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은 아니고, 6년 장기 근속자에 한해 주어지는 1개월의 리프레시 휴가를 썼다.
3월 아내의 복직 시기와 주누의 어린이집 입학 시기가 겹치면서, 적응 기간에는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밀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미뤘던 휴가를 꺼내 든 것이다.
휴가는 아직 일주일이 채 안 되었지만,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참 좋다.
아내가 육아휴직 중일 때는 육아의 사수가 아내였고 내가 부사수였다.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나는 아내를 최대한 서포트하며 주누를 케어한다는 자세였는데,
지금은 내가 A부터 Z까지 전담하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고, 놀고, 밥을 먹고, 칭얼대고, 신기해하는 모든 순간순간에 내가 가장 가까이에 있어 아이의 기분과 감정을 오롯이 느낀다는 사실이 참 좋다.
아이와 눈 마주치며 웃을 때, 하이파이브를 할 때(최근 추가한 개인기다), 두 손을 만세 하며 아빠한테 안아달라고 할 때는 따뜻한 기운이 가슴에서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사랑과 온화함이 켜켜이 쌓이는 중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퇴근 후 어질러진 거실과 부엌을 봤을 때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던 적이 몇 번 있었다. 티는 안 내고 묵묵히 치웠지만, '틈틈이 치울 수 있지 않나?'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직접 해보니 결코 녹록지 않다.
아이를 방치하고 집안일만 하기에는 안아달라 칭얼대는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유아식은 매 끼니 영양에 맞게 무엇을 준비할지 미리 고민해야 하고, 요리도 서툴다 보니 실패할 것까지 고려하면 내 끼니는 거르거나 콘푸로스트로 때우기 십상이다.
집에만 있으면 지루하니 문화센터나 산책도 꾸준히 나가줘야 한다.
온전한 내 시간을 가지기가 이토록 쉽지 않다니. 이제야 아내의 입장이 확실히 이해되고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나도 이제는 아내가 빨리 퇴근하기만을 고대하는 '육아 아빠'가 되어버렸다.
약 11년의 회사 생활 동안 길게 쉬어본 적이라곤 신혼여행과 출산휴가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1~2주 정도로 쪼개 쉬었는데, 처음으로 한 달을 통으로 쉬어본다.
그동안 회사와 집만 오가며 깨진 삶의 밸런스를 이번 휴가를 통해 한 발짝 떨어져 진단해 보려 한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운동이다. 건강 적신호가 켜졌던 터라 좋아하던 농구와 기초 체력을 위한 PT를 시작했다. 하루 1시간, 일이 아닌 다른 것에 몰입해 땀 흘리는 경험이 정말 오랜만이라 큰 활력이 된다.
요리도 꽤 재미있다. 아이가 잘 먹어주니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고 싶고, 조리도구나 맛에도 조금씩 욕심이 생긴다. (사진은 처음 시도한 버섯 들깨 리조또와 냉털채소 달걀말이)
무엇보다 회사 일이 아닌 개인의 삶, 육아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 즐겁다.
일기를 얼마나 오랜만에 써보는지 모르겠다. 꼭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부담 없이 적어 내려가는 글쓰기의 매력을 다시금 느낀다.
전반적으로 회사 업무의 몰입에서 벗어나 내 개인의 삶을 더 조명하게 된다.
ps. 혹시 주변에도 무언가 삶의 밸런스가 깨졌다고 느끼는 친구가 있다면, 큰 쉼표 하나를 찍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쉼의 기간에 내가 좋아하며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훨씬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