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는 사라지는 게 아니다.

줌 인, 줌 아웃

by 이백


나는 요즘
과거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원해서 한 일인지,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냥 어느 날부터
생각이 올라왔고
나는 그걸 더는
예전처럼 밀어 넣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건
나는 과거를 떠올릴 때
항상 같은 방식으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한 번에 전부가 오는 게 아니라
한 장면씩 온다.

그런데
그 한 장면이
너무 선명해서
나머지 삶을 덮어버린다.

그럴 때 나는
갑자기 과거 속에 들어가 버린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그때의 내가 된다.

그때의 공기,
그때의 소리,
그때의 느낌.

나는 그 안에서
한동안 나오지 못한다.

그게 무섭다.
나는 이미 어른인데
여전히
그 장면들 앞에서는
아이처럼 굳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줌인과 줌아웃.





어떤 기억이 올라오면
나는 일부러
그 안으로 들어간다.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보려고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용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무 가까워지면
나는 다시
빠져나온다.

지금 내가 있는 방을 보고,
내가 잡고 있는 핸드폰을 보고,
내가 마시고 있는 물을 본다.
나는 내 몸을 확인한다.

‘지금은 괜찮다.’

나는 그렇게
나를 꺼낸다.

예전의 나는
줌인만 했다.
한 번 들어가면
끝까지 가라앉았다.

지금의 나는
줌아웃을 배운다.
빠져나오는 법을 배운다.

나는 아직도
과거를 꺼내는 일이 무섭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내가 평생
이걸 덮어두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만 한다.


오늘은 한 장면만.
오늘은 한 문장만.

오늘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나는 과거를 파헤치는 중이 아니다.

나는
빠지지 않으려고
위로 올리는 중이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과거에 대한 복수도 아니고
누군가를 벌주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내 삶을 내 손에 다시 쥐고 싶다.

그런데
이 과정은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나는 아직도
소리에 예민하고,
어떤 기척에 먼저 놀라고,
좋은 일이 생기면
먼저 불안해진다.

나는 이제야 알겠다.
내 몸은
아직도 그때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 몸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조금씩 설득해 보기로 했다.


이제는 괜찮다’고.
‘이제는 끝났다’고.

줌인과 줌아웃은
그 설득의 방식이다.

나는 오늘도
한 번 들어갔다가
한 번 나온다.

그렇게
조금씩
현재로 돌아오는 중이다.









이 이야기는 이 자리에서

조용히 계속됩니다.



이진리커피하우스와 보헤미안박이추 본점 사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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