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편지

마음의 속도

by 박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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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아 오늘 내 목표는 간단해. '구글 지도 없이 숙소에서 폭포까지 가기'
어제 잠들기 전까지 외웠던 지도를 아침식사를 하면서 다시 한 번 훑어봤어. 푸푸 말로는 폭포까지 어른 걸음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어. 난 여러 변수를 염두 해 목표를 3시간으로 정했고 또 만일에 대비해 종이 지도를 챙겼어. 마지막으로 해가 졌는데도 숙소로 돌아오지 못할 땐 지도 앱을 켜거나 뚝뚝이를 부르기로 했어. 내가 길을 잃은 곳이 부디 뚝뚝이가 다닐 수 있는 곳이길 바라면서.

내가 걸을 코스는 지도상으로는 무척 쉬웠어. 띠보에서 가장 큰 도로를 타고 쭉 직진한 뒤 또 가장 큰 교차로가 나오면 우회전해서 산 입구를 찾아 들어가면 폭포로 가는 길이 나와. 지도상으로는 그래. 난 이 코스에서 ‘대로’를 사진 찍을 게 더 많은 ’강가’로 바꿀까를 잠깐 생각했는데 그러면 길이 훨씬 복잡해지기 때문에 원래 계획을 따르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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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 대로에도 볼거리가 풍부했어. 차들이 많아 시끄러웠지만 보는 재미가 있었어. 양곤과는 다르게 대부분 덤프트럭이었고, 짐칸엔 목재가 가득 실려있었어. 아마도 중국으로 수출하는 목재가 아닐까 싶었어. 그 덤프트럭 사이로 걷거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갔어. 정말로 이 사람들은 느리게 움직였어! 마치 삶에 슬로모션 버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60프레임으로 또 어떤 사람은 120프레임으로 움직였어. 그렇다고 활력이 없는 게 아니었어. 무거운 짐을 든 이들도 많았고 아침 일찍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 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리는 어머니까지 나름대로의 활력을 갖고 밝은 얼굴로 움직였어. 다만 서두르지 않을 뿐이었어. 내 삶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여유가 이 거리엔 너무나 당연하게 펼쳐져 있는 느낌이었어.
그 모습을 찬찬히 살피고 사진으로 남기면서- 내가 띠보를 좋아하게 된 건 자연경관 탓도 있겠지만 이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 때문이기도 하구나 싶었지.
나 역시 이 분위기에 취해 처음엔 여유롭게 걸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불안해졌어. 나중엔 몇 걸음 걷고 종이 지도를 펴고 또 몇 걸음 걷고 지도를 확인하고를 반복했고 결국 나만 이 느린 도시에서 무성영화의 희극배우처럼 조급하게 움직이는 꼴이 됐어.
문제는 지도상으로 큰 길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계속 좁은 골목만 나왔고 점점 초조해진 난 ‘이 정도면 큰 길 아니야?' 싶어졌을 때 우회전을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오늘의 여행은 이때 시작된 것 같아.

내가 좀 더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을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을 거야. 이건 실패할 확률을 줄일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하지만 이 실패한 영화인은 지금까지 온 길이 아깝다는 이유로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갔어. 아예 생각 없이 한 행동은 아니었어. 우측이라는 방향성은 맞으니 조금 일찍 틀었다 해도 분명 연결되는 길이 있으리라 믿었거든. 하지만 이곳이 산과 들판으로 이뤄진 마을이었고, 도심이었다면 여기저기로 뻗어있을 길이 산이나 끝없이 이어진 논밭에 막혀 난 직진 밖에 할 수 없게 됐어.

