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샵을 다녀왔다. 새로운 동료들이 많이 입사하면서 고연차와 저연차 사이의 뭔지 모를 어색한 거리(?) 같은 것이 존재했는데, 이번 워크샵이 그 거리를 확 좁혀준 것 같다.
이번 워크샵에서는 사업계획 공유와 더불어 조직에 도움될만한 나의 이야기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처음 대표님께 요청을 받았을 때는 조금 막막한 것이 사실이었다. 숫자를 위시한 디테일한 사업계획은 이번 워크샵의 분위기에는 맞지 않고 집중도도 떨어질 것 같았다. 그렇다고 라떼를 시전하며 훈계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동료들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달갑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되 7년차에 접어든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한가지씩을 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기로 했다. 신입/인턴으로 입사했을 때의 나, 그 다음으로는 실무자의 나, 마지막으로는 초보리더 시절의 나. 이렇게 3단계로 나누어 시그널을 구성해 워크샵을 진행했고, 그 내용들을 일부 요약해 브런치 글로도 남겨본다.
1. 인턴시절의 나에게 보내고 싶은 시그널
우리 회사에서는 '웰컴런치'라는 제도가 있다. 신규 입사자가 들어오면 협업이 긴밀한 동료들과 1:1 런치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거기에는 나를 비롯한 C레벨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제 막 들어온, 회사 경험이 적거나 없는 신규 멤버들이 이런 고민을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다.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1개월이 막 지났거나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아직 길을 뛰거나 심지어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이런 고민을?
아무리 대이직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발을 물에 담그기는 커녕 갖다 대지도 않았는데 직장만 바꾸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이 직무, 이 회사가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한 가운데, 정중앙으로 뛰어들어 봐야 한다. 안개속 숲길이라 앞이 잘 안보이더라도, 고민과 불안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걸어가고 뛰어가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딛는 이 땅이 나에게 적절한 디딤이 되는지 알 수 있고, 뛰면서 보는 풍경이 질리지 않고 재미있는지 알 수 있다.
때문에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의 답은 오로지 본인만이 알 수 있다. 의심이나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길에 집중해서 걷고 뛰어봐야 이 길이 맞는지 판단이 선다. 이렇게 생기는 판단력은 나의 기준으로 명확하게 자리잡아 앞으로의 직장생활에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것이다. 딱 1년, 아니 6개월만 최선을 다해 제대로 미쳐보라. 그 다음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저절로 결정되는 마법의 순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스타트업은 미쳐야 본전이다.
미치지 않으면 본전 찾기 어렵다.
2. 실무자였던 나에게 보내고 싶은 시그널
이미 너무도 잘 알려진 더닝크루거 효과. 나 역시 1-2년차 때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절망의 계곡까지 롤러코스터처럼 미끄러져 본 경험이 있다. 입사 후 몇가지 마케팅, 그로쓰 액션들이 운 좋게 효과를 작용하면서 스스로 고객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라 착각하고, '내가 하면 다 돼!' 라는 우매한 봉우리의 꼭대기에 있었던 때가 1~2년차 그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들이 예상과 다른 결과를 하나씩 보이면서 절망의 계곡까지 끝없이 추락했던 것도 그 시절 어디쯤이었다. '도대체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게 뭐지?'라는 생각으로 순식간에 가득찼었다. 그런 절망의 계곡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어느 순간 찾아온 겸손한 생각의 전환 덕분이었다.
내가 뭐라고. 어떻게 생각하면 오만했던 것도 같다. 내가 다 아는게 당연하고 모르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모르는게 당연하고 모르면 공부하면 된다. 나는 고객을 몰랐기 때문에 고객을 일단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만나서 공부했다. 정비소 예약 플랫폼의 강점을 살려 정비소 한두개를 섭외에 상주해 있었고, 마이클로 예약하고 오는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를 했다.
고객을 만나보니 우리가 고객과 파트너 모두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자신감을 회복했고, 고객이 좋아하는 것은 앱에 반영하고, 고객이 싫어하는 것은 하나씩 줄여나가자 라는 심플한 목표를 세우니 액션도 가볍고 빨라졌다. 그렇게 깨달음의 오르막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실무를 한창 하던 나에게는 더닝 크루거 그래프를 보여주며 딱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다.
네가 뭐라고. 모르는게 당연해. 공부하는게 당연해.
3. 초보 리더였던 나에게 보내고 싶은 시그널
1on1을 할 때 신규 입사자 못지 않게 고민이 많은게 리더들, 특히 이제 막 리더를 시작하는 초보리더들이다.
"평가하기가 힘들어요", "이러면 마이크로매니징 아닐까요?", "제 말을 잘 따르지 않는 것 같아요"...
아직 리더의 '기준'이 모호해서 그렇다.
리더는 기준이 있어야 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리더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준이 없거나 모호한 리더와 일을 하는 건 팀원으로서 매우 힘들다. 기준을 알아야 거기에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며 성장할 수 있는건데, 기준이 기분이 되거나, 하루가 다르게 바뀌게 된다면?
팀원 입장에서는 회사의 기준에 얼라인 하기 보다는, 그 리더의 기분에 얼라인 되려고 노력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기준은 있는데 제시하지 않는 리더도 문제가 있다. 1on1이든, 피드백이든, 동료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서 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독려하고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솔직하게 피드백을 하며 스스로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굿가이 컴플렉스'가 있는 리더들은 혹여나 본인이 미움 받는 팀장/리더가 될까 이런 이야기들을 하지 않거나 애매하게 돌려 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리더의 직무 유기이자, 동료의 성장까지 막는 최악의 리더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기준'은, 비단 리더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라면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고 갈고 닦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하는 회사는 기준이 계속 높아진다. 그래프에서 개인 B의 경우 입사할 때는 회사의 기준보다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스로 성장하지 않거나 회사의 기준에 얼라인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지금은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A의 경우 처음엔 회사의 기준보다 낮은 기준이었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회사의 기준에 얼라인 하려는 노력을 해, 결과적으로 회사의 기준을 높여주고 성장을 이끄는 리더그룹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이처럼 내 기준을 알고 그 기준을 회사와 얼라인 하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초기 리더시절에 나도 수많은 실패와 상처를 경험했는데, 돌아보면 모두 기준에 관한 문제였다. 당연히 처음부터 기준이 명확하긴 힘들다.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제시하면서 피드백을 받고, 이를 통해 새롭게 기준이 튜닝되는.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리더의 기준도 높아지고 첨예해진다.
리더는 분명하게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벌써 7년차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5명이었는데, 지금은 벌써 50명이다. 10배나 많아졌다.
매년 다른 회사를 다니는 것 같다. 5명일 때 내가 했던 역할과 고민과, 20명일 때, 30명일 때, 50명일 때의 고민과 역할은, 정말 다른 회사를 다닌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다르고 어렵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혁신의 기로에 서 있다는 직감이 든다. 많은 풍파를 거치고 이제서야 맨파워도 세지고 여유도, 여력도 생겼다. 이제서야 시장을 제대로 혁신할 수 있는 Ready 상태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맞닥뜨릴 문제와, 새롭게 만날 동료들, 플레이어들이 기대가 된다.
3년 뒤 10년차 때는 7년차인 지금을 돌아볼 수 있을까? 돌아보게 되면 어떤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