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아직, 그 기억들을 다 꺼낸 것은 아니다

by 이백


한동안

과거를 꺼내는 일을 미뤄두고 있었다.


꺼내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왜 자꾸 안 좋은 것만 찾으려 하냐고.


구직을 하던 중이었다.


그 말이

생각보다 깊이 들어왔다.


안 좋은 것만 찾는다는 그 말이

쉽게 삼켜지지 않았다.


내가 진짜 그랬나.

왜 그랬지.


왜 그런 쪽부터

보게 되는 사람인지

한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그 질문 하나가

오래 덮어두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보게 만들었다.


하나씩 들여다보다가

이걸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얘기를 하고 싶다고.


꺼내지 않으면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사라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한 장면씩,

한 문장씩.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방식으로

꺼내보기로 했다.


이 글들은

그렇게 지나온 시간의 기록이다.


아직

모든 것을 다 꺼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시선으로

그 기억을 보고 있다.


예전처럼

그 안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조금씩

현재로 돌아오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

그 이후의 시간들을

마주하려고 한다.


아직은

어떤 장면부터 꺼내게 될지 모르지만

이번에도

도망치지 않는 쪽을

선택해보려고 한다.


이 글이 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도

아마 오래 미뤄둔 것이 있을 것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꺼낼 수 있을 때

꺼내보기로 했다.





지금 이곳에서 시즌 2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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