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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 Aug 11. 2019

괜히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게 아니었어


가끔 상상해본다. 만약 내가 돈이 많은데 한 번쯤 외국 생활을 경험하고 싶었다면? 나는 학생비자로 호주에 왔을 것이다. 굳이 외국인 노동자가 되지 않아도 외국 생활은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만 30세 미만이고 돈이 충분하지 않은, 즉 나 같은 사람들은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 비자 기간 내내 대학 등록금 수준으로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다만 내가 몰랐던 것은, 워킹홀리데이가 워킹 50%, 홀리데이 50% 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하는 강도와 시간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홀리데이는, 체감상 20%도 쉽지 않은 것 같다. 돈을 벌어서 해외여행을 다녀본 사람이 상상했던 그런 홀리데이는 이곳에서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여기서의 삶의 질이 한국에서의 그것보다 낮다. 돈 아끼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내가 이곳에서 장을 볼 때는 50센트라도 더 저렴한 물건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예전에는 늘 스타벅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출근했었지만 여기서 그렇게 하다가는 얼마 못가 파산할 것이다. 이런 문제는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하나 꼽는다면, 바로 집이다. 정확히는 내 방이다.

나는 대부분의 워홀러들처럼 쉐어하우스, 쉐어룸에 살고 있다. 서울에서는 10평도 안 되는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았었다. 그때도 월세가 너무 비싸다고 늘 불평했지만, 그건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시드니의 렌트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만약 집에 방이 3개인데 한 방에 2-3명씩 산다면, 전체 집을 공유하는 인원은 최소 6명 이상이 된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2인실도 비싸서 ‘닭장’이라고 불리는 4인실에 사는 학생들도 많다. 쉐어하우스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부터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나름대로 각오도 단단히 했었다. 불편하고 시끄러운 것을 어느 정도 감수하면 쉐어 메이트들과 친해질 수 있고 정보를 교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쉐어하우스에서 내가 얻은 것은 스트레스와 예민함 뿐이었다.

나의 룸메이트는 말이 많은 편이고 SNS를 열심히 하는 친구다. 틈만 나면 나에게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골라달라고 하거나, 클럽 혹은 수영장에 같이 가자고 했다. 방 안에서 통화하는 일도 잦았다. 내 상식으로는 바로 옆 침대에 사람이 누워 있는데 오랫동안 통화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끔은 스피커폰이었다...)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데 익숙한 나로서는 이 모든 것들이 견디기 힘들었다. 어느 저녁, 나는 참지 못하고 긴 통화는 거실이나 발코니에서 해달라고 말했고 그걸 계기로 우리는 크게 싸웠다. 무던하기로는 누구보다 자신 있던 내가 여기 온 지 한 달만에 외국인과 싸웠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우리는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고, 그날 전화 통화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시끄러웠다. 거기에 더해, 그간 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차곡차곡 쌓였던 나의 스트레스도 함께 폭발해버렸다.

조금 진정된 이후, 우리는 다시 대화를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룸메이트의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일단 문제의 그 날은 가족에게 일이 있어서 통화가 길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도 처음에는 쉐어하우스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하지만 여기는 한 사람의 집이 아니라 함께 사는 집이기 때문에 서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는 거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집에서 어떻게 하나도 거슬리는 것 없이 다 마음에 들 수 있겠어.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서 작은 일에도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내 문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앞으로는 내가 있을 때 방에서 크게 통화하거나 음악을 틀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룸메이트가 불편했고 내 스트레스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구나. 그냥 내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힘든 사람인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이, 아무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내 공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멋진 풍경도, 끝내주는 루프탑 수영장도, 심지어 내가 외국에서 살고 있다는 신기함도 다 소용없었다. 덕분에 두 달여간의 호주 생활이 아주 만족스럽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를 정확히 알게 됐다. 나는 지금 워킹도, 홀리데이도 아닌 그냥 불편한 일상을 견디는 중이었다.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뭔지 알아가는 과정도 분명히 필요한 일이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 실제는 전혀 달랐다. 나는 사실 수영장에 반해서 이 집을 선택했다. 정말 얼마나 바보같았는지... 나는 심지어 수영도 못하는데! 이제는 내가 그 무엇보다 ‘자기만의 방’이 절실한 사람임을 알았다. 이 교훈을 통해 다음에 더 나은 공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부디 다음 집에서는 홀리데이에 가까운 일상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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