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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드백프로 Nov 10. 2022

술은 사건, 사고를 싣고...

절주 197일 차

술로 인해 생겼던 수많은 일들을 돌이켜보면, 행복한 추억보다 섬뜩한 기억이 더 많.


술을 잘 못 마시면 술자리를 싫어하거나 피해야 하는데, 술 마시는 분위기를 너무나 좋아했던 나는 술자리를 좋아했었다. 술을 마시면 살짝 느슨해지는 것도, 늘 딱딱하게 느껴지던 상대방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만 같은 것도, 술이 깨고 나서 동료들과 해장을 하며 전날의 기억의 조각을 맞춰보며 떠드는 것도 다 좋았다.


'블랙아웃' 겪어보셨습니까?


대학생 때부터 술을 먹으면 필름이 끊어지는 일이 유독 많았다.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일도 많다.)


술이 취하면 급속도로 해마도 함께 취하면서 기억이 끊어졌는데, 신기하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 중 하나는, 2호선 낙성대 입구에서 친구들과 크리스마스를 맞아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를 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까치산역 출구를 걸어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낙성대에서 2호선을 타면 보통 내선 순환행을 타게 되고, 뱅글뱅글 돌게 되, 나는 까치산역 가있던 것일까??


(나름대로 짜 맞춘 내 가설은  신도림역까지 가는 지하철을 타이밍 좋게 타서 잠이 들었다가, 신도림역에서 내리라는 방송을 듣고 하차해서, 사람들을 따라 까치산행으로 환승했는 것이다...)


어느 날은, 정말 좋아하는 선배들과 만나 흠뻑 취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지하철에서 열심히 출구를 향해 올라가던 나와 만났다. 다행히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난 뒤 몇 주 후, 배와 통화할 일이 있어 이야기 중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드백아, 그날 택시 잘 타고 들어갔어?"
"택시요?? 저 지하철 타고 집에 갔는데요?"
"뭐라는 거야, 너 많이 취해 보여서 우리가 택시 태워 보냈는데, 택시비까지 미리 줬다고. 그런데 지하철이라니??"
"아... 하하하... 하아...."


아리랑치기에 당하다


유난히 쌀쌀했던 날, 종각에서 술을 거하게 마셨고 정신을 차려보니 도로변에 앉아있는 나를 만났다. 일단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택시를 잡아 탔다. 부인님께 전화를 하려니 핸드폰 없고(!), 결제를 하려니 지갑에 있던 현금 없고(!!), 게다가 재킷까지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기사님께 핸드폰을 빌려 부인님께 연락을 해 살아있음을 보고 드리고, 집에 겨우 도착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뜸과 동시에 부인님께 아주 호되게 혼이 났고, 힘든 몸을 일으켜 회사로 온 뒤 - 마침 그날이 팀 워크숍 날이라, 시간 여유가 좀 있었다. -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고자 '도난 신고'를 하기 위해 종로경찰서 강력반을 방문했다. 


방금 식사를 마친 듯 자장면 냄새가 가득했던 그곳에서, 친절한 표정의 강력반 형사는 ""어떻게 오셨습니까?"라며 나를 반겼고(?),  "핸드폰과 현금, 그리고 옷을 도난당했습니다."라는 대답에, 이내 인상이 어두워지며 진중한 목소리로 "선생님, 혹시 어떻게 핸드폰을 도난당하시게 되었나요?라고 물었다.


어제 저녁에 술을 많이 마셨어요.


그 순간, 내 대답을 들은 형사의 눈빛이 급속도로 바뀌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 그러셨어요, 선생님. 제가 여기에서 근무하다 보니까요, 이 술이란 게 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쪽팔림은 나만의 몫이었지만, 잃어버린 위치를 소상히 말하고 나서 핸드폰을 꼭 찾겠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몇 주  걸려온 전화에서 "근처에서 장물아비를 잡았지만 소득은 없었고, 언제까지라도 선생님의 핸드폰을 찾게 된다면 꼭 연락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형사는 슬프게도 두 번 다시 연락이 없었다.


이 외에도 술에 취해 선배에게 업혀 가다가, 뒤로 자빠져 머리를 크게 다친 일을 비롯해,  관해서는 남부럽지(?) 않게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차마 이곳에 풀어내기엔 부끄러운 일들인지라 여기까지만 적어본다.




블랙아웃과 엇비슷한 수면내시경


한 의학 칼럼에서 알게 된 사실로, 수면내시경을 할 때 맞게 되는 '미다졸람' 같은 주사는 환자를 '진정 상태'로 만든다고 한다. 우리는 잠이 드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의료진이 묻는 말에 답을 하고 지시대로 몸을 움직이는 등, 기억만 나지 않을 뿐 사실은 '내시경'을 위한 진정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블랙아웃' 증상이 많았던 나에겐, 수면내시경을 마치고 잠에서 깨어날 때와, 술에 취해 기억이 사라졌을 때가 매우 유사하게 느껴졌, 그래서인지 올해 그렇게 좋아했던 수면내시경이 불쾌 검사로 느껴졌었다.


기사 출처

https://www.hidoc.co.kr/healthstory/news/C000050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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