하고 시원하며 산뜻하다. 여름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바로 이 부분, 여름의 청춘을 사랑하고는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품들에서는 왜 여름이 청춘으로 묘사되고, 우리는 왜 아무런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름의 역동성이다.
여름은 다른 계절에 비해 변화가 빠르고 다양하다. 푹푹 찌는 더위가 지속되다가도 소나기가 쏟아지고, 다양한 생물들이 나타나는 등 여름이라는 계절 자체가 하나의 생물처럼 활발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여름이기에 누군가는 날씨가 너무 변덕스럽다며, 혹은 벌레나 다른 생물들이 너무 활발해진다며 여름을 싫어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름을 사랑하는 이들은 여름의 그 역동성을 사랑한다. 어쩌면 청춘과 닮아있는 역동성을.
우리는 흔히 청춘 하면 낭만과 열정, 즐거움 등 긍정적인 감정을 떠올리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유행했듯이 취업이나 진로에 대한 불안, 그리고 그에 따른 부담감 등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상처를 많이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여름의 역동성은 청춘의 아픔과 맞닿아 있다. 그만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소중한 걸 잃어버리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것을 얻기도 하는 등 아주 많은 변화를 겪고 자신 또한 변해가는 것이다.
또한 여름의 소나기처럼 밝았다가 비가 내리기도 하고, 장마 같이 오랜 시간 비가 멈추지 않기도 하고, 모기나 여름 감기 같이 자잘한 문제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비는 항상 그치며 모기에 물린 자국은 아물고 여름 감기는 금세 날아가버린다.
이렇듯 우리가 여름을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여름이 단순히 역동성만 가진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기도 하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것들도 언젠가는 끝나며 그 끝에는 결국 다 괜찮아진다고 얘기해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간절하게 듣고 싶었을 이야기를, 여름은 아무런 조건 없이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그리워한다. 설령 그 시절이 항상 행복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나를 사랑할 수 있던 시절이라면 더 그렇다. 추억 보정이라고 하면 추억 보정이다.
그러나 살아 숨 쉬듯이 역동적인 여름처럼,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던 날들을, 무언가를 잃었으나 무언가를 얻지는 못했던 날들을,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비를 기약 없이 맞았던 날들을, 그럼에도 그저 웃었던 날들을, 언젠가 청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가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름은 언제나 청춘을 닮아있기에 우리는 여름을 사랑하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