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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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작업실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열쇠고리가 툭하고 부러졌다. 그 열쇠고리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주신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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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 작가는 이전에도 아버지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 작업실에 놀러 갔던 기억을 여러 번 얘기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그곳이 '따뜻했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지민 작가는 그 장소를 떠올리며 안정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막상 그녀 작업실을 둘러보니 꼭 기억으로만 그곳에 머무는 게 아니었다. 부러진 열쇠고리뿐 아니라 이젤, 의자, 서랍, 여러 미술 도구까지 돌아가신 아버지 물건을 여럿 사용하고 있었다. 보통 유품은 한 사람을 기억하는 용도이기에 '보존'을 우선시한다. 하지만 지민 작가는 아버지 물건을 쥐고, 앉고, 만지며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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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건은 너무 낡아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보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심지어 더 이상 쓰지 못하는 물건도 버리지 않고 따로 모으고 있었다. 그녀가 작업에 사용한 사진을 보여주겠다며 서랍을 열었는데, 거기엔 몇 년 전 영수증 뭉치부터 굳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물감, 망가진 미술도구까지 가득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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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개인의 의도로 채워지고 비워진다. 본래 용도를 상실한 물건이라도 그 쓰임이 ‘기억’이라면 이는 다른 의미의 '효용'을 가진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이 얼굴, 장소, 사물 무엇이 됐건 거기에 간직하고 싶은 ‘감정’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볼 땐 짐으로 보이는 물건도 개인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가치가 있다. 나는 그녀의 그림도 어떤 측면에선 '기억의 수집'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그림에 '시제'가 있다고 가정한다면, 나에게 지민 작가의 그림은 '과거'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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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 작가는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그의 사진과 그가 찍은 사진을 찾아보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나에게 이 지점은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진에는 '세 가지 주체'가 있다. 첫 번째 사진을 찍는 '사진가', 두 번째 사진을 보는 '관람자', 마지막으로 사진기 앞에 서있는 '사람 혹은 사물'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작업은 세 번째 주체를 향하게 된다. 그리운 대상을 그리는 게 가장 직접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민 작가가 주목한 건 '아버지 사진(대상)'이 아니라 '아버지가 찍은 사진(사진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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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민 작가가 아버지가 찍은 사진에서 마주한 건 '시간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것은 곧 '사진의 속성'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재를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지만, 셔터를 누르는 순간 모든 사진은 '과거'가 된다. 롤랑 바르트는 저서 <밝은 방>에서 이를 '그것이 존재했음'이라 기술한다. 다시 말해 사진은 '그때에 존재했음'을 증명할 수 있지만, 그것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 앞서 이야기한 사진의 세 가지 주체 중 현재에 있는 건 오직 사진을 바라보는 '관람자' 지민 작가뿐이다. 사진을 찍었던 아버지도, 카메라 앞에 서있던 인물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거나 그때의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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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사진'이라는 선명한 원본을 가지고 작업한다. 하지만 그 원본에 작가의 ‘개인적 시간'이 더해지며 차별성을 갖는다. 우리의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핵심적인 특징만 남고 단순해지는 것처럼, 지민 작가의 그림은 인물과 배경의 주요한 특징은 부각되지만 부분의 미세함은 뭉개지거나 생략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민 작가의 그림 속 선과 색은 시간이 쌓인 퇴적층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에게 그녀의 몇몇 그림은 캔버스 크기만 한 '구멍'같다. 그 구멍은 현재의 시간을 빨아들여서 '작가의 기억'을 보게 하고, 더 나아가 '내가 가진 기억'까지 닿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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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림을 그리다가 지칠 때면, 이 의자에 기대서 음악을 듣고 잠도 잔다고 말했다.
무척 더웠던 작년 여름, 의자의 플라스틱 손잡이가 녹아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민 작가는 다른 의자를 구입하는 대신 녹아내린 자리에 천을 덮어 사용하는 쪽을 택했다. 이 의자 또한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것이라 했다. 이 이야기를 너무 무덤덤하게 말해서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의자 손잡이가 녹아내리는 것도, 그 의자를 계속 사용하는 것도 나에겐 무척 드문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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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민 작가의 화법을 무척 좋아한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 돌려 말하지 않고, 미사여구나 사족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나는 그 '화법'이 지민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도 결을 같이 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다시 말해 그녀는 대상을 흘끔거리거나 과장 혹은 축소해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정면에서 바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는 창작자라고 생각한다. 지민 작가가 '기억이 아닌 '사진'으로 작업을 시작한 이유도 정확하게 바라볼 대상이 필요한 까닭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보는 곳이 '과거'라면-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면 지민 작가의 마음은 어떨까. 나는 그녀가 어떤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지, 아니면 슬픔을 잊기 위해 그리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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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리는 지민 작가의 뒷모습과 그림, 의자와 미술도구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이 모든 게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 프레임 안에 담아 사진을 찍는다 해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사진의 한계이거나, 사진가인 나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민 작가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