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다는 것

by 정목영

사라진다는 것

정목영


사라진다는 것은

그저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눈이 녹아

물이 되듯

꽃이 지고

향이 되듯


남기려 하지 않고

그러나 저절로 남는 것


빛이 기울며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듯


떠나는 존재는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가장 낮은 곳으로

스며드는 물처럼

사라짐에도

자세가 있다


서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는 일


그것이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요한 존엄이다



갈기를 세운 산

정목영


달리는 준마의 갈기처럼

석양을 받는 나목(裸木)들이

겨울 산등성이에 솟아있다


가까운 산은

갈기를 세운

기세등등한 청년의 말


저 먼 능선은

갈기를 누이고

숨을 고르는 노마(老馬)다


산의 곡선은

달려온 생의 궤적이고

그 굴곡에는

바람의 세월이 서려 있다


삶도 그렇지 않는가

젊을 때는 앞만 보고 달리고

노년에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산의 침묵은 말한다

달려온 길도

되돌아가는 길도

모두 내 삶의 속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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