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없던 공간에서, 아이는 무엇을 배우게 될까
따르르릉 따르르릉
집 전화벨이 울린다.
받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빠가 나를 찾는 전화.
아빠는 볼일 보러 나갈 때마다
이제 막 아홉 살인 나에게
책방을 맡기고 나갔다.
그러면 나는
혼자 책방에 남겨진다.
지루하고 긴 시간을
나 홀로 버텨야 한다.
읽을 만한 책을 고르고 또 골라본다.
이 책 저책 후루룩 넘겨 본다.
책은 다 비슷한 냄새가 나지만
또 책마다 조금 다른 냄새가 난다.
종이 냄새를 맡아본다.
싫지만은 않은 냄새다.
책을 보다 말고
책장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따라간다.
그 한 줄기 안에
수없이 많은 먼지들이 떠다닌다.
먼지일 뿐인데
저마다 빛을 낸다.
예쁜 먼지들.
딸랑.
소리가 나며 낯선 남자가 들어온다.
처음 보는 아저씨였다.
나에게 어린이 동화책을 골라달라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책을 고르다
내가 참 예쁘다며 안아봐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는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위아래로 몇 번 흔들었다.
그의 손이 나를 잡고 있는 느낌이 이상했다.
나는 내려달라고 했다.
그는 나를 내려주었고
그렇게 떠났다.
무슨 느낌인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렸고
나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음에도
나 혼자 책방에 있을 때
그 아저씨가 또 왔다.
동화책을 또 골라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안아봐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싫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그 아저씨는 다시 오지 않았다.
나는 그 이야기를
아빠에게 또 말하지 않았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말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찾아서 혼내줬을까.
아니면 나를 혼냈을까.
내 편이 되어줬을까.
아빠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어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따르릉따르릉.
집 전화벨이 울린다.
나는 다시
아빠 책방에 간다.
한 줄기 햇빛은 여전히 예쁘고
그 안의 먼지들은 저마다 빛을 낸다.
멍하니 바라보다
책 한 권을 골라낸다.
그리고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간다.
따르릉.
전화벨이 또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