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녹차 그리고 소금
지리산도 커피땡부터
이제 동생을 끌고 근처 카페에 가련다. 식당 맞은편 2층에 있는 저 카페, 우리에게는 유일한 옵션이다. 갈까, 말까, 갈까.
가까이에 가자 귀에서 노래가 들리는 듯했다.
대나무 울타리도 매력적이고, 나무 입간판도 예쁘다.
바닥엔 돌멩이까지 깔려 있네.
갑자기 신뢰가 생겼다.
메뉴는 단 두 개
안경 쓴 남자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오십 대쯤 되어 보였다. 남방에 민소매 니트를 입어서 그런가, 어쩐지 아빠를 닮았다. 식탁은 세네 개, 손님은 우리뿐, 메뉴는 단 두 개 — 옻커피와 옻녹차였다. 메뉴가 단순할수록 내공이 깊다던데, 기대해도 될까.
취향을 전시하는 카페
그나저나 주문할 시간이 없다. 가게에 수공예 아이템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메라를 든 채,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궁금한 것은 도무지 못 참는 손 자매다.
사장님은 쑥스러운지 볼 게 뭐 있냐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보물 단지나 다름없다. 게다가 중앙 난로에는 밤을 굽고 있다. 한정식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또 침이 고인다. 이것도 팔면 좋을 텐데.
‘우와, 이것 좀 봐!’ 몇 번이나 소리쳤을까. 동생은 “속으로 감탄해 줘, 제발.” 하고 핀잔을 줬지만,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다. 멋스러운 공간을 만나면 제대로 환호하는 게 예의다.
“목공 배운 지 한 5년쯤 됐나?
여기에 있는 가구는 다 내가 만들었어.
저 블라인드도 대나무 엮어봤는데, 나름 괜찮더라고.
나무 만지는 게 재밌어.
저 벽에 걸린 글씨도 내가 쓴 거야.
손님이 없어도, 여기에 있으면 마음이 참 편해.“
한창 호들갑을 떨고 난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
옻 커피 2잔을 주문했다.
이름 좀 날린다는 커피숍에서도 보지 못했던 메뉴다.
“옻 커피는 어쩌다 시작하게 된 거예요?”
“젊을 때 몸이 심하게 아팠거든.
그때 우연히 아버지 따라서 옻을 먹게 된 거야.
거짓말처럼 싹 낫더라.
그때부터 옻을 전도하다시피 했었지.
그런데 알겠다곤 하는데 먹어보지 않더라고.
그래서 옻물로 커피를 내려서 맛 보여 주기 시작했어.”
옻 이야기에 눈빛이 반짝이는 사장님,
그의 옻 사랑은 찐이다.
일단 목만 축일 정도만 마셨다. 순하디 순하면서도 묵직했다. 사장님 말로는 옻물이 커피의 쓴맛을 덜어내 준단다. 이번에는 크게 한 모금 마셨다. 혀를 부드럽게 감싸는 이 맛,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당장 다 마시고 싶지만, 언제 또 마실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세월아 네월아 최대한 오래 머금어 본다.
우리 반응에 사장님도 신이 나 보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옻녹차까지 시음해 보란다. 유레카. 이 동네 저 동네 유명한 녹차는 다 마셔봤는데, 이것도 수준급이었다. 입 안을 맴도는 잔잔함이 좋다. 찻잎 자체가 좋은 건지, 옻물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어느 쪽이든 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맛있다는 것. 아껴 마실 생각은 없다. 오래 놔두면 식기만 할 뿐이다. 커피는 식어도 상관이 없지만, 차는 따뜻할 때 마셔야 그 진가를 안다. 차를 쭉 들이키는 나를 보면서 “목이 마르셨나 보네요!” 라면서 놀리듯이 말하는 동생. 본인 몫까지 내 잔에 따라준다. 고마워.
이번에는 내 옆에 있는 항아리를 열었다. 장식품인 줄 알았는데, 안에 옻소금이 담겨 있었다. 옻물을 부어 소금을 녹이고, 마를 때까지 볶은 뒤, 한 번 더 곱게 갈았다고 한다. 이 모든 걸 직접 했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얼마 안 남았다. 허리를 깊숙이 꺾어서 바가지로 한껏 퍼올린 사장님. 나와 동생에게 정확히 똑같은 양을 봉지에 담아준다. 누가 더 많이 받았느니 마느니 싸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우리보다 우리 사이를 잘 아는 것 같다.
*다음 주에도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