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는 기분이 좋다. 알딸딸 해짐과 동시에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밍밍한 금요일 저녁도 좋아하던 술과 맛있는 안주만 있다면, 신나는 파티라도 벌이는 양 즐거웠다.
하지만 술에서 깨어난 뒤가 행복한 적이 있었냐를 생각해보니, 아무리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술에서 깨어나서 "아 행복해!!!" 라며 외칠만한 기억은 떠오르질 않았다. 오히려 수치스럽거나 부끄러움, 누군가에게 미안한 기억들만 자꾸만 떠올랐다.
기억력도 자꾸만 나빠져갔고, 쉬운 단어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10년 전에 회사에서 술과 업무로 인해 내게 나타났던, 마음의 그늘이 몇 년 주기로 지속 반복되었고, 그 마음의 그늘이라는 녀석과 '술을 마신 다음의 기분'이 상당히 연관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술을 한 번 지워보면 어떨까?
물론 살아가면서 술을 끊어야겠다는 결심이 처음은 아니었다. 특히나 술로 인한 사건 사고로 주위 사람들을 도저히 볼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일이 생길 때면, ' 아 젠장, 이놈의 술.. 내가 또 마시나 봐라~' 라며 몇 차례 결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결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SNS에서 굳세게 맹세한 '술을 끊겠습니다'라는 글에, 술 마시자며 연락 오는 친구들이 더 많아졌던 적도 있었다.(친구들이여, 고...맙습니다.)그리고 나라는 동물은, 실수를 반복하고 반복하는 동물이어서, 금주 선언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술이 당기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좀 달랐다. 결심을 하게 된 시기가 술을 마신 직후가 아니었고,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술과 나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후였다.
술을 아예 끊어버리자가 아닌 '일단 인생에서 잠시 술을 지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매우 가벼워졌다. 또,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SNS 프로필 귀퉁이에 무기명의 디데이를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