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쪽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먼저 멈추게 되는 순간

by 이백


요즘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바로 꺼내지 않는 편이다.


상대의 표정이나

말투를 먼저 살피는 게

이제는 자연스러운 순서가 되었다.


대화를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할지보다

지금 이 분위기가 어떤 지부터

먼저 보게 된다.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조심하고 있는 건지

생각하게 된다.


이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비슷한 방식으로

말을 삼켰던 순간들이

여러 번 떠오른다.


그중 하나는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친구들이

집 얘기를 꺼낼 때가 있었다.


어제 뭐 먹었는지,

가족들이랑 어디를 다녀왔는지,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었다는 이야기들.


나는 그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없는 게 아니라,

뭘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쪽에 가까웠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우리 집은 어떤가를 떠올려보게 된다.


비슷한 장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우리 집은

조금 다른 건가.


그 생각이 들고 나서는

내 얘기를 꺼내는 게

더 어려워졌다.


먼저 말하기보다는

일단 듣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는지

고르게 된다.


괜히

어색해 보이지 않게,


괜히

다른 티가 나지 않게.


그냥

비슷한 쪽에

가만히 맞춰놓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그때부터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쪽에

더 가까워졌다.


지금도 가끔

비슷한 순간들이 있다.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 더 멈추게 되는 순간.


그럴 때마다

이게 언제부터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