종이 지도와 스마트폰 지도의 가장 큰 차이는 내 위치를 아느냐 모르냐의 차이인 것 같아. A4 크기의 종이 위에 내 위치를 가리킬 수 없게 되면서 더 이상 지도를 보지 않게 되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앞으로 가는 것밖에 없었어. 결국 그 길 끝에 있는 한마을에 도착했고 그곳은 가이드북의 소개글처럼 ‘오지’라 부를만한 곳이었어.
커다란 우물이 있었고, 우물 옆에는 나무 땔감을 모아서 불을 피웠어. 조금 떨어진 자리에선 여러 명이 아이들이 커다란 나무에 올라타 톱질을 했고. 난 목이 말라서 아주머니 한 분에게 “이 물 마셔도 돼요?”를 몸짓으로 물어보니 웃으면서 “오케이”하셨어.
우물 안은 어둡고 조용하고 또 시원했어. 내가 물 바구니를 던지자 아래쪽에서 텅 하는 소리가 났고 곧 줄이 팽팽해지며 물이 차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아줌마가 이제 됐으니 당겨보라고 손짓해서 열심히 줄을 잡아당겼지. 생각보다 한참을 당긴 후에야 물 바구니가 올라오더라. 우물 안에 있을 땐 몰랐는데 물은 정말로 맑았어. 아줌마가 컵을 가져다주셨고 난 그 자리에서 두 컵을 영겁 퍼 마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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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정말로 정말로 달고 시원했어. 내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아줌마는 웃으시며 손가락으로 멀리 있는 주전자를 가리키셨고 아마도 '저것도 마셔봐’라는 뜻 같아서 난 좋다고 고개를 끄떡였지.
모닥불 주위로 각자의 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젖을 물리고 있었어. 불의 중앙엔 검게 탄 주전자가 달그락 물 끓는 소리를 냈고, 내가 물을 마셨던 컵에 이번엔 차를 따라주셨어.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차를 마셨지. 난 손짓과 표정으로 고맙습니다, 아이가 예쁘다, 차가 맛있다 같은 말을 했는데 모두 알아 들으신 듯했어. 그렇게 10분 정도 앉아있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내가 목표로 했던 3시간이 거의 다 돼있었어. 신기하게도 마음은 편했는데 어차피 늦었다는 걸 알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더라. 난 그분들의 사진을 찍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어.

물론 그 뒤에도 여러 번 불안감을 느꼈어. 마음속에선 계속 '원래 계획이 밤폭포를 구경하는 거였어? 그 담엔 국제 미아가 되면 되겠네’ ‘이렇게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건 망원동에서도 가능하지 않아?’ 같은 말들이 세어 나왔지만 이런 잡념들은 내가 천천히 걸을수록 그 속도에 맞춰서 같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어. 사실 3시간이란 기준은 내가 임의로 잡은 거고, 그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 여행이 잘못되는 건 아니었거든. 1시간 반이란 시간 역시 푸푸가 말한 기준이지 내 걸음의 시간은 아니었고.

그렇게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떠올린 건 어린 시절 하굣길이었어. 생각해보면 그때 내게 빠른 건 중요하지 않았어. 중요한 건 얼마나 재밌나였지. 그 재미가 엄청 대단한 건 아니었어. 어느 집 마당에 큰 개가 살고, 어느 골목길에 있는 문방구 게임기가 더 재밌고, 어느 나무에 잠자리가 많이 앉아있는지 같이 사사롭지만 그 당시의 교과서 이름처럼 그 자체로 ‘즐거운 생활’이었어. 고학년이 되면서 ‘즐거운 생활’이란 교과서가 사라지고 대신 다른 이름의 과목을 배우게 됐지.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책상 위로 탑처럼 쌓이던 새 교과서들을 기억해. 그 많은 것들을 공부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강아지를 구경하는 일도 문방구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던 것 같아. 이젠 시간이 곧 돈이란 관념까지 머릿속에 자리 잡아서 늘 시간에 쫓기는 게 일상이 됐고, 지금처럼 그냥 걸어 다닐 걸 ‘낭비'라 부르게 된 것 같아.

