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산막이길
산막이옛길을 가보고 싶었다. 산막이라는 말도 옛길이라는 말도 비슷한 정취를 예상하게 했는데 그것은 울창한 숲속으로 좁게 나있는 아름다운 오솔길이었다. 제멋대로 상상한 뒤에 출발하였다.
도착한 후 주차장의 엄청난 규모에 놀랐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조그만 오솔길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이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주차장 근처에는 대단한 규모의 식당들도 많았지만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배가 고파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도 수학여행이나 관광버스객이 통째로 들어올만큼 규모가 컸다. 청국장을 시켰는데 직접 만든 두부가 맛있다며 꼭 먹어보라고 사장님이 권하셔서 두부도 시켰다. 안쪽에서는 엄마, 아빠, 아들, 딸 4인가족이 밥을 먹고 있었다. 식당 카운터 주변은 온갖 식당의 살림살이들로 빼곡했다. 살림집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음식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추가로 시킨 두부까지 먹으니 배가 너무 불렀다. 두부를 안시켰으면 딱 양이 맞았을텐데 주인장님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식당을 나와 옛길 입구로 갔다. 버섯이나 약초같은 특산물을 파는 매장이 있었지만 대부분 문은 닫혀있었다. 커다란 산막이옛길 이정표 포토존과 안내판과 약도와 장승같은 구조물이 서있었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산막이 옛길은 이런 구조물 천지였다. 나무, 돌, 지형지물, 갈림길마다 정성스런 표지판과 해설이 붙어 있었고 대부분의 해설은 부부나 연인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글귀였다. 정사목 나무를 보며 남녀가 기원하면 옥동자를 잉태한다는 등의 이야기들말이다. 호랑이 굴 앞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호랑이 동상이 있고 방앗간에는 역시 플라스틱 소가 있었다. 싯귀나 글귀들도 곳곳에 있었다. 이런 글귀들은 학교 계단을 올라갈 때처럼 있으면 저절로 읽게 되기 때문에 걷는 내내 약간 과부하가 되는 느낌이었다. 쓰레기 금지 취사금지 등도 외치듯이 커다란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산막이 옛길은 내가 생각한 고요한 오솔길이 아니라 괴산에서 대대적으로 밀고 있는 국민관광지의 느낌이 매우 강했다. 내가 간 날은 관광객이 많은 날은 아니었는데 대부분 노년의 남녀, 엄마 두명과 자녀 여러 명, 엄마한명과 자녀 여러명, 부부와 자녀 등 가족단위가 많았다. 길은 걷기 편하고 예뻤고 산 속이 아니라 호숫갈로 난 길이었지만 걷는 내내 느껴지는 미묘한 정취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많은 구조물과 글귀와 산막이 마을에서 울려퍼지던 80년대 카페음악 같은 것이 몹시 피로하였다. 산막이 마을을 지나 연하협 다리 가는 길로 들어서자 비로소 내가 생각한 산막이 옛길의 정취가 느껴지는 작은 길이 나왔다. 연하협 구름다리를 건너 선착장에 가서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질녘 호수를 가르는 유람선 위는 시원했다. 지나치게 젊어보이는 엄마와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큰 아들, 계속 떼를 쓰고 있는 딸로 이루어진 가족이 옆에 있어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한껏 차려입은 커플은 달리는 배 위에서 하염없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산막이 마을에서 배를 갈아타야 해서 15분을 기다렸다. 막배라서 시간을 맞추려면 우리가 타고 온 배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산막이 옛길 입구로 가는 배를 타고 돌아왔다.
산막이옛길은 언젠가 내가 사진에서 봤던 호젓하고 자연적인 오솔길, 숲길은 아니었다. 걷고 유람선을 타고 돌아오는 기분은 예전에 부여 백마강에서 유람선을 탔던 기억, 포천 산정호수의 옛 풍경, 장흥 유원지 등을 떠오르게 했다. 오랜만오래된 유원지의 분위기는 좀 쓸쓸한 기분에 젖게 했다. 과거에서 튀어나온 듯, 소설에서 걸어나온 듯 보이는 관광객들의 분위기와 해가 뉘엿뉘엿 지는 호수, 유람선 같은 것들이 다 그 기분을 도왔다. 우울한 레트로라고 해야 하나.
걷는 동안 가장 좋았던 시간은 산막이 마을에서 연하협 다리로 가는 도중 호수를 바라보며 쉬었던 벤치이다. 앞뒤가 다 산으로 막혀있는데 가운데는 호수가 있고 사방이 조용하고 아름다워서 꿈속같은 기분이었다. 저 위 사진이 바로 그때 내가 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