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0세가 넘은 왕정화 대표, 그는 중국 최초 저가항공 춘추항공의 창립자로 현재 보유 재산이 120억 위안이 넘는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공무원에서 여행업 큰손으로
1944년 출생인 왕정화 대표는 7명의 형제들이 딸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공부한 그는 매 번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고등학교 때에는 학생회 부회장을 맡기도하였습니다. 학비가 부족해 대학교에 진학은 포기 했지만, 그는 상하이시 창닝구의 공무원으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공무원이 된 후에도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며 성실히 일해 결국 창닝구 부서기의 직위까지 맡았습니다.
1980년에는 도시로 몰려드는 젊은이들이 많아 도시의 실업 문제가 매우 심각해졌고, 도시의 공무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습니다. 왕정화는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다, 그가 창업을 해서 일자리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중국 전역을 돌며 각 기업들을 참관하고, 상하이로 돌아와 여행사 및 여객 운송업 관련 다섯 개의 회사를 세웠습니다.
당시 중국 정부의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라, 모든 비용은 창립자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는 방안을 내어 상해의 여행 전문가를 초빙하여 육성반을 꾸렸습니다. 수업료로 1위안을 받았고, 당시 기술을 배우기 원하는 젊은이들이많아 곧 3천 위안의 거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자금이 생기자 그는 춘추 여행사를 열었습니다. 고민 끝에 공무원을 그만두었고, 1984년에는 공무원의 신분이 아닌 자립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여행사를 운영하던 도중, 그는 팔리지 않는 비행기 좌석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0명의 좌석 중 20명의 좌석만 차더라도 비행기를 운행하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한 그는 항공사와 접촉하여 저녁에 운행하는 비행기의 100개 좌석을 싼 공동구매 좌석으로 얻어내었습니다. 어차피 저녁 시간에는 팔리지 않는 빈 좌석이 많아 그에게 100개 좌석을 싸게 주더라도 항공사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정화는 100개 좌석을 얻자마자 대대적인 광고를 했습니다. 기차표와 맞먹거나 오히려 더 싼 가격에 비행기를탈 수 있어 농촌에서 온 사람들까지 비행기를 타러 오는 등 저가항공을 이용하러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중국 최초의 저가 항공
여행업을 하면서 왕정화는 “중국의 비행기표는 왜 이렇게 비싼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기름값 등의 운행 비용은 그렇게 비싸지 않지만, 표가 비싼 이유는 판매 비용이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 여러 선진국에서는 비행기가 여행을 떠나는 가장 보편적인 교통 수단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국내를 오가며 비행기를 타는 것은 여전히 사치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왕정화는 중국의 모든사람이 탈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항공사를 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정부는 개인이항공사를 열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어 다른 방법을 모색하여야 했습니다. 그는 1997년 춘추 국내 여행사를 열어, 이전에 비행기들의 여러 좌석을 한꺼번에 가져와 싸게 파는 형태에서, 한 비행기의 운행 코스 자체를 가져와 비행기표를 싸게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항공사를 열 수는 없었지만 비행기표를 저렴한 가격으로 팔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03년, 중국의 민간 항공사 영업이 가능해졌고, 춘추항공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본격적으로 '1위안 표', '199위안 표', '299위안 표'를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업계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지 못할것이라고 하였지만 기차표보다 싼 비행기표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춘추 항공사를 찾았습니다. 승승장구하는 춘추 항공을 보고 다른 항공사들도 싼 비행기표를 팔기 시작하였지만 본래 낮은 비용으로 운행되는 춘추항공과는 달리 수지가 맞지 않아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춘추항공은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가 있는 기타 항공사와 달리 이코노미 클래스만을운행 중이며 기내식은 저렴한 인스턴트 푸드를 제공 중에 있습니다. 또한 전문적인 클리닝 서비스 대신 스튜디어스와 직원들이 비행기 내부를 청소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춘추 항공은 낮은 원가를 유지하며 싼 비행기표 값으로도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현재 춘추 항공의 시가 총액은 170억 위안을 돌파했으며 왕정화가 창립한 회사 모두를 합친 시가 총액은 500억위안에 달합니다.
춘추 항공의 경영 방식
왕정화의 춘추 항공은 '양단两单, 양고两高, 양저两低'의 경영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양단'은 단일 모델의 비행기와 통일된 이코노미 클래스를 의미하며, '양고'는 높은 좌석 사용율과 비행기 일일 이용율을, '양저'는 낮은 비행기표 값과 낮은 유지/관리 비용을 뜻합니다. 안전한 비행기 운행 환경은 돈을 아끼지 않고 유지하되, 기타 관리 비용은 낮게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춘추 항공은 판매 비용을 낮추기 위해 인터넷에서 비행기 표를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몇 년간의 준비 과정을 통해 리스크 제거, 발전 가속, 기업 규모 확대, 매출 규모 확대 등의 조건을 맞추어 IPO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과정 중에 직원 다섯 명이 보조금 지급 등의 문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건이일어났으나 왕정화는 이들의 불만을 파악하여 해결하고 지속적으로 근무하도록 하여 투명한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본래 왕정화는 매우 검소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벌어들인 100억 중 반은 번 것이고 반은 아낀 것입니다."라고 왕정화는 말했습니다. 춘추항공 사무실 건물은 오래된 호텔을 개조해 만든 것이며 면적은 10 제곱 미터를 넘지 않습니다. 의자들은 100위안 내외로 사온 것들이고 20년도 넘게 사용했다고 합니다. 사무실 외에도 그는 국내 브랜드 손목시계를 18년간 사용하고 있으며 출장을 갈 때엔 3성 이하의 호텔에서 묵는다고 합니다. 자식 교육에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의 아들은 20여년 전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는데, 단 5만 위안만을 쥐여주고 미국에서 학비를 포함, 8년간의 생활을 자립적으로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대표적인 일화로는, 2008년 런던으로 출장을 떠난 왕정화와 그의 팀은 큰 이민가방을 세개 가져갔는데, 그 안에는 식료비를 아끼고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라면 100여 봉지와 야채, 계란, 고추기름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출장을 가면 인스턴트만 먹고, 지하실을 숙소로 잡을 정도로 절약정신이 투철한 왕정화의 이러한 성격이 결코 인색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비행기 수리사, 스튜어디스, 짐 운송 직원 등 모든 직원들을 초대해 함께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매년 연말에는 마지막 비행기를 직접 배웅하고 연초에는 첫 비행기를 맞이하는 등 직원들을 위하는 마음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새해에는 직원들에게 감사금을 담은 빨간 봉투(홍바오)를 직접 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춘추항공의 각종 유지비용은 아끼고 줄이되, 비행기 운행의 안전비용과 직원들의 복지 및 월급비용만은 낮게 책정하지 않는 것이 춘추항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경영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