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1년 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진행하는 크고 작은 마케팅 배움들을 낱낱이 기록하겠다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어진 듯하다. 그럼에도 브런치의 글쓰기 버튼을 다시 누른 이유는, 기록하고 정리하고 공유하고 싶은 작년의 교훈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회고 1. 임팩트 있는 새로운 시도의 중요성
돌이켜보면 우리 팀의 UA 마케팅은 꽤나 보수적이었던 것 같다. 구글과 페이스북 유입 효율이 마케팅의 전부인 양 타겟과 크리에이티브에만 매달렸다. 효율은 조금씩 나아졌지만 성장의 속도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퀀텀점프를 위해서는 임팩트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팀 내에서 형성되었고, 어떤 시도를 해야 할지 많은 논의를 거쳤다.
여러 후보들 중 유튜브 인플루언서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고, 바로 시도했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었고 대행사 없이 다이렉트로 진행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가 원하는 메시지가 잘 표현되고, 성과 측정만 미리 설계되면 실패하더라도 학습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CPI(설치 당 비용)은 100원 대, 구매효율도 역대 최고 효율을 기록했다. 처음 시도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우리에게 큰 성과는 물론 새로운 충격까지 함께 전달해 주었다.
결과론적일 수밖에 없지만, 팀에서는 이번 인플루언서 마케팅 성공 요인을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1. 핏이 잘 맞는 채널 : 우리 서비스(마이클)는 연비, 소모품 교체주기 등 내 차 정보를 확인하고, 가까운 정비소까지 예약할 수 있는 O2O 서비스다. 전국 어디서나 앱에 명시된 가격으로 엔진오일, 타이어 등의 정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타겟은 차를 잘 아는 차잘알이 아닌 차를 잘 모르는 일반 초보 운전자들이다(차를 잘 아는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인터넷 검색해서 최저가로 교체한다). 자동차 인플루언서는 대부분 신차 리뷰 등 차에 관심이 많은 구독자를 타겟으로 하는 채널이 많다. 때문에 우리는 초보, 여성 운전자를 타겟으로 하여 차량의 기본적인 작동 방법, 교통 법규 등을 쉽게 설명해주는 채널을 선정했다.
2. 크리에이터의 톤 앤 매너 존중 : 영상 자체에 대해서는 디테일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처음 제안한 영상 콘티도 원래 10분 짜리였으나 크리에이터의 의견을 반영해 5분으로 줄였다. 최대한 인플루언서의 톤 앤 매너를 유지하되, 우리가 꼭 강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메시지는 CPI(설치하면 엔진오일 교체주기 알려주는 앱) + CPA(후기 보고 엔진오일 예약/방문) 2가지만 강조했다.
3. 많은 트래픽을 받을 준비가 된 프로덕트 : 이번 인플루언서 마케팅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영상 댓글 반응이었다. '마카롱 때부터 잘 쓰고 있었다', '광고는 이렇게 받아야지', '다들 쓰세요, 두 번 쓰세요', '이건 광고가 아니라 정보인데요?' 등 이미 잘 사용하고 있는 유저들의 좋은 댓글 반응 덕분에 영상 자체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또 O2O 서비스의 특성상 많은 신규 유입이 일어나더라도 주변에 예약할 수 있는 정비소가 없다면, 아까운 구매 전환을 놓칠 수 있다. 다행히 신규 유저의 예약 전환율과 전국 정비소 커버리지가 궤도에 올라섰다고 판단된 시점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유입과 구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2020년에는 누적 200만 다운로드라는 성과를 조기 달성할 수 있었고, 2021년 마케팅 계획에는 새로운 채널 발굴과 시도를 위한 업무들이 대거 추가되었다.
업무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진행되는 업무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임팩트 있는 새로운 시도의 중요성!'을 속으로 크게 3번 외쳐야겠다.
작년 회고 2. 중요하지만 꺼려지는 업무는 의도적으로 마주하자.
작년에는 분명 중요한 업무지만 무의식적으로 꺼려지는 업무들이 있었다. 그 업무의 중요성을 A-Z까지 설득해야 한다던지, 개발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많다던지 등등의 이유로 중요하지만 손이 잘 안 가는 그런 업무들이 분명 존재했다.
