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보러 갔다.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갔다. 특별히 빨리 가야 하는 약속이 아닐 때는 (사실 약속이 있을 때도 대부분)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면 바깥이 보여서 좋다. 다른 사람들고 마주보고 앉지 않고 창을 한 켠에 두고 앉을 수 있는 것도 좋다.
오늘 버스를 타고 가며 건물들을 보다가 새로운 발견을 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작은 골목 같은 곳에 반드시 문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집과 집 사이로 난 길인 골목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빌딩과 빌딩사이에는 길 같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빌딩이 벽 하나로 이어져 있지않은 이상은 반드시 옆 건물과 사이에 공간이 있었다. 적다보니 빌딩이라고 쓰긴 했지만 그 정도 규모의 건물은 정원을 끼고 있거나 조형물이 있고 문이 달린 골목을 가진 건물은 3층에서 5층 정도 되는 건물들이다. 그곳에는 반드시 문이 있었다. 철제 문이기도 하고 옆에 있는 가게와 톤을 맞춘 문이기도 하고 대충 아무렇게나 나무로 조악하게 막아놓은 문이기도 했다. 어떤 곳은 지붕까지 착실히 있기도 하고 어떤 곳은 좀 넓어서 차고로 쓰기도 한다. 어쨌든 모두 문이 있다. 왜 문이 있을가 생각해보니 그곳에 문이 없으면 누군가 들어와 노상방뇨를 하거나 토해놓거나 몰래 쓰레기를 버리거나 여튼 골치 아픈 일이 생길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있으니 계속 건물과 건물 사이, 거기에 달린 문만 보게 되었다. 그렇게 살펴보다가 그라운드 시소에 도착을 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사후에 알려진 사진가다. 그녀는 오랫동안 보모일을 했고 또 1950년대에 세계여행을 했다. 로우앵글로 찍혀서 독특한 시선을 만들어내는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로 도시와 도시의 사람들을 찍고 또 찍었다. 그가 찍은 인물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싸우고 있기도 하고 어딘지 모를 곳을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신문을 보며 탄식을 하기도 했다. 영화의 스틸사진 같았다. 아이들을 찍을 때는 예쁘고 귀여운 모습보다 울고 있거나 도망가거나 잡아당기거나 장난을 치는 모습을 찍었다. 프레임 활용도 많이 했다. 건물과 구조물이 만들어낸 선을 잘 활용해서 감각있는 사진을 찍었고 거울과 창문, 물건의 프레임 안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을 찍었다. 그대로 인스타에 올리면 지금 찍은 사진이라고 믿을 수 밖에 없는 감성의 사진들이 많았다.
군인처럼 뚜벅 뚜벅 걸어다녔다는 키큰 여자. 신문부터 시작해서 온갖 이질적인 물건을 모으고 또 모은 여자. 11년간 기른 아이들과는 더 없이 사이가 좋았다는 여자. 그토록 많은 사진과 영상물을 찍었지만 세상에는 하나도 내놓지 않은 여자.
당연하겠지만 그가 찍은 사진에는 그의 시선이 있었다. 그는 마치 내가 버스를 타고 갈 때마다 사람들과 풍경들을 열심히 본 것처럼 카메라로 세상을 열심히 본 것 같았다. 버스안에 있으면 세상에서 살짝 한발짝 물러난 구경꾼이 된 기분이다. 목적을 잃은 여행자처럼 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스쳐가는 모르는 동네의 모르는 건물들을 쳐다본다. 비비안마이어도 카메라를 통해 나와 비슷한 것을 느낀 걸까? 그는 사진을 찍었고 나는 이렇게 내가 본 것을 기록한다. 구경하는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을 무엇으로라도 남기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