내가 서울에서 사용하는 지하철 어플엔 두 가지 옵션이 있어. ’최소 시간’과 '최소 환승’.
내비게이션과 지도 어플 역시 좁은 골목까지 탈탈 털어서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잖아. 어떤 앱도 ‘예쁜 길’순으로 정렬해주진 않아. 하지만 지금 난 가장 예쁜 길로 걸을 수 있고 심지어 그 길에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어.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순 없어도 지금 이 순간을 그때의 마음으로 살 순 있단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편안한 게 뭔지에 집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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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한가지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는데 워터폴이 미얀마어로 ‘남똑’이란거야. 이걸 알게 된 후로 폭포를 찾아가는 건 한결 수월해졌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남똑?"이라 물으면 대부분이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줬어.
재밌는 건 물어보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길로(자기가 주로 다니는 길로) 알려준다는 거야. 아이들에게 물으면 자기들이 다니는 좁은 골목길을 알려줬고, 농부에게 물으면 논두렁을 가로질러서 가는 길을, 아줌마에게 물으면 마을을 통해 가는 길을 알려줬어. 그리고 이 선한 인상의 할아버지에게 내게 “남똑?"이라 했을 때 그는 들고 있는 낫으로 옥수수밭 사잇길을 가리켰어. 할아버지의 저 낫은 분명 옥수수를 베는데 사용하는 걸 거야. 난 이 상황이 몹시 재밌어서 할아버지를 따라 그 길을 걸었어. 할아버지는 몇 분 정도 나와 함께 걷다가 옥수수밭으로 안으로 사라지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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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혼자가 돼보니 왜 많은 공포영화들이 옥수수밭을 무대로 삼는지 알겠더라. 옥수수밭은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서면 완벽히 외부와 단절돼서 앞뒤 양옆 모두 옥수수나무 밖에 보이지 않아. 이 넓은 밭에 나 혼자 있다는 게 무서울 수도 있고 편안할 수도 있는데 이 순간엔 후자였어. 옥수수나무의 큰 키로 생긴 그늘은 선선했고 나무 너머 하늘은 보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예쁜 색을 냈어. 무엇보다 난 이 밭에서 나는 소리가 좋았어. 아마 ‘레더페이스’가 나타난다 해도 그 역시 이 소리에 취해 잠시 전기톱을 내려놓았을 거야. 난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앉았다가 너무 편해서 에라 모르겠다 가방을 베고 누웠어. 그렇게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니 마음이 놓이는 게 느껴졌어. (자주 쓰던 말임에도 몸으로 경험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어.) 정말로 마음이 내 안에 놓여 있었고 난 편안했어. 만약 극락이나 천국이 저마다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거라면 내 천국은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바람은 파도처럼 옥수수밭으로 밀려오고 나가기를 반복했고, 내 옆을 지나고 나서는 파도가 떠난 자리에서 바다 거품이 타다닥 터지듯- 옥수수 잎사귀마다 예쁜 소리를 냈어. 난 그 자리에서 오래 쉬었어.

내가 폭포에 도착했을 땐 이미 출발한지 7시간이 지나있었고 사실 굳이 폭포를 보지 못했다고 해도 그리 아쉽지 않았을 것 같아. 그건 그야말로 목적지에 불과했거든. 실제로 폭포에서 있었던 시간은 무척 짧아. 잠깐 수영만 하고 내려왔지. 신기한 건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는 거야. 한 번 걸어봤다는 것만으로 길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었어. 마을에 내려와선 샨누들을 사 먹었고 배가 좀 덜 차서 숙소 근처 꼬치집에서 꼬치도 사 먹었어. 이 식당은 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켰는데 이곳에서 밤을 새우고 싶을 만큼 분위기가 좋았어. 밤늦게 숙소에 도착하자 푸푸는 늘 하던 장난 대신 폭포에 간다더니 왜 이제야 오냐고 걱정스럽게 안부를 물었고 난 그냥 웃고 말았어.

지금 너한테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첫 마을에서 마셨던 차의 맛과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이건 내 마음이 그 순간에 여전히 있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창문 너머로 길을 알려주던 꼬마의 얼굴과 그 옆에 앉아있던 고양이도 떠올라. 밭에서 만났던 농부 아저씨들의 얼굴도 떠오르고, 옥수수밭에서 느꼈던 바람도 지금 여기 내 마음에 있어.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고.
그 많은 장면들 속에서 계속 곱씹게 되는 건 커다란 우물이야. 어쩌면 내 악몽은 내 마음에서 깊은 곳에서 길어올리는 물 바구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문득 들었어. 그 모습이 비록 악몽의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그렇게 계속 꺼내서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솔직히 그 꿈을 꿀 때마다 난 내가 나약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돼. 남들이라면 이런 실패 쯤 금세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이런 꿈조차 꾸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길이지 내 길은 아니잖아. 내 방식이 지지부진해 답답하더라도 이게 내가 삶을 걷는 속도라면 그 속도에 맞추는 게 맞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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