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기대'라는 것은 마치 고농축 타우린처럼 단기적으로는 무엇인가를 하게 함에 있어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장기적인 관점에 있어서는 실제로 나를 갉아먹는 것이라고 느끼는 요즘이다.
글 쓰는 게 신나고 재미있어서 출근길에도 핸드폰을 붙잡고 글을 쓰던 게 어제 같은데, 어느 순간 글 쓰는 것 자체를 회피해버리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글이 흘러넘치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부캐에서 오는 현타 바이러스 때문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지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래저래 바쁘긴 한데, 방향과 동력을 잃었다는 느낌일까? 마치 나사 하나가 빠진 상태로 앞으로 굴러가는 자동차 같다. 위태위태해 보이기도 한다. 글 쓰는 것이 회사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이 글을 써본다.
기대란 무엇일까...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한 기억이 있다. 수학 선생님이셔서, '내가 수학을 잘 하면 나를 좋아해 주시겠지?'라는 "기대"를 가졌던 추억이 떠오른다. 혀가 짧으셔서 'ㅅ'을 'th'로 발음하셨는데, "thㅗthㅜ와 복thㅗthㅜ"(소수와 복소수)를 말씀하실 때의 귀여운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담임 선생님이 바뀌게 된 뒤 얼굴을 도통 뵐 수가 없어서, 하루 한 번씩 교무실을 공식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출석인원 적기'를 일부러 맡아서 했었다. 가끔 매점을 갔다 오는 길에 선생님과 한 번이라도 마주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었다. 나의 10대 시절에 "수학" 만큼은 잘 해야겠다는 큰 동기를 일으켜주신 감사한 분이다.
이렇듯 "기대"라는 것이 '동기부여'에 주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고 생각한다. (브롬의 기대이론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이라고 한다.) 다만 "동기부여를 주는 것"으로 "기대"가 가진 모든 역할이 끝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기대의 부작용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 없다. 하지만 바라던 바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오는 현타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그 현타를 잘 넘기고 새롭게 진행하면 되겠지만,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 그 기대라는 것이 일이건 사람이건 행동이건 간에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을 때' 생기는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의 내 상태가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즉각적인 반응이 올 것이라는 기대
회사 부캐에 투입되는 시간이 커지는 만큼 조금은 인정받길 원하는 기대
내가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어떤 것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
이외에도 여기에 언급하기는 애매한 내가 가진 여러 가지 기대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기대들이 나에게 시간이 지나면 독소처럼 작용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람은 인정의 동물이라지만,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나를 더욱더 지치게 하는 것이라고 느껴진다.
모든 기대를 내려놓습니다
요즘 내가 추진하는 나와의 캠페인이다. '~~렇게 하면 ~~~가 되겠지?'라는 "기대"가 슬며시 나를 쳐다볼 때마다 "응, 아니야."라며, 그 기대를 바닥으로 놓아버렸다.
매일 아침마다 꼭 글을 쓰지 않더라도, 오늘은 너무 열심히 살지 않더라도, '기대'를 내려놓으니 하루하루 살만하다. 그리고 더 담담하게 모든 일을 대할 수 있게 되어간다. 몇 주 동안 글을 쓰지 않아서 브런치 앱이 알람을 울려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기대를 내려놓으니 생기는 변화라고 느껴진다.
그렇게 다시 에너지를 축적해서 오늘 다시금 글을 써본다. 오늘 꼭 글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 글에 라이킷이 얼마 눌리지 않더라도, "괜찮다", 진심으로 괜찮다고 기대를 내려놓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