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말레식, <번아웃의 종말>
나름대로 ‘워라밸’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했다. 일터에서의 피드백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몰두할 수 있는 취미를 만들 것. 틈틈이 휴가를 떠날 것. 쉬는 날에는 업무 메신저를 보지 말 것. 일과 삶을 잘 분리하라는 지침들을 성실하게 지켰다. 그런데도 나는 번아웃을 피하지 못했다. ‘이게 번아웃인가?’ 싶은 순간이 찾아왔고, 차츰 그 간격이 잦아졌고, 어느 순간 이게 번아웃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만큼 괴로워졌다. 진심으로 ‘번아웃의 종말’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던 것 같다.
이 책은 번아웃이 개인이 겪는 문제인 동시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화’라는 점을 지적한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번아웃이 온다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업무의 강도나 환경은 물론, 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역시 번아웃의 원인이 된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누구나 노동으로써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믿음. 내가 놀란 건 이 부분이었다.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던 이 믿음이 우리를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만들고, 일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한 인간의 가치가 노동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진실을 망각한 채.
어떻게 번아웃을 막을 수 있을까? 과연 막을 수 있기는 한 걸까? 회의감이 들 때 이 책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번아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대신, ‘내가 당신의 번아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동료를 일하는 사람 이전에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 대하고, 우리의 삶이 일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그렇게 내가 속한 곳의 풍경을 조금씩 바꾸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바꾸는 순간, 이 거대한 문제를 풀어나갈 작은 실마리를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나단 말레식, <번아웃의 종말>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