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i Nov 18. 2022

어느 케이팝 박애주의자의 고백

누구의 팬도 아니지만 모두의 팬이기도 한


나의 장래 희망은 케이팝 듣는 할머니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춤추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고, 케이팝은 내게 그런 존재다. 아무리 몸이 늙고 지치더라도 그런 흥과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다. ‘요즘 것들'을 운운하는 꽉 막힌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바람도 있다. 내가 케이팝을 크게 틀고 몸을 흔들어 대면 아빠는 “이런 시끄럽기 만한 게 무슨 노래냐?” 하며 투덜대는데, 그게 참 못나 보였다. 훗날 나에게 자식, 손녀, 손자가 생긴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듣고 대화를 나눌 것이다.


사실 케이팝 문화와 팬덤은 오랫동안 긍정적인 시선을 받지 못했다. 팬들은 ‘빠순이’ 같은 멸칭으로 불렸고 자주 무시받았다. 아이돌은 철없는 어린 시절에나 좋아하는 것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덕후’, ‘덕질’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방송 콘텐츠에 나온다. 뭔가에 몰입하며 열광하는 에너지가 존중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흐름에 힘입어 나도 어디 가서 ‘케이팝을 좋아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그 뒤에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는 거다. “아, 그럼 누구 팬이에요?”


이 질문에는 도저히 간단하게 답할 수가 없다. 만약 여기서 정의하는 ‘팬'이 특정 가수의 스케줄을 달달 외우고, 팬 미팅에 당첨되기 위해 앨범을 수십 장 산다거나, 모든 콘서트 일정마다 티켓을 구해서 기어이 ‘올콘’을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해당하지 않는다. 물론 나에게도 모 그룹을 꽤 열렬하게 좋아했던 시절이 있으나, 훗날 한 멤버의 범죄 사실이 밝혀진 뒤 다시는 그런 밀도와 강도로 아이돌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고만 밝혀둔다. 하지만 나는 케이팝 신곡 대부분을 꿰고 있고, 신인 아이돌 그룹이 나오면 그들의 세계관이나 멤버 구성을 살펴보고, 포인트 가사와 안무를 외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좋아하는 가수가 컴백하면 음악 방송 무대와 각종 퍼포먼스 콘텐츠를 꼼꼼히 본 뒤 이번 컨셉과 음악에 대해 토론해야 직성이 풀린다. “뭐, 어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세요?” 걸그룹 ‘아이들’의 새로운 앨범 컨셉이 얼마나 놀랍고 감동적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나에게 친구가 한 말이다. 차라리 이게 돈 받고 하는 일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누구의 팬도 아니지만, 모두의 팬이기도 한 나는 스스로에게 ‘케이팝 박애주의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수많은 가수와 음악을 평등하게, 너무 과하지 않게, 하지만 진심으로 좋아하는 상태에 잘 어울리는 적당한 말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긴 대답을 들어줄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냥 전체적으로 다 좋아해요…'라는 식으로 대충 얼버부려 대답하고 만다.


나는 어쩌다 일년 365일 중 349일 케이팝을 듣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것은 실제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이 알려준 나의 2021년 음악 감상 데이터이다.) 아마 케이팝이라는 고자극에 중독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콘텐츠든 재미와 감동을 얻으려면 일정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영화는 약 2시간, 드라마는 16부작, 책은 수백 페이지 이상. 그런데 케이팝은 단 3분 안에 승부를 본다. (그룹 ‘포미닛’이 야심 차게 데뷔하던 시절에는 노래 한 곡이 보통 4분이었는데, 요즘은 3분이 대세인듯하다.) 그 3분 안에 기획사와 방송사와 가수의 역량, 컨셉, 스토리, 비주얼, 퍼포먼스, 피땀 눈물 같은 것이 모두 담긴다. 그렇게 엄청난 엔터테인먼트가 매주, 매월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이게 건강한 취미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일상이 심심해서 자극을 찾아다니는 내가 환장할 만한 즐길거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요즘은 ‘뉴진스’를 가장 좋아한다. 하필 ‘여돌 전성기'에 데뷔하는 바람에 이들이 올해 신인상을 탈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나랑은 상관없지만) 꽤 중요한 이슈다. 뉴진스의 무대를 보면 하이틴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며 괜히 아련해진다. 사실 나의 하이틴은 매점에서 빵 사 먹고 책상에서 엎드려 자는 야간 자율학습이 전부였지만, 있지도 않은 추억을 조작하는 것 역시 케이팝의 힘이겠지. 이렇게 오늘도 장래희망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작가의 이전글 A지만 동시에 A가 아닌 것 - 영화 <헤어질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