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런 동상의 정체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드넓은 마당을 각자 산책했다. 여기에서 돗자리 피고 스트레칭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저 멀리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웬 동상이 여기에 있지?”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창건주 하도명화 보살의 탄생 100주년 기념 조형물이다. 그녀는 한국 최초의 아파트 신창 아파트를 건립한 부동산 업계의 큰 손이다. 임대업도 했다고 하니, 돈이 얼마나 많았을까. 개인과 후손의 행복을 위해서 쓸 법도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달랐다. 시가 400억 원에 달하는 15,000여 평의 부지를 기증하고, 심산스님과 홍법사를 지었다. 그녀는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까?
모두를 위한 사찰
홍법사
전통을 살짝 비틀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된 홍법사.
홍법사는 철학 수업에서 배운 정반합 논리의 살아있는 표본이었다. 언제든 산책할 수 있는 마당에, 한 번쯤 궁금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황금 좌불상을 만들었으니까. 익숙한 형식에서 한 걸음 나아가니, 색다른 사찰이 탄생했다. 원형법당까지 이어진 경사로 덕분에 휠체어 타는 사람도 쉽게 오갈 수 있다. 매년 6월 6일에는 창건주 유지에 따라서 글짓기, 그림 그리기, 군악대 연주까지, 말 그대로 부산을 위한 축제가 열린다. 모두를 위한 사찰을 꿈꾸었던 주지 스님의 의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불교계 성장을 위해서 아낌없이 투자했던 하도명화.
고유의 정답을 찾아낸 주지 스님까지.
덕분에 종교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찾아왔다.
400억,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400억이 생긴다면, 나는 어디에 투자할까?
혹시 그 정답이 나의 진짜 꿈이 아닐까?
처음에는 아직 조명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연구하는데 후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돈 외에는 기여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나도 참여할 수 있는, 더 의미 있는 건 없을까? 여전히 정답은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질문을 품은 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슬슬 나가볼까. 그런데 기념품 가게 아주머니가 나를 부른다. 다섯 시 반까지 공양을 먹을 수 있다며, 혹시 생각이 있다면 가보란다. 홍법사 신자도 아닌데, 심지어 불자도 아닌데, 그런 나까지 챙겨주는 다정함이라니.
홍법사처럼
언제든지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사찰이
서울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