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 소년 단종이 걸었던 길
삼 면이 강
한 면이 낭떠러지 절벽인
천혜의 감옥
청령포
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에서는 단종이 청령포를 향해 건너다 중심을 잃고 뒤집히는 장면이 나왔다. 그 순간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빠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에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릿저릿했다.
《왕과 사는 남자》 는 조선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죽은 왕, 단종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고작 16세에 사약을 받았다. 개봉 당일에 영화관에 간 이유는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의 흔적이 가득한 영월에 다녀와서 그런지, 그가 궁금했다. 관광지에 온 사람들이 단종에 대해서 한 마디씩 했지만,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온라인에도 별 기록이 없었다. 살아생전에도 괴로웠을 텐데, 죽은 이후에도 조명받지 못했던 인물. 영화에서나마 그를 상상하고 싶었다.
영화는 역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계유정난이 성공하는 바람에 신료들은 죽음을 맞았고, 단종은 유배를 떠나야 했다. 한편 광천골 촌장 엄흥도는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든다. 죄인을 잘 챙겨주기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먹고살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맞이한 건 단종 이홍위였다.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배경 중 하나는 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돌기둥이었다. 이 배경이 나올 때마다 작년에 다녀온 선돌 전망대가 눈앞에 선했다. 그곳에서 경험한 단종의 고통이 스크린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선돌 전망대는 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돌기둥이 바로 보이는 곳이다. 양옆에는 논밭과 알록달록한 주택들이 보였고, 서강을 따라 줄 지어 선 돌기둥도 장관이었다. 한참 풍경을 감상하는 도중에 옆 아주머니 말소리가 들렸다 — “맞은편 돌기둥에는 줄이 보이는 거 보니까, 저기까지 갈 수 있나봐." 그 순간 귀가 솔깃했다. 이왕 영월까지 왔는데, 무시하고 갈 순 없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 방향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아까 아줌마가 말했던 줄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여유롭게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공식 전망대보다 서강 물줄기가 훨씬 가까이 보였다.
산길은 계속 어디론가 이어져 있었다. 비가 내렸지만, 계속 걸어가고 싶었다. 야생 버섯이 사방에 널려 있었고, 벌레 울음소리도 듣기 좋았다. 하지만 몇 분 만에 짜증이 났다. 길은 미끄럽고, 거미줄이 계속 얼굴에 붙었다. 이 와중에 오르막길이 연이어 나왔다. 나는 점점 더 땀범벅이 되었다.
그만 내려가고 싶다고 절규하는 찰나, 서강 물소리가 들렸다. 탈출이다. 단종도 이 등산로를 통해서 청령포에 갔다고 하던데, 어디로 가야할지 얼마나 막막했을까. 게다가 세상이 나에게 등을 돌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올라왔을 터. 영화 속 어린 소년이 애처롭게 보였다.
그렇게 단종의 고통을 이해한 다음 날,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추천한 청령포에 갔다. 육지에서 강을 건너는 데 단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수심도 깊고 물살도 세서 탈출은 생각도 못 했겠다." 누군가 읊조렸다.
그래도 섬은 아늑했다. 단종이 지냈던 집은 널찍했고, 옆에는 소나무 칠백여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이곳만 매일 산책해도 평온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해설사의 설명이 들렸다. "여기 있는 소나무는 거의 다 단종이 죽은 이후에 심었어요. 그래도 가장 키가 큰 이 나무는 있었답니다. 친구가 이 나무밖에 없어서, 매일 걸터앉아서 비참한 마음을 털어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아뿔싸 —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편하게 지낸 건 아닌지 의심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영화에서는 광천골 사람들이 단종을 챙기는 장면도 나온다. 초반에는 서로 데면데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로 위하는 마음이 스크린 너머에서도 느껴졌다. 심지어 단종은 백성을 지키려면 다시 왕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동안 정치적 상황에 힘없이 밀려간 왕이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이 장면에서는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에게 기회를 허락지 않았다. 복위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다른 조선시대 왕의 무덤은 대부분 봉분에 비해 바닥이 서너 배 더 넓은데, 장릉은 봉분과 바닥의 크기가 비슷했다. 어떤 아저씨는 "설마 이게 끝이야?"라며 허무해했다. "무덤이 너무 초라한데", "나쁜 삼촌 만나서 불쌍해, 쯧쯧", "이런 왕족은 노비만도 못한 것 같은데." 모두가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단종을 위해서 싸운 270여 명의 이름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으니까. 근처에 있는 보덕사는 단종의 극락왕생을 위해서 세운 사찰이란다. 매년 단종을 위로하는 진혼의식도 열고 있다. 단종의, 단종에 의한, 단종을 위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를 감상하고 나니, 영월이 다르게 보였다. 아무도 없어 유난히 고독했던 등산로, 배를 타고 단 몇 초만에 도착한 청령포, 어떤 능보다 작았던 장릉까지 — 한 소년이 견뎌낸 시간의 흔적이었다.
《왕과 사는 남자》 영화는 단종을 영웅처럼 묘사하지는 않았다. 대신 두려움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 했던 한 소년의 시간을 더듬어 갔다. 단종에게 새로운 결말도 주지 않는다. 다만 그가 어떤 왕이 되었을지 상상해 보게 만들었다. 영화에서 백성과 잘 어울렸던 성정 그대로라면, 백성 입장도 헤아릴 줄 아는 왕이 되었을 텐데.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지 않았더라면, 단종이 끝끝내 그 자리를 되찾았다면, 조선 역사는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제야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영월의 모든 길이 그를 기억하고 있다고.
너는 충분히 훌륭한 왕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