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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사장님처럼 취향이 담긴 공간을 만들어야지

by 은손


고객의 흔적이 작품이 되는 곳

이번에는 세로로 자른 무언가를 쓱 내밀었다.

이건 또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이 대나무는 우리 가게 방명록이야.

한마디만 써줘.

내가 다 벽에 달아두거든.“

이란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에 대나무 방명록이 매달려 있다. 하나를 툭 건드려 봤다.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면서 바로 옆 대나무까지 건드렸다. 도미노가 되어 버렸네. 대나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실로폰 연주처럼 들렸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곳에서는 고객의 흔적도 예술 작품이 된다. 우리의 시간도 여기에 달린다는 사실이 만족스럽다.





사장님의 손때가 묻은 기념품

사장님이 만든 원목 아이템을 하나 사야겠다. 평소 가지고 싶었던 차판을 구경했다. 이 많은 종류 중에서 똑같은 모양이 단 하나도 없었다. 수공예의 매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중에서 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을 골랐다. 차 전문점에서도 보지 못했던 고급스러운 작품이다.


동생은 돌기가 보이는 효자손을 샀다.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을까. 끝 부분이 경사진 것도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어디를 쳐도 타격감이 꽤 좋다. 뭉친 근육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12시부터 2시까지, 하루 2시간만 영업하는 가게에 찾아온 것도 기적인데, 이렇게까지 따스한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이야.


갑자기 언제 또 올 지 모른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가게 전경을 눈에 눌러 담았다.

되도록 오래, 이곳을 기억하고 싶었다.


360도 다 돌아봐도 사장님 취향이 묻지 않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무엇에 몰두하고 싶은지, 내 마음이 머무는 곳이 어딘지 — 여기에 대답할 수 있다면, 일상이 행복할까.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옻을 찾아서 직접 확인할 테다.





가게 명함마저 특별한

명함을 챙겼는데, 이름이 비어 있었다.

“혹시 여기에 써주실 수 있나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쓰는 동안

고객들이랑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서

일부러 이렇게 비워놨어.“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사장님도 나와 내 동생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외우려는 듯 몇 번이고 부른다. 갑자기 삼촌이라도 생긴 기분이었다. 가려고 했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을 눈치라도 챘나. 전라남도 구례는 아무래도 꽃 필 때 예쁘다며, 올봄에 또 놀러 오란다. 미리 연락만 해주면 농장도 보여줄 수 있다고. 오늘도 차고 넘치는 시간을 보냈는데, 그때는 또 어떤 여행이 될까. 제가 다시 오는 그날까지 건강하세요,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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