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아 날 살려라

by 정목영

만물의 근원, 발은 곧 생명이다. “걸음아, 날 살려라.”

이 절규는 단순한 도주가 아니라, 발에게 바치는 원초적인 기도이자 인류가 지켜 온 생존의 기억이다. 원시의 숲에서 맹수를 마주한 이도, 현대의 병원에서 혈당 수치를 확인하는 이도 결국 두 발에 운명을 맡긴다. 평소엔 무심하던 주인도 그 순간만큼은 간절히 외친다. “내 발아, 살려만 다오.”

우리를 생존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목표로 이끄는 것은 언제나 두 발이다.


그에 비해 손은 오래전부터 칭송받아 왔다. 손재주가 좋다, 손맛이 있다, 손이 빠르다, 손끝이 야무지다, 손에 익다'손을 거치다, 손이 가다, 손을 잡다. 예술을 논할 때는 손끝의 감성이라 부르고, 인심이 좋을 때는 손이 따뜻하다고 한다. 축하 자리에서는 손(손님)이 많아 복이 있다 하고, 사업이 번창하면 손이 커졌다 말한다. 능숙한 이는 일손이라 불리며, 악수와 포옹으로 감정을 건넨다. 그 사람 손이 닿으면 일이 술술 풀린다처럼 손에게는 대부분 부드럽고 긍정적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손은 세상과 인간관계를 열어 주는 열쇠처럼, 창조와 행운의 상징으로 오래도록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 속에서도 손 역시 감정 앞에서는 연약한 인간의 한 부분이다. 기쁨과 슬픔 앞에서 떨리는 손끝은 마음의 흔들림을 숨기지 못하고, 분노 속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이 쥐어진다.


반면 발과 관련된 표현은 부정적인 것이 많다. 발에 차이다, 발이 뜸하다, 발이 저리다,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발을 빼다.

발을 끊었다 하면 단절이고, 발목이 잡혔다 하면 속박이다. 발길을 돌린다는 말은 냉랭한 이별이고, 발을 담그면 위험을 뜻한다. 발이 묶였다 하면 자유를 잃은 처지다. 큰 손은 영향력의 상징이지만 큰 발은 크기나 비하의 은유로 격하될 뿐이다. 일이 더디면 손발이 맞지 않는다고 하여 발을 손의 보조로 여기는 일도 흔하다. 같은 몸의 일부인데도 손은 예의가 되고 발은 무례가 된다. 발이 하루 종일 몸을 떠받쳐도 돌아오는 말은 ‘발 아프다’뿐이다. 발이 고생하면 냄새가 나고, 손이 고생하면 정성이 난다 하니 세상의 저울은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다. 찬사와 냉대, 빛과 그림자. 인간의 언어는 이렇게 손과 발을 갈라 세웠다.


하지만 말없이 흙을 딛고, 무게를 감당하는 일은 언제나 발의 몫이다. 발은 몸의 뿌리, 인류의 역사는 직립보행에서 시작되었다. 두 발로 일어선 순간 인간은 하늘을 보았고, 자유로워진 손은 비로소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언어와 문화 속에서 발은 늘 손의 그늘에 가려졌다. 세상은 손에게 박수를 치고, 발에게는 양말을 씌운다.

손이 명예를 얻는 동안 발은 묵묵히 무게를 짊어지고 땅을 받쳐 왔다.


그러나 그와 같은 언어적 차별에도 발의 본질적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삶의 위협 앞에 서면 모든 편견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절체절명의 순간 우리가 붙드는 것은 기민한 손의 재주가 아니라, 땅을 박차고 삶을 이어 주는 발이다. 불길을 벗어날 때도, 위기를 피해 달아날 때도, 병을 이겨 내는 회복의 첫걸음도 결국 발에서 출발한다. 당뇨 환자에게 걷기는 혈관을 깨우는 약이고, 뇌졸중 환자에게 발걸음은 다시 살아남겠다는 절박한 선언이다.


수족이라 말하지 족수라 하지 않는 것처럼, 언어는 이미 발의 운명을 정해 놓았다. 손이 세상의 언어를 쥐고 휘두르는 동안 발은 침묵으로 세상을 떠받쳤다. 그 침묵이야말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첫 문장이다.

결국 세상을 일으킨 것은 손이 빚어낸 현란한 문명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발의 숭고한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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