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전환

by 쓰는사람 Sun

살다보면 여러 이유로 우울의 늪, 슬럼프 구간에 빠진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늘 헤어나오기 힘든 구간이다. 사소한 것들에 잔펀치를 맞듯 마음이 상하고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에도 상처를 입는다. 되도록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난 여름부터 찾아온 각종 재난들로 인해 계속 그런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내 자신의 객관적 상황은 나쁘지 않지만 주위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나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가족의 건강이 나빠지고 아무 필요도 없는 간섭과 조언의 늪에 빠지고 애를 써왔던 것들이 소용없게 되고 꼭 받고 싶은 연락은 하염없이 미뤄진다.

기약없는 기다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6주전부터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두달 정도 천천히 예열을 한다. 달리기 유튜브를 보고 달리기 책을 읽는다. 무선 이어폰과 스포츠 시계를 사고 달리기 어플을 깐다. 운동화를 사고 집안을 뒤져 러닝복을 마련한다. 그리고 한두달 뒤 드디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은 1분 달리고 2분걷고 지금은 4분 달리고 2분걷는다. 삶이 바뀌지도 않았고 특별히 기분이 좋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의 돌파구, 시간보내는 방법이 생겼다. 건강한 루틴이 하나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가구 배치를 바꿨다. 책상에 앉아서 해야 하는 일을 세 개 정도 계획했는데 도저히 책상에 앉기가 싫어서 책상의 방향을 바꿨다. 여름햇살을 피하기 위해 창을 등지고 부엌쪽을 바라보게 놔둔 책상을 벽을 향하게 하고 오른쪽에 베란다를 두었다. 베란다에는 제라늄이 피어있고 스탠드와 테이블과 스피커와 안락의자가 있다. 가끔 곁눈질로 그런 것들을 보고 그 너머에 있는 비오는 하늘을 본다.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뭔가를 재배치하는 일은 늘 자극을 준다. 계절이 바뀌면 햇빛과 바람의 방향에 따라 책상 배치를 다르게 한다. 듣는 음악의 종류도 바꾼다. 11월부터는 쭉 캐롤이다. 생각보다 여행은 그렇게 큰 기쁨은 아니었다. 내가 사는 공간이 중요하다. 공간을 바꾸고 물건을 버리고 먼지 쌓인 곳에 바람이 들게 하는 것이 기분전환에는 제일 좋다. 오늘 그렇게 했다. 조금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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