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속도
수영아 오늘 내 목표는 간단해. '구글 지도 없이 숙소에서 폭포까지 가기'
어제 잠들기 전까지 외웠던 지도를 아침식사를 하면서 다시 한 번 훑어봤어. 푸푸 말로는 폭포까지 어른 걸음으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어. 난 여러 변수를 염두 해 목표를 3시간으로 정했고 또 만일에 대비해 종이 지도를 챙겼어. 마지막으로 해가 졌는데도 숙소로 돌아오지 못할 땐 지도 앱을 켜거나 뚝뚝이를 부르기로 했어. 내가 길을 잃은 곳이 부디 뚝뚝이가 다닐 수 있는 곳이길 바라면서.
내가 걸을 코스는 지도상으로는 무척 쉬웠어. 띠보에서 가장 큰 도로를 타고 쭉 직진한 뒤 또 가장 큰 교차로가 나오면 우회전해서 산 입구를 찾아 들어가면 폭포로 가는 길이 나와. 지도상으로는 그래. 난 이 코스에서 ‘대로’를 사진 찍을 게 더 많은 ’강가’로 바꿀까를 잠깐 생각했는데 그러면 길이 훨씬 복잡해지기 때문에 원래 계획을 따르기로 했어.
다행스럽게 대로에도 볼거리가 풍부했어. 차들이 많아 시끄러웠지만 보는 재미가 있었어. 양곤과는 다르게 대부분 덤프트럭이었고, 짐칸엔 목재가 가득 실려있었어. 아마도 중국으로 수출하는 목재가 아닐까 싶었어. 그 덤프트럭 사이로 걷거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갔어. 정말로 이 사람들은 느리게 움직였어! 마치 삶에 슬로모션 버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60프레임으로 또 어떤 사람은 120프레임으로 움직였어. 그렇다고 활력이 없는 게 아니었어. 무거운 짐을 든 이들도 많았고 아침 일찍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 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리는 어머니까지 나름대로의 활력을 갖고 밝은 얼굴로 움직였어. 다만 서두르지 않을 뿐이었어. 내 삶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여유가 이 거리엔 너무나 당연하게 펼쳐져 있는 느낌이었어.
그 모습을 찬찬히 살피고 사진으로 남기면서- 내가 띠보를 좋아하게 된 건 자연경관 탓도 있겠지만 이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 때문이기도 하구나 싶었지.
나 역시 이 분위기에 취해 처음엔 여유롭게 걸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불안해졌어. 나중엔 몇 걸음 걷고 종이 지도를 펴고 또 몇 걸음 걷고 지도를 확인하고를 반복했고 결국 나만 이 느린 도시에서 무성영화의 희극배우처럼 조급하게 움직이는 꼴이 됐어.
문제는 지도상으로 큰 길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계속 좁은 골목만 나왔고 점점 초조해진 난 ‘이 정도면 큰 길 아니야?' 싶어졌을 때 우회전을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오늘의 여행은 이때 시작된 것 같아.
내가 좀 더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을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을 거야. 이건 실패할 확률을 줄일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하지만 이 실패한 영화인은 지금까지 온 길이 아깝다는 이유로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갔어. 아예 생각 없이 한 행동은 아니었어. 우측이라는 방향성은 맞으니 조금 일찍 틀었다 해도 분명 연결되는 길이 있으리라 믿었거든. 하지만 이곳이 산과 들판으로 이뤄진 마을이었고, 도심이었다면 여기저기로 뻗어있을 길이 산이나 끝없이 이어진 논밭에 막혀 난 직진 밖에 할 수 없게 됐어.
종이 지도와 스마트폰 지도의 가장 큰 차이는 내 위치를 아느냐 모르냐의 차이인 것 같아. A4 크기의 종이 위에 내 위치를 가리킬 수 없게 되면서 더 이상 지도를 보지 않게 되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앞으로 가는 것밖에 없었어. 결국 그 길 끝에 있는 한마을에 도착했고 그곳은 가이드북의 소개글처럼 ‘오지’라 부를만한 곳이었어.
커다란 우물이 있었고, 우물 옆에는 나무 땔감을 모아서 불을 피웠어. 조금 떨어진 자리에선 여러 명이 아이들이 커다란 나무에 올라타 톱질을 했고. 난 목이 말라서 아주머니 한 분에게 “이 물 마셔도 돼요?”를 몸짓으로 물어보니 웃으면서 “오케이”하셨어.
