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결정들

by 쓰는사람 Sun

일상을 채우는 건 사소한 결정이다. 요리를 하다 말고 나온 쓰레기를 모아서 버릴 것인가 그 때 그 때 버릴 것인가. 냉장고에서 뭘 꺼내러 간 김에 무슨 일을 더 보태야 동선이 짧아질까. 의외로 그런 사소한 고민은 나의 시간, 편리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늘 어떻게 해야 더 현명한 것일까 고심한다. 그 때 현명함의 판단이란 것은 뭘까? 시간을 아끼는 것? 더 나은 인간이라고 느껴지게 하는 것? 잘 살고 있다는 뿌듯함? 잘 모르겠다.

프리랜서가 된 뒤로는 그런 결정의 가짓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예전에는 일을 어떻게 퇴근전에 해치울까, 어떻게 하면 덜 고생할까, 욕을 안 먹을까가 주된 관심사였다면 이제는 혼자 있는 나 자신을 전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오늘 내린 사소한 결정의 목록은 이것이다.

첫번째, 빨래는 오후에 하자. 아침에 세탁기에 빨래를 몰아넣으면 뭔가 상쾌하고 뿌듯하지만 작업 중간 중간 계속 일거리에 시달려야 한다. 띠리링 빨래가 다 됐다는 소식에 건조기에 넣을 것과 그냥 널어야 할 것을 분류해서 널고 건조기 먼지통도 씻어야 한다. 이것만 해도 20분은 잡아먹는다. 건조기가 다 돌아가면 꺼낸 빨래를 방바닥에 부어넣고 언제 갤것인가 노려봐야 한다. 주로 밤에 티비를 보며 갠다. 갠 빨래는 식구들에게 소리질러 가져가게 하든지 배달해주어야 한다. 쭉 이어지지도 않고 드문드문 일거리가 생기는 빨래는 오후로 넘기는 게 작업에 방해가 덜 된다. 어차피 가득찬 빨래통은 내 눈에 안보이니 순간의 상쾌함만 거두면 된다.

두번째, 미용실을 언제 갈 것인가. 29일에 외부일정이 있어서 시원하게 머리를 자르고 싶었지만 그 전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머리에 염색도 해야하고 염색을 셀프로 할까 가서 할 까 두피가 안 좋아 병원 가서 약부터 사야 되나 온갖 고민이 따라와 30분은 생각을 해야했다. 결국 미용실은 9월이 되어 가기로 했다. 오래 걸린 결정이었다.

세번째, 모닝 유튜브 바꾸기. 아침에 주로 캠핑, 요리, 가끔 경게 유튜브를 봤는데 지겨웠다. 어제부터는 예스티비를 본다. 어제는 백온유 작가, 오늘은 은유 작가 인터뷰를 봤다. 좋았다. 직접 북토크를 가지 않아도 자극이 되는 작가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으니 의미있는 일을 아침부터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예스티비에는 플레이리스트가 있어서 작가이야기를 들은 후 그대로 플레이리스트로 이동해서 들을 수 있다. 어제는 토베 얀손의 여름 테마를 들었고 오늘은 손원평 아몬드 테마를 틀어두었다. 그걸 틀어두고 세수를 하고 일을 한다. 뭔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네번째, 점심은 배달시킬 것인가 직접 할 것인가. 이것은 늘 하는 고민이다. 오늘은 김밥을 먹고 싶었기 때문에 배달하고 싶은 마음 90 정도를 억누르고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요즘 요리에 진절머리가 나지만 냉장고 식재료를 이용해서 노동을 하면 돈도 아끼고 맛도 있다. 오늘은 당근을 채썰어 볶고 어제 만든 풋고추 조림을 넣고 깻잎도 깔고 참치도 얹어서 말아먹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다 만들고 나면 설거지거리도 마구 쌓일 것이다. 그래도 직접 만들어 먹기로 했다. 냉장고에 깻잎, 당근, 참치, 개봉해놓은 김밥용 김이 있는데 시켜먹을 수는 없다. 시간은 많고 돈은 없는 사람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내일은 또 어떤 결정을 하게 되려나.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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