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여기 우리 갔던 사찰이잖아!
드라마 [하이퍼나이프] 첫 화를 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낯익은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극 중 정세옥이 조폭의 우두머리를 비밀리에 수술했던 그곳.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2층에서 1층의 불상이 내려다 보일 때 확신했다 — “여기 부산이네.”
그 순간, 가족들과 함께 다녀온 부산 여행이 떠올랐다.
원래 목적지는 대마도였지만, 막판에 배가 취소되어 버렸다. 아쉬운 대로 부산을 여행하기로 했다. 여행 테마는 늘 그랬던 것처럼 사찰로 정했다. 그렇게 우연히 갔던 곳, 홍법사.
불자도 아닌데, 사찰 구경을 좋아한다. 대부분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있어서 그런가, 사찰 여행은 언제나 백전백승이었다. 사찰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각자의 방법론을 발견하는 것도 재밌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발간한 33 관음성지 인장첩까지 구매했다. 관음성지에서 기념 인장을 날인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인데, 하나씩 채워 나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목차만 봐도 주변에 갈 만한 사찰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좋고.
템플스테이 공식 홈페이지도 자주 활용한다. 지역별 템플스테이를 필터링한 다음, 각 사찰에서 운영하는 내용을 살피는 것이다. 부산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건 홍법사. ‘나만의 색을 발견하고, 자기 자신에게 신뢰와 사랑을 전하라’는 소개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미술치료, 싱잉볼, 야외명상까지, 내면을 돌보는 법에도 내공이 있어 보였다. 이번에는 너로 정했다.
“오늘 아침에는 몰운대, 낮에는 홍법사 갔다가 범어사 갈 거야. 저녁은 친척들이랑 돼지국밥 먹기로 했는데, 괜찮지? 빨리 준비하자.”
아빠가 말했다.
그는 여행을 갈 때마다 일정 짜기를 담당한다. 가고 싶은 곳만 말하면, 최적의 루트를 짜준다. 인간 지능이 따로 없다. 여행 취향도 비슷하다. 사찰 탐방도 좋아하고, 어떤 사진을 찍어야 SNS 포스팅에 유용하겠다는 의견도 내니까. 심지어 장거리 운전도 마다 하지 않는 완벽한 여행 메이트다. 나와 동생은 오늘도 군말없이 따른다.
그날도 차 뒷좌석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봐! 홍법사 보인다! 대박이야, 대박!”
웬만해서는 침착한 그녀가 소리를 지르다니, 분명히 무언가 있는 것일 테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창밖을 쳐다봤다. 저 멀리, 황금 좌불상이 보였다. 국내에서 가장 큰 황금 좌불상이 있다는 정보는 알고 있었는데, 길에서도 보일 줄이야. 이제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다. 황금 좌불상이 곧 이정표였다.
사찰은 산에 있거나 바다 가까이 있는데, 홍법사는 논밭 한복판에 있다. 아니, 왜 여기에? 벌써 흥미진진하다.
* 다음 주 연재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