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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 Oct 02. 2019

인생의 선택지를 넓히는 중입니다


며칠을 내리 일하고 드디어 휴일을 맞이 했다. 눈을 뜨자마자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느릿느릿 아침을 해 먹는다. 쉬는 날까지 끼니를 대충 때우기는 싫어서 며칠 전 사다 놓은 야채와 고기를 손질해 서툰 솜씨로 카레를 만들었다. 밥을 먹으면서 이 소중한 휴무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한다. 어디갈지, 뭘 할지 딱히 정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까워서 일단 버스를 타고 시티로 나간다. 아마 늘 그렇듯 적당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공원을 산책하고 간단히 장을 본 뒤 집에 가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바로 이런 날에 여지없이 외로워진다.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받고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미뤄두었던 감정을 마주하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생각나고 마는 것이다. 그리 대단한 순간들은 아니다. 가고 싶었던 식당에서 맛있는 밥 먹고, 예쁜 카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같이 사진을 찍어 남기고, 빠른 시일 내 또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지는 일들. 너무 당연하면 소중한지 모른다고 하지만 사실 그때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만남들이 있어서 회사와 일과 무기력한 일상을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을. 이 먼 곳에서도 나는 일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힘들고 생소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그걸 버티게 해 줄 사소하고 즐거운 만남들이 없다.

그렇지만 마냥 징징댈 수가 없다. 내가 부득부득 남겨놓은 지난날의 글이, 이게 내가 여기 온 이유라고 똑똑히 알려주기 때문이다.


멋있고 예쁜 것, 즐거운 것은 몇 년간 많이 했다. 그래도 뭔가 알맹이가 텅 빈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좀 다른 방향으로 가보아도 괜찮겠지.


올해 초반에 남겨 두었던 일기다.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 인생의 알맹이를 굳이 꼭 여기, 호주에서 찾겠다는 것은 아니다. (세계 여행으로 자아를 찾겠다는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고 믿고 있다...) 다만 나는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것들만 하지는 않으려고,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고 여기에 왔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내 감정에 대해 글을 쓰고, 내가 쓰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오피스잡이 아닌 다른 일을 해보는 것. 이런 경험, 저런 경험을 쌓아 좁디좁았던 내 인생의 반경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

예전에 갔던 북토크에서 <일하는 마음> 제현주 작가님이 ‘중요한 선택은 객관식으로 해야 한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커리어의 방향을 결정할 때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좋은 답안을 써 내려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니 구체적인 선택지를 만들고 그것들을 직접 경험해가면서 객관식의 상태에서 답을 고르라는 것이다. 그때는 일에 관련된 이야기였지만, 나는 너무 감명을 받아서 인생 전반에도 그 말을 적용하고 싶었다. 회사에 입사하던 이십 대 중반에 내 인생의 선택지는 단 하나, 그저 남들처럼 회사를 다니는 것이었다. 다른 방식의 삶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었고 알지도 못하는 것에 감히 도전할 용기 같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자, 이미 길이 정해져 버린 삶에 점차 회의를 느끼게 됐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고 싶다면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다른 길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살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것이 마법처럼 달라질 거라 믿는 무책임한 주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선택지를 가진 객관식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것이 내 호주행의 이유이자 목표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도 내 자리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별다른 할 줄 아는 것이 없으니 다시 회사원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정해진 길로만 걷지는 않았다. 지금의 걸음들이 내 삶의 반경을 한 뼘 더 넓혀줄 것이고, 내 단조로운 인생에 조금 더 많은 선택지가 생겨날 것이다.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고 해도 예전과 완전히 똑같은 삶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목표대로 잘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렇게 위안하며 오늘치의 외로움을 버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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