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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 Jul 16. 2019

쉐어하우스는 처음이라

잘 모르는 사람, 그것도 외국인과 함께 산다는 것


“You want pasta? I make.”
나의 이탈리안 룸메이트 F가 물었고, 나는 쇼얼!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둘 다 영어를 잘 못한다. 다만 F는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투머치토커’이고 나는 인사 외에는 거의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없다. (원래의 나는 말이 많다. 역시 외국어로 말할 때는 인격이 달라지는 법이다.) 갑자기 파스타를 만들어 준다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고마웠다. 그런데 마트를 같이 가자고 했다. 생각해보니 당연한 일이다. 갑자기 2인분의 파스타를 만들려면 재료를 사 와야 할 것 아닌가. 아... 귀찮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안 먹는다고 할걸. 뭘 믿고 ‘쇼얼’이라고 대답한 거야. 후회가 밀려왔다. 영어 할 때의 나는 어찌 된 일인지 거절을 잘 못하고 무조건 예스맨이 된다. 이제 와서 안 먹는다고 할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F는 알리오 올리오를 만든다고 했다. 매운 거 좋아하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알리오 올리오가 매운 파스타였나? 뭔가 이상했지만 굳이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F는 이미 저만치 멀리 가고 있다. 갑자기 나도 내일 점심으로 먹을 빵을 미리 사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빵 좀 살게,라고 말하고 잠시 다른 코너로 갔다. 1분도 지나지 않아 F가 나를 툭툭 쳤다.

“근데 정말 웃기지 않아?”

빵을 고르고 있던 내가 벙찐 채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 또 그 남자 이야기다. F는 최근에 한 남자를 알게 됐는데, 한 번은 거리에서, 또 한 번은 클럽에서 그를 ‘두 번이나’ 우연히 마주쳤다고 했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이야기만 거의 열 번째였다. 물론 두 번의 우연이라니 신기하긴 한데, 사실 뭐 아주 없을 법한 일도 아니어서 나는 아 그래? 신기하다, 정도로만 반응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반응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건 평범하지 않다고(잇츠 낫 노멀!) 갑자기 나에게 데스티니를 믿느냐고 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져서 그저 웃었다. 데스티니라니. 결국 나는 빵을 사지 못했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놀랍게도 알리오 올리오는 엄청나게 매웠다. 더 놀라운 사실은 매운맛 외에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마늘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수하게 맵기만 한 하얀 면을 먹어본 적 있나요? 약간의 닭고기를 곁들였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는 파스타를 먹고 와인을 마시면서 넷플릭스로 공포 영화를 보았다. 비록 파스타를 먹는 건 힘들었고 영화가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즐거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건 정말 외국에서만 가능한 일이잖아. 나는 너무 맛있다고, 고맙다고 말했고 F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우아하게 대답했다. 영어 할 때의 나는 어찌 된 일인지 거짓말을 더 잘하게 된다...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먹은 뒤 (결국 다 먹지는 못했다.) 조용히 남은 음식물을 치웠다.

배가 부르고 즐거우면서도 피곤한, 어쩐지 혼란스러운 밤이었다. 혹시 다음에 F가 또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면 차라리 내가 냉동식품 떡볶이라도 만들어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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