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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내가 샀으니, 커피는 네가 사

by 은손


밥은 내가 샀으니, 커피는 네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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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내가 샀으니, 커피는 네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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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커피는 핑계였다.

밥을 샀으니, 뭐라도 받고 싶을 뿐이다.

나는 쫌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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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커피숍이 어디 있다고 사달라는 거야?’라고 말하는 중이겠지? 걱정 마, 다 알아보고 왔으니까.





지금은 화엄사입니다

우리는 구례에 와 있다.

2박 3일간 화엄사 템플스테이를 해보려고 한다.

이유는, 글쎄.


굳이 말하자면 작년에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보낸 시간이 좋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일정, 때 되면 알아서 나오는 밥, 안전한 잠자리 — 신경 쓸 게 없으니 자연스럽게 내면을 챙길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신청했다.


이번에는 전남이렷다. 이왕이면 가본 적 없는 동네를 여행하고 싶기도 했고, 친구가 강력히 추천했으니까.

놀멍쉬멍 올해를 돌아보며, 내년 계획도 세워야지.





지리산도 식후경부터

서울에서 전남 구례까지는 4시간이 훌쩍 넘는다.

그날도 점심시간이 다 되어 도착했다.

배가 고팠지만, 네이버 맛집을 찾을 시간까진 없었다.

2시 30분 즈음에는 화엄사에 가야 하니까.

괜히 지각해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마을버스를 탔다.


다행히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 먹을 만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어떤 식당에 들어갈까.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제외하기 — 그건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더덕구이 전문점을 선택했다. 식탁도 작은데, 반찬이 줄지어 나온다. 다 올릴 수 있긴 한 건가 생각할 즈음, 사장님이 반찬을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자리를 만든다. 역시 숙련자는 다르다. 심지어 더덕구이도 돌판에 담아준다. 시간이 지나도 자글자글 끓고 있다니, 이건 합격이야. 견과류 토핑을 얹어서 크게 한 입을 베어문다. 순식간에 입 안에 향긋한 즙이 퍼진다. 단물이 다 빠져나간 빈자리는 호박씨, 해바라기씨, 아몬드 삼총사가 채웠다. 어떻게 이 조합을 떠올린 걸까. 마지막 순서로 된장찌개까지 —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어느새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이제 동생을 끌고 근처 카페에 가련다. 식당 맞은편 2층에 있는 저 카페, 우리에게는 유일한 옵션이다. 갈까, 말까, 갈까.


일단 동태부터 살피자. 그런데 가까이 가자 갈까 말까에서 가야 한다는 마음이 되어 버렸다. 대나무 울타리도 매력적이고, 나무 입간판도 예쁘다. 바닥엔 돌멩이까지 깔려 있네. 이렇게 섬세한 감성을 가진 곳이라면, 맛없는 걸 팔진 않을 터. 갑자기 신뢰가 생겼다. 동생도 만족스러운 눈빛이다. 너 이 녀석, 나 따라오길 잘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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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다,

커피 사달라고 보챈 덕분에

보석 같은 공간을 발견할 줄은.


*다음 편에서는 카페에서 보낸 시간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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