우물 안은 어둡고 조용하고 또 시원했어. 내가 물 바구니를 던지자 아래쪽에서 텅 하는 소리가 났고 곧 줄이 팽팽해지며 물이 차는 걸 느낄 수 있었어. 아줌마가 이제 됐으니 당겨보라고 손짓해서 열심히 줄을 잡아당겼지. 생각보다 한참을 당긴 후에야 물 바구니가 올라오더라. 우물 안에 있을 땐 몰랐는데 물은 정말로 맑았어. 아줌마가 컵을 가져다주셨고 난 그 자리에서 두 컵을 영겁 퍼 마셨어.
물은 정말로 정말로 달고 시원했어. 내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아줌마는 웃으시며 손가락으로 멀리 있는 주전자를 가리키셨고 아마도 '저것도 마셔봐’라는 뜻 같아서 난 좋다고 고개를 끄떡였지.
모닥불 주위로 각자의 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젖을 물리고 있었어. 불의 중앙엔 검게 탄 주전자가 달그락 물 끓는 소리를 냈고, 내가 물을 마셨던 컵에 이번엔 차를 따라주셨어.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차를 마셨지. 난 손짓과 표정으로 고맙습니다, 아이가 예쁘다, 차가 맛있다 같은 말을 했는데 모두 알아 들으신 듯했어. 그렇게 10분 정도 앉아있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내가 목표로 했던 3시간이 거의 다 돼있었어. 신기하게도 마음은 편했는데 어차피 늦었다는 걸 알게 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지더라. 난 그분들의 사진을 찍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어.
물론 그 뒤에도 여러 번 불안감을 느꼈어. 마음속에선 계속 '원래 계획이 밤폭포를 구경하는 거였어? 그 담엔 국제 미아가 되면 되겠네’ ‘이렇게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건 망원동에서도 가능하지 않아?’ 같은 말들이 세어 나왔지만 이런 잡념들은 내가 천천히 걸을수록 그 속도에 맞춰서 같이 가라앉는 느낌이었어. 사실 3시간이란 기준은 내가 임의로 잡은 거고, 그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 여행이 잘못되는 건 아니었거든. 1시간 반이란 시간 역시 푸푸가 말한 기준이지 내 걸음의 시간은 아니었고.
그렇게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떠올린 건 어린 시절 하굣길이었어. 생각해보면 그때 내게 빠른 건 중요하지 않았어. 중요한 건 얼마나 재밌나였지. 그 재미가 엄청 대단한 건 아니었어. 어느 집 마당에 큰 개가 살고, 어느 골목길에 있는 문방구 게임기가 더 재밌고, 어느 나무에 잠자리가 많이 앉아있는지 같이 사사롭지만 그 당시의 교과서 이름처럼 그 자체로 ‘즐거운 생활’이었어. 고학년이 되면서 ‘즐거운 생활’이란 교과서가 사라지고 대신 다른 이름의 과목을 배우게 됐지.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책상 위로 탑처럼 쌓이던 새 교과서들을 기억해. 그 많은 것들을 공부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강아지를 구경하는 일도 문방구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던 것 같아. 이젠 시간이 곧 돈이란 관념까지 머릿속에 자리 잡아서 늘 시간에 쫓기는 게 일상이 됐고, 지금처럼 그냥 걸어 다닐 걸 ‘낭비'라 부르게 된 것 같아.
내가 서울에서 사용하는 지하철 어플엔 두 가지 옵션이 있어. ’최소 시간’과 '최소 환승’.
내비게이션과 지도 어플 역시 좁은 골목까지 탈탈 털어서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잖아. 어떤 앱도 ‘예쁜 길’순으로 정렬해주진 않아. 하지만 지금 난 가장 예쁜 길로 걸을 수 있고 심지어 그 길에서 잠시 쉬어갈 수도 있어.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순 없어도 지금 이 순간을 그때의 마음으로 살 순 있단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편안한 게 뭔지에 집중했어.
아 그리고 한가지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는데 워터폴이 미얀마어로 ‘남똑’이란거야. 이걸 알게 된 후로 폭포를 찾아가는 건 한결 수월해졌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남똑?"이라 물으면 대부분이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줬어.
