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해를 마무리하기 전에 목표를 달성했다.

NRC - 보라색

by 슬로우 러너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릿해지게 마련이지만, 기록은 오래동안 남게 된다. 물론 어떤 관점에서 기록을 남기는 것에 따라서 기록의 방향과 가치는 달라지게 된다. 나의 달리기는 기록하기 이전과 이후로 달라졌다. 학창시절에도 달렸다. 단거리는 늘 꼴찌였지만, 장거리(1.5km 정도 밖에 안되었지만 그때는 꽤 길게 느껴졌다.)는 그래도 왠만큼(?) 뛰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군대에서도 주기적으로(대부분, 의무적으로) 달렸다. 30대에도 가끔씩 달렸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아있는게 아무것도 없고 어렴풋한 기억만 있다.

4년 전에 아는 동생의 소개로 NRC(Nike Run Club)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번거롭게 느껴졌다.

'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달리기 전에 앱을 켜서 시작을 누르고, 다 뛴 다음에 다시 종료 버튼을 누르는게 귀찮았다. 그래서 까먹고 그냥 뛴 날도 허다했다.


누적 마일리지 49.99km까지는 노란색으로 기록이 표시된다. 이때는 등급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누적 마일리지가 50km가 넘어가면서 오렌지 색으로 바뀌었고, 레벨 업이 되었다는 묘한 성취감이 생겼다. 경계선을 지났다고 해서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도 아니고 달리기 실력이 크게 향상된 것도 아니지만, 앱에서 기록을 표시하는 색상이 변하게 되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 느낌이었다.


오렌지색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다시 파란색으로 바뀌면서 달라진게 있다.

"내 취미는 달리기야"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고 꾸준하게 달린다고 은근히 자랑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2024년 가을부터 아침 조깅을 시작하면서 한달에 평균 100km 정도를 달리고 있다. 2025년을 시작하면서 한해 목표로 누적 마일리지를 2,500km를 채워서 보라색 레벨이 되는 것으로 다이어리에 적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서 잠시 주춤했다.

여름이 지나고 바빠졌다. 늦게 잠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아침에 늦게 일어났고, 아침 조깅을 놓치는 날이 많아졌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도 30분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월별 마일리지를 보면, 9월과 10월이 가장 저조했다. 1년 중에 야외 달리기를 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지만, 소중한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12월이 되었고, 2025년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감기가 찾아와서 한주 정도 콧물이 흘러내렸고, 눈이 내려서 길에 소복히 쌓였고, 폭풍같은 바람이 부는 날도 있었던 12월이었지만, 틈틈히 달렸다. 한해가 지나가기 전에 누적 마일리지 2,500km를 채워서 보라색으로 레벨 업을 하고 싶었다. 소박한 목표를 이루고 싶었던 바램 덕분에 추운 날씨에도 밖으로 나가서 달렸다.

12월 31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도 5.9km만 더 채우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런닝화를 신었다. 집 앞에서 출발해서 500m 정도 지났을 때, 심박수가 치솟는 모습을 보았다. 가급적이면 조깅할 때 심박수 135를 넘기지 않으려고 하는데, 8분/km의 속도로 천천히 달려도 심박수가 150을 넘어섰다. 수면부족으로 컨디션이 정말 안좋은게 단순한 내 느낌이 아니라 수치로 드러났다. 그래서 속도를 더 늦췄다.

'무리하지 말고 속도를 줄이자.'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천천히 달렸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이 나를 스쳐지나가도 신경쓰지 않았다.

'난 지금 저 사람과 경쟁하는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달리고 있는거야'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쓰지 말고, 내 마음을 추스리려면서 달리려고 했다.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달렸더니 컨디션이 안좋은 날에도 무난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목표했던 2,500km를 채우고 보라색으로 드디어 레벨 업을 했다. 이 숫자는 2025년 열심히 달렸던 나에게는 주는 선물이고 보상처럼 다가왔다.


마음이 복잡하고 답답한 순간이 많았던 2025년이었지만, 달리기 덕분에 건강도 유지할 수 있었고 마음도 지킬 수 있었다.


2022년 1월 6일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NRC의 연간 마일리지 막대 그래프가 해를 지나면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괜히 뿌듯하다. 그리고 2026년 새해는 더욱 기대가 된다.


2026년 달리기 새해 목표
1) 연 1,500km 달리기
2) 누적 마일리지 4,000km 달성
3) 10km 45분 이내로 달리기

다음 단계인 검은색으로 넘어가려면 5,000km를 달성해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여유는 없을 것 같아서 현실적인 목표를 세웠다. 2026년에도 때로는 혼자서 명상(아니면 공상)을 하면서 여유있게 조깅하고, 때로는 아내와 오붓하게 러닝 데이트를 하고, 때로는 기록을 측정하면서 있는 힘껏 달리며 한계에 도전하면서 즐겁게 달리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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