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배운 — 사랑받는 공간의 비결

by 은손


갑자기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갑자기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몇 년 전 동생의 설득에 빠져서 공동 계약한 공간의 입주일이 다가온 것이다. 당시에만 해도 동생이 직접 사용하려고 했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더 이상 작업실이 필요 없었고, 매매 가격은 떨어졌다. 세입자도 쉬이 구해질 것 같지 않았다. 대출 이자를 갚아낼 묘수를 생각해야만 했다. 부동산 계약은 순식간에 골칫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생각을 환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이 즈음 제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천에서 요가원 겸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레베카에게 힌트를 얻고 싶었다. 그렇게 올해의 첫 번째 여행지는 제주 조천이 되었다.


레베카

레베카와 나는 에어비앤비 동료였다. 내가 다른 회사로 이직했을 때, 그녀도 숏폼 회사에서 패션 회사로 연이어 이직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업무를 찾고 싶다고 하더니, 이곳저곳 뛰어다녔다. 말보다는 행동파였다. 하지만 이렇다 할 무엇을 찾지 못했다. 그때 무작정 달리기를 멈추고, 한 텀 쉬어가기로 했다. 여행도 다니고, 요가도 배우고, 의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하우스아움

그녀의 다음 행보는 놀라웠다. 갑자기 요가 수련에 빠지더니, 강사 과정까지 수료한 것이다. 그리고는 제주에 갔다. 요가원 강사로 자리 잡은 줄 알았는데, 아예 주택을 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간 세 개가 붙어 있는 2층 건물이었다. 한 곳에서는 요가 수업을 하고, 다른 두 곳은 에어비앤비로 꾸며 본다고 했다.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질러야 한다며, 최선을 다해서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로부터 일 년, 그 사이 어찌 지내고 있었을까.


공항에서부터 레베카 공간까지는 차로 30분 거리였다. 그간 인스타를 통해서 연락만 주고받았을 뿐, 제주에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어쩐지 설렜다. 평평한 돌에 손글씨로 쓴듯한 House Aum 팻말이 보였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저 멀리 함덕 해변이 출렁이고 있었다. 자동차 경적 소리 대신 새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람이 살갗에 닿는 감촉까지, 마음이 말랑말랑 녹아내렸다. 레베카가 그런 것처럼, 잠시 멈추어서 내 안의 여유를 찾아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입구를 따라 내려가니, 마당과 2층짜리 건물이 나왔다. 선인장과 대나무는 겨울에도 여전히 푸릇푸릇했다. 봉오리가 맺힌 나무도 있었고, 이미 거의 다 핀 들꽃도 있었다. 마당 의자에서 전경을 감상하는 사이, 고양이 두 마리가 다리에 엉겨 붙었다. 낯설지만 따뜻한 감촉이 싫지 않았다.


기분 좋은 낯선 감각은 방에서도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통창이었다. 서울 우리 집에서는 고층 아파트만 보였는데, 제주는 달랐다. 가까이에는 귤농장이 있었고, 함덕 해변부터 한라산 봉우리까지, 한눈에 다 보였다. 테이블에는 티백과 다기가, 침대 옆에는 수면을 도와주는 아로마 오일이 있었다. 방에만 있어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2층에서는 요가 수업이 한창이었다. 요가 배우는 것도 좋아하지만, 티칭에도 흥미 있다고 말했던 레베카. 결국 요가원을 차렸다. 마지막 휴식 시간에는 아로마 마사지도 살짝 해준다. 수업을 마치면 한 때 차 마시는 모임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서 차도 내려준다. 에어비앤비에 있었던 차와 아로마 아이템이 2층에서도 이어지는 셈이다.


레베카의 차 명상 일지

돌이켜 보니 레베카는 사업을 위해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로 담아내었을 뿐이었다. 아로마에서 차, 요가까지, 세 가지를 다루는 순간, 그 자체로 특별해졌다. 물론 이것저것 챙기는 과정이 만만치는 않았을 테다. 그녀는 무리하지 않고, 어디에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정했다. 홍보는 플랫폼에게 맡기고, 내실을 다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 그것이 레베카가 보여준 균형의 미학이었다.


나의 공간에서 바라본 북한산

공간 운영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고민할지 막막했었는데, 이제야 알겠다. 취향을 담아낼수록 나만의 고유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경험 중 하나는 낯선 공간에서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자연을 바라보다 보면 일상 속 스트레스도 사라진다. 옳거니, 북한산이 보이는 공간과 제법 잘 어울리는 테마였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에게는 승산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베카처럼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과 비슷한 수준까지는 꾸며볼 순 있겠지. 처음에는 눈앞이 깜깜했는데, 가야 할 길이 조금이나마 선명해졌다.


하우스 아움에서 본 별

이 과정의 끝이 희망일지 불행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희망을 본 덕분이었을까. 일단 해보자는 용기가 생겼다. 하우스 아움에 초대해 준 레베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오늘도 동생과 열심히 머리를 맞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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