재밌는 건 물어보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길로(자기가 주로 다니는 길로) 알려준다는 거야. 아이들에게 물으면 자기들이 다니는 좁은 골목길을 알려줬고, 농부에게 물으면 논두렁을 가로질러서 가는 길을, 아줌마에게 물으면 마을을 통해 가는 길을 알려줬어. 그리고 이 선한 인상의 할아버지에게 내게 “남똑?"이라 했을 때 그는 들고 있는 낫으로 옥수수밭 사잇길을 가리켰어. 할아버지의 저 낫은 분명 옥수수를 베는데 사용하는 걸 거야. 난 이 상황이 몹시 재밌어서 할아버지를 따라 그 길을 걸었어. 할아버지는 몇 분 정도 나와 함께 걷다가 옥수수밭으로 안으로 사라지셨고.
막상 혼자가 돼보니 왜 많은 공포영화들이 옥수수밭을 무대로 삼는지 알겠더라. 옥수수밭은 어느 정도 안으로 들어서면 완벽히 외부와 단절돼서 앞뒤 양옆 모두 옥수수나무 밖에 보이지 않아. 이 넓은 밭에 나 혼자 있다는 게 무서울 수도 있고 편안할 수도 있는데 이 순간엔 후자였어. 옥수수나무의 큰 키로 생긴 그늘은 선선했고 나무 너머 하늘은 보정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예쁜 색을 냈어. 무엇보다 난 이 밭에서 나는 소리가 좋았어. 아마 ‘레더페이스’가 나타난다 해도 그 역시 이 소리에 취해 잠시 전기톱을 내려놓았을 거야. 난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앉았다가 너무 편해서 에라 모르겠다 가방을 베고 누웠어. 그렇게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니 마음이 놓이는 게 느껴졌어. (자주 쓰던 말임에도 몸으로 경험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어.) 정말로 마음이 내 안에 놓여 있었고 난 편안했어. 만약 극락이나 천국이 저마다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거라면 내 천국은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바람은 파도처럼 옥수수밭으로 밀려오고 나가기를 반복했고, 내 옆을 지나고 나서는 파도가 떠난 자리에서 바다 거품이 타다닥 터지듯- 옥수수 잎사귀마다 예쁜 소리를 냈어. 난 그 자리에서 오래 쉬었어.
내가 폭포에 도착했을 땐 이미 출발한지 7시간이 지나있었고 사실 굳이 폭포를 보지 못했다고 해도 그리 아쉽지 않았을 것 같아. 그건 그야말로 목적지에 불과했거든. 실제로 폭포에서 있었던 시간은 무척 짧아. 잠깐 수영만 하고 내려왔지. 신기한 건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는 거야. 한 번 걸어봤다는 것만으로 길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었어. 마을에 내려와선 샨누들을 사 먹었고 배가 좀 덜 차서 숙소 근처 꼬치집에서 꼬치도 사 먹었어. 이 식당은 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켰는데 이곳에서 밤을 새우고 싶을 만큼 분위기가 좋았어. 밤늦게 숙소에 도착하자 푸푸는 늘 하던 장난 대신 폭포에 간다더니 왜 이제야 오냐고 걱정스럽게 안부를 물었고 난 그냥 웃고 말았어.
지금 너한테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첫 마을에서 마셨던 차의 맛과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이건 내 마음이 그 순간에 여전히 있기 때문일 거야. 그리고 창문 너머로 길을 알려주던 꼬마의 얼굴과 그 옆에 앉아있던 고양이도 떠올라. 밭에서 만났던 농부 아저씨들의 얼굴도 떠오르고, 옥수수밭에서 느꼈던 바람도 지금 여기 내 마음에 있어.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고.
그 많은 장면들 속에서 계속 곱씹게 되는 건 커다란 우물이야. 어쩌면 내 악몽은 내 마음에서 깊은 곳에서 길어올리는 물 바구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문득 들었어. 그 모습이 비록 악몽의 형태를 띠고 있더라도 그렇게 계속 꺼내서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솔직히 그 꿈을 꿀 때마다 난 내가 나약한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돼. 남들이라면 이런 실패 쯤 금세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이런 꿈조차 꾸지 않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의 길이지 내 길은 아니잖아. 내 방식이 지지부진해 답답하더라도 이게 내가 삶을 걷는 속도라면 그 속도에 맞추는 게 맞는 것 같아.