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두를 위한 대웅전 — 400억의 기적

by 은손


기존 공식을 파괴한 절
홍법사

다 왔다. 왼쪽 간판석에는 한자로, 오른쪽에는 한글로 “홍법사” 이름이 각인되어 있다. 그 사이로 차를 몰았다. 귀여운 동자승 불상 주변을 천천히 회전하니, 공터가 나왔다. 이미 몇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오늘도 신자가 많은 모양이다.


전통 사찰은 본당에 가기 전까지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등을 지난다. 그런데 홍법사에는 이것이 아예 없다. 간판석, 동자승, 황금 좌불상 — 이것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걸까.


자연스레 황금 좌불상에 시선이 갔다. 아래는 원형의 시멘트 건물뿐이었다.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나무로 만든 법당이 안 보였다. 일단 계단을 올라갔다.


거울을 통해서 1층 내부가 살짝 보였다. 여기가 법당이로구나. 정문을 겨우 찾아서 들어갔다. 대웅보전 입구는 유리문이다. 사찰 입구 대부분 한지로 되어 있지만, 이것이 법은 아니니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다.


양쪽에 불교 서적이 꽉 차 있는 구간을 지나자 법당이 나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일렬로 앉을 수 있는 의자.

교회에서는 봤어도, 사찰에서는 처음 본다.

“아빠, 저 의자 이상하다.

저건 교회에서 쓰는 거 아니야?

왜 가지고 왔지?“

“무릎이 아픈 사람을 배려한 거겠지, 기도하기 편하게.”

순간 내 말문이 막혔다.

그랬다.

별 것 아닌 듯 보이지만, 모두를 위한 배려였다.


불교신문

강연장 단상도 준비되어 있다. 신자 입장에서는 어떤 자리에 앉아도 스님 얼굴이 잘 보이고, 스님 입장에서도 신자 표정을 보면서 설법할 수 있다. 기존 사찰은 스님도 신자도 다 똑같이 바닥에 앉는다. 그래서 사람이 많으면 서로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단상 하나로 문제를 해결했다. 신선했다.


2층은 위패를 모시는 공간이다. 1층 테두리를 따라서 설계했다고 보면 되겠다. 벽은 통유리로 마감해 두었다. 대웅보전 불상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 1층에서는 불상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제야 눈높이가 맞는다. 여기 어딘가에서 대웅보전을 찍은 장면이 [하이퍼나이프] 1화에도 등장한다. 감독님이 보기에도 이 구도가 인상적이었던 거겠지? 3층도 신선하긴 마찬가지였다. 연회장처럼 회전식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쉬었다 가라는 뜻일까.


내친김에 황금 좌불상도 보러 가야지. 고개를 최대한 꺾으니 표정이 보인다. 눈이 마주쳐서 그런가, 부처님께 사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 올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주변 풍경도 잘 보였다. 사방이 뻥 뚫려 있다는 사실만 해도 해방감이 들었다.


이 아래, 들어갈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이었다. 불교 신자와 비신자 구분 없이 모두 환영하는 홍법사 이야기를 듣고, 달라이라마가 선뜻 기증해 주었다고.


누군가 두 손 모아서 기도하는 모습이 거룩해 보였다.


keyword
이전 05화아니, 사찰이 왜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