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던 시간
아빠가 없었던 그 밤 이후
우리 가족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려 했고,
아빠는 점점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었다.
부부를 달래주러 왔던 외할아버지의 방문은
오히려 이 가족의 균열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밤, 오빠는 ‘체벌’이라는 이름 아래
아빠의 감정이 향하는 대상이 되었고
그 폭력은 오래 남았을 것이다.
어린 나에게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사건처럼 보였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일들은
모두 하나의 파도에서 밀려 나온 일이었다는 것을.
나는 더 눈치를 보게 되었고
상황을 먼저 읽는 아이가 되었고
그만큼 나를 더 잃어갔다.
오빠 역시 가족 안으로 들어오기보다
자기 안으로 갇혀가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서로를 돌보기보다 각자의 상처를 붙들고 서 있는 사람들이 되었고
조금만 스쳐도 아픈 상태로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갔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은 없었다.
그 무렵의 겨울이었다.
집에는 겨울 이불이 넉넉하지 않았고
나는 오빠와 한 이불을 함께 써야 했다.
엄마가 이부자리를 봐주고 나가면
오빠는 늘 내가 이불을 덮지 못하게 했다.
나는 이불 끄트머리만 붙잡은 채
그 겨울을 버텨야 했다.
오빠에게 반항도 해보고
엄마에게 말도 해보았지만
엄마는 “오빠가 왜 그러겠냐”는 말로 넘겼다.
나는 매일 밤 울었고
젖은 베개를 본 엄마는
왜 한겨울에 땀을 흘리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내 말과 내 울음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
그 후로도
엄마와 아빠가 동시에 집을 비우는 날이면
나는 늘 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몸이 먼저 굳었고
숨이 얕아졌다.
우리는 청소년이 되었고
성인이 되었지만
남보다 못한 관계로 굳어졌다.
성인이 된 어느 날, 나는 웃으며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왜 나 이불 못 덮게 했어?”
오빠는 쫓아다니며 내 입을 막았고
엄마는 “다 지난 일인데 왜 아직까지 그러냐”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저
그 일이 있었음을
한 번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지금도 오빠를 미워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돌아보면
그 시간은 나에게만 힘든 날들이 아니었고
오빠에게도 충분히 힘들었을 것이다.
오빠는 오빠의 방식으로
나는 나의 방식으로 버텼을 뿐.
문제는
그 방식들이
우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