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타까움과 체념 너머의 무엇
남아있는 나날, 나를 보내지 마. 녹턴, 파묻힌 거인. 내가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들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떤 작가의 책 하나가 깊이 마음에 들면 당연히 그의 다른 책들도 읽게 된다. 중간 정도 마음에 들면 다른 책은 혹시 깊이 마음에 드나 싶어서 한 두권 더 읽어본다. 마음에 안들면 그 작가의 책은 딱 한권으로 끝낸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네권이나 읽었으니까 꽤 깊이 마음을 움직인 작가라는 뜻이다. 어엿하게 노벨상을 받은 작가에게 내가 마음에 드니 안드니 하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겠지만 만인이 좋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그만이라는 것이 취향의 좋은 점 아닌가. 다른 분야에 비해 어쩐지 독서는 취향에 따라 수준을 드러내는 정도가 심한 것 같아서 마음껏 떠들어대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내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안타까움과 회환과 체념이다. 보통 이런 경우 결말은 비통한 파멸 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식의 의지가 되기 마련인데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들의 결말은 그 너머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클라라와 태양은 가독성이 좋다. 솔직히 말해서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마는 결말에 거의 다다를 때까지 지루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기승전결이 통 없는 것 같은 구성에 숨막힐 듯 정밀한 묘사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 같지 않은 대화들은 읽다보면 자꾸 정신줄을 놓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폭풍처럼 다가오는 깊은 감정과 회한들이 그 앞의 잔잔함을 다 잊어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클라라와 태양의 정조는 시종일관 비슷하다. 감정이 없는(없다고 할 수 있나) AI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인지 특별한 기복없이 조용한 관찰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관찰들이 재미있다. 지루하지가 않다. 인간의 사소한 행동을 보며 그 안에 감춰진 감정과 신호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학습하는 과정은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에도 신선하다.주인공 클라라는 자신이 기계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한없이 겸손하다.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고 복습하고 그것을 나중에 적용시켜 가는 데도 신중하며 주인의 친구가 되야하는 자신의 임무에 더할나위 없이 성실하다. 그것은 단순히 명령에 복종을 하거나 행동패턴을 예측해서 미리 무엇인가를 해주는 기계적인 특성과는 다르다. 더구나 클라라는 신의가 있다. 인간아이들의 친구로 만들어진 AF이고 누군가의 친구가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자신을 먼저 찜한 조시를 기다리기 위해 다른 이들을 외면하는 인간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클라라는 조시네 집에 와서 조시네 가족과 친구들의 복잡한 마음과 그들의 아픈 과거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아픈 조시를 낫게 하기 위한 자신의 과업을 끈질기게 수행하면서 말 그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모든 기계 장난감을 다룬 영화나 소설의 결말에서 그러하듯이 종내에는 쓸모가 없어진 신세가 된다.모든 할일이 끝나고 기억이 마구 겹치는 클라라. 자신의 기억이 이상하게 합성되어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생생한 기억때문에 현실을 잊게 되어 내버려두는 로봇. 그리고 이시구로의 소설이 묘사하는 우아하고 황량한 풍경 묘사때문에 마지막 부분은 역시 마음을 손바닥으로 내리누르듯 읽게 된다. 하늘을 나는 새조차 흥미없어하고 방문객 드문 야적장에서 뒤죽박죽한 기억들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클라라는 어쩌면 요양원에 있는 노인 같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 방문객이 끝끝내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먼 지평선 근처만 한 번 본 후 가던 길을 가도 클라라는 담담하다. 이시구로 소설 결말에 나오는 이 담담함 때문에 나는 그의 소설을 또 읽는다.
많은 일을 겪고 많은 비밀을 알게 된 사람(또는 로봇이) 끝까지 꼿꼿하게 서서 담담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내가 꿈꾸는 마지막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