일례로 우리는 우리의 서비스가 얼마나 주변에 바이럴 되고, 이를 통해 얼마나 새로운 사용자들이 유입되어 얼마나 구매를 일으키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플랫폼 서비스의 특성상 사이즈가 커질수록 이러한 네트워크 효과를 측정하고 확장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했는데, 즉각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많다는 핑계로 눈길을 거의 안 주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양식의 가책, 마음의 짐 같은 게 생기게 되는데 이럴 때 나는 대표님과 이야기한다. "이 업무가 중요한데 손이 안 간다." 이렇게 현재 상황을 그냥 말씀드리면,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그냥 제외시키거나,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공론화시키기 때문에 하거나/말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 업무는 중요하다고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다 같이 머리를 맞대었고, 좋은 아이디어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차량번호'를 키 값으로 친구를 초대하고, 리워드를 지급하는 이벤트였다. 마이클에서 정비소를 예약한 사용자는 자신의 차량번호를 친구에게 보내주고, 친구는 마이클 앱에서 초대한 사용자의 차량번호만 쿠폰 코드로 입력하면 할인쿠폰을 발급해주는 방식이었다.
기존의 난수 생성 방식이나, 추첨 이벤트 방식보다는 재미나 완성도 측면에서 높아졌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초대 비율이나 초대받은 사람의 구매 전환율도 역대 추천 이벤트 중 가장 성공적이었다. 오프라인/온라인 바이럴을 모두 측정하기는 불가능 하지만, 성장 추세를 보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
아직 이벤트 동선이나 볼륨 확장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들이 많다.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편하게 우리 서비스를 공유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리퍼러 채널에 대한 많은 시도들을 할 예정이다.
중요하지만 꺼려지는 업무가 있다면 의도적으로 마주하는 습관을 들이자. 혼자 힘으로 힘들다면, 팀원들에게 그냥 지금의 상태를 이야기해보자. 생각보다 간단한 답이 나오거나 마음 아깝게 착잡할 필요가 없는 덜 중요한 업무일 수도 있다.
작년 회고 3. 비전에 맞닿은 꾸준함은 투자할 가치가 있다.
우리가 주로 활용하는 온드 미디어 채널인 카카오 1boon과 네이버 포스트. 다음과 네이버 각각의 자동차 탭에 포스트형 콘텐츠를 업로드하여 앱 다운로드를 유도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차를 잘 모르는 운전자들이 타겟이기 때문에 콘텐츠 역시 자동차의 마력, 토크, 연비와 같은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기본 자동차 버튼, 기초 교통 법규, 차량관리 팁 등 기초적인 내용을 주로 이룬다. 실제로 정말 기본적인 내용들을 다룬 콘텐츠들이 조회수도 높다.
조회수가 터질 때나 댓글 반응이 좋을 때는 기분이 좋지만, 꾸준하게 발행해야 지속적인 노출 보장이 되고(추측), 다이나믹한 변화는 없기 때문에 다소 지루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꾸준히 콘텐츠를 발행했고, 우리의 취지를 좋게 봐주신 한 출판사가 콘텐츠들을 한 권에 엮어 책으로 출간하자는 제의를 해주셨다. 우리는 흔쾌히 수락했고 마케팅 팀은 주말에 틈틈이 시간을 내 직접 사진도 찍고 원고도 작성해 결국 올해 1월, '자동차 버튼 기능 교과서'라는 제목으로 마이클의 책이 출간됐다!
책 홍보 살짝 ㅎㅎ..
버튼 하나로 목숨을 살린다. 베테랑 운전자들도 헷갈려하는 자동차 핵심 버튼/기능 47가지를 담았습니다. 차를 잘 모르는 운전자에게 필독서라고 자신 있게 추천드립니다 :)
책 출간 소식을 듣고 마이클 앱 사용자들도 응원과 추천의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특히 '나에게 꼭 필요했던 책'이라는 말이 가장 와 닿았다. 그동안 우리가 타겟한 사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꾸준히, 잘 제공해 왔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책 출간이 우리가 서비스에서 중요시하는 정량적인 지표와는 크게 상관은 없지만, '허공에 삽질하지 않고 잘 가고 있어'라고 격려받은 느낌이다.
꾸준함은 방향에 따라 그 의미가 긍정이 될 수도 부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꾸준함이 어디로 가는지, 꾸준함의 방향성에 대한 꾸준한 검증이 중요하다. 나의 꾸준함이 비전에 맞닿아 있다면(개인적인 목적이든 서비스의 비전이든), 꾸준함은 언젠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우리에게 보답할 것이다.
어느덧 스타트업 마케터로 합류한 지 2년이 지났다. 이젠 '시간 참 빠르다'는 말은 입버릇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나? 는 질문엔 항상 '아니오'였다. 새해에는 시간의 밀도에 대해 생각하자. 2021년 회고글엔 '시간 참 빨랐지만 잘 보냈어'라는 말을 꼭 입